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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오면

벚꽃피는 봄이 돌아왔다. 일본의 4월은 시작의 계절이라 입학식, 회사 입사식도 모두 4월이다.

2018년 도시샤 대학교의 입학식도 4월 2일이었고, 교토의 낮 기온은 20도 이상이었는지 땀이 삐질삐질 났고

게다가 만나기로 약속했던 쓰시마상은 도시샤 대학교 정문 앞에 없어서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망할 놈의 시끼' 이미 입금 한 부동산 비용 14만엔 정도였는데 설마 그 돈을 날린 거 아닌가

교토의 예상치 못한 낮더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타나지 않는 쓰시마상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도시샤 대학의 정문 옆 경비실로 걸어 가면서 바라 본 교토의 봄은 아름다웠다.


정문 앞 작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빌려 쓰시마상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정문 앞으로 남편과 나를 데리러 왔다.

'이런 망할 놈의 시끼' 는 취소!! 퉤퉤퉤!!


부동산에서 나머지 잔금을 치르고 히가시야마의 만숀으로 부동산 회사 직원이 데려다 주었고 그는 열쇠 두 개 건네주고 말했다. "샤요우나라"


내가 한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통해 얻어 둔 만숀은 히가시야마 후루카와 상점가에 있던 월세 3만 9천엔에 관리비 5천엔짜리 만숀이었다. 2019년 환율로 관리비 포함 월세 44만이었다.

우리나라 4월도 일교차가 있지만 일본의 4월은 우리나라 4월보다 낮 기온이 높아 일교차는 더 심해 전기장판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지만, 나는 전기장판없이 일년 살러 간 거고 니토리에서는 계절상품이라고 전기장판이 이미 판매하는 게 없었다.


남편이랑 나가서 이불을 샀고, 은각사 가는 길에 있던 리싸이클 가게에가서 냉장고를 샀다.

그리고 남편은 돌아갔고 나는 혼자서 교토에서 딱 일년을 살았다.


교토 역 앞에서 나를 두고 환하게 웃고 가던 남편은 자유를 느꼈는지 얼굴에 드러나는 기쁨을 어쩌지 못하고 웃고 갔다. 증거로 남아있는 남편의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남편이 돌아가고 나니 정말 혼자가 되었구나, 어쨌든지 일 년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현타가 와서 살짝 두려웠으며 무섭기도 했다. 세 아이 대학생 만들어 놓고나니 쉰 하나, 나의 해방일지 쓰는 마음으로 택한 일본 어학연수 일년이었지만 진짜 혼자가 되니 그렇게 홀가분하지도, 해방감에 풍선처럼 둥둥 떠오를것처럼 마음이 가볍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의 90프로는 사실 두려움이었고 10프로 정도가 아마 호기심 천국이 가득한 나의 뇌구조였을것이다. 입학식이 있기까지 며칠 남은 날들은 동네를 산책하고 구경다니는게 일이었다.

차고지증명제로 주차할 곳이 없으면 차를 구입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길에 차를 세워두지 않으니 도로는 어디를 가나 쓰레기를 박스안에 넣어서 보이지 않게 관리를 하니 길 위에 쓰레기가 보이지 않아 일본이 깨끗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들은 조밀조밀 붙어 있고 작았어도 화분 한 두개는 앞에 두고 예쁘게 가꾸는 사람들이라 교토는 어딜 가도 마음에 들게 아기자기한 풍경이었다.


내가 그 해 봄을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견딜수 있는 힘이 되어준게 그런 풍경들이었다.


주택에 산 지 올 해로 십년이 되었다. 대문 앞에 작은 손바닥 화단이 있어 화단에 꽃을 가꾸는게 봄이 되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집은 낡았어도 봄은 새롭다.

작년에 담장을 따라서 심어둔 릴리가 겨울을 나면서 퍼졌는지 심었던 꽃대보다 더 많이 올라왔고 광양에서 사 온 매화나무도 올 해는 작은 꽃 두송이를 보여주었다.


늘 열려있는 대문이라 오고가며 사람들이 보고 좋아

해주는것같아 가꾸는 재미가 있다.

꽃밭 하나 있을 뿐인데 봄을 온전히 가진 것처럼 흐뭇하다.


내가 가꾸는 꽃밭이지만 누구나 지나가며 우리집 대문에서 나오는 봄기운으로 마음이 꽃밭이 되기를 바라면서 작은 꽃밭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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