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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돈을 주셨습니다.

그래요, 소금과 소송이 나도 충분히 이기실 수 있는 시아버지께서 5월 2일,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돈을 입금해주셨습니다. 왕소금 시아버지께서 말입니다.

37년 생이니, 시아버지 연세 올 해로 88세 되셨나봅니다. 


그 세대의 아버지들이 모두 그렇게 사신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없는 집 둘째 아들로 사신 우리 시아버지의 경우는 쌀 한가마니로 시작한 양복점으로 남의 집 월세부터 시작해서 집도 사시고 자식들 공부도 가르치셨으니, 대단하게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근검 절약의 미덕을 뛰어 넘어 악행에 가까운 시아버지의 절약 정신은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는 시댁이지만 다녀 오고 나면 휴유증이 클 수 밖에 없고 특히 수돗물 쓰는 일에 민감하신 3,4년 전에 시댁 수도관이 파열되어 수도요금이 많이 나온 뒤로 그렇게 되셨습니다.


지은 지 삼십 년 가까이 되는 단독주택 어디선가 터진 수도관은 미세하게 새고 있는 상태로 기술자가 왔지만 잡아 내지 못 해서 손재주 있는 셋째 아들이 어지간히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놨지만 아직도 수도가 새고 있다고 확실히 믿고 있는 시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쓰는 수돗물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아버지: 물 받아 놓은 거 있으니까 그걸로 설겆이해라

나: 그렇게는 기름기 있는 그릇 씻을 수도 없어요. 그리고 온수 좀 쓸게요. 기름기가 없어지질 않아요.


고분고분한 며느리와 자식들만 보다가 큰 며느리인 내가 가서 하는 말대꾸는 우리 시아버지의 수명을 단축시킬수도 있을 만큼 원킬 한 방이 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덜 버럭하시는 것 같은 것은 내 착각일수도-.-


시아버지 양복점의 이름은 'ㅇㅇ라사'였다. 실명을 거론할 시 알 수 있는 사람도 있을까봐 밝힐 수 없네요.

전성기였을 때는 종업원이 서 넛은 됐다는 어머님의 무용담같은 이야기를 결혼 초기에는 자주 들었고 저녁에 아버지가 들어 오셔서 돈 세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주장하는 남편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닐 겁니다.

쌀 한가마니로 시작했다는 양복점에서 집도 사고 자식들 중 한 명은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서 공부도 시키셨으니 아버님이 만든 양복 어깨 뽕 처럼 자부심이 대단하셨을 겁니다.


친구 집에서 중학교 때까지 월세를 살아 봤다는 남편은 그게 정신적인 유산이 되어 결혼 할 때는 자기 집은 새로 분양받아 가지고 있는 분양남이었습니다. 서른 하나에 새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버님 아래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은 듭니다.


시댁의 부귀영화의 시절이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결혼하고 나는 한동안 땡땡라사 큰 며느리로 불렸고 이제 시아버지는 옷 장속에 남아 있는 자신이 지으신 양복 몇 벌만이 당신이 양복쟁이였음을 증명할 수 있을테지만

테일러 집안의 장남답게 남편은 손바느질도 잘 하고 다림질도 잘 하는 편이라 결혼하고 우리 아이들도 꿰맬게 있거나 다림질할게 있으면 아빠를 찾지, 절대로 엄마를 찾지 않습니다.


보고 배운게 무섭긴 하네요. 몸에 배인대는게 그런 것인가 봅니다.


아끼고 아껴 이천만원씩 자식 세 명에게 쏴 주시고 지금쯤 마음이 헛헛하실지 후련하실지 그 마음은 모르겠으나, 우리 주지 마시고 다 쓰지 뭐 하러 주셨어요. 하고 침 한 번 바르고 전화 드렸더니 시아버지 단 하마디로 정리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걱정마라'


내일은 시댁 식구들이 모여서 어버이날 식사를 하는 행사가 있어 남편은 내려가야 되고 나는 못 갈 이유로 남지만, 감사장을 만들어서 보내려고 꼼지락거려봤습니다.


수돗물도 마음대로 못 쓰게 하고 전기, 온수 통제가 되는 독재 시댁이지만 그렇게 아끼고 모아서 자식들에게 주고 가는 부모의 마음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진심으로 만들어 드리는 이 상장에 부상이 변변치않아서 시부모님 마음에 드실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부모 마음이 좀 알아지는 오십대 중반이 되고 보니 살아오신 세월이 만만치 않으셨겠구나 하는 연민같은게 들긴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자주 쓰지 않을 때, 브런치 팀에서 보내는 글이 있습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어쩌고 하는 그 말요, 브런치에 글 쓰는 작가들이라면 아실텐데요. 그 말이 날라와도 꿈쩍도 하지 않다가 시아버지가 보내 준 돈 이천만원에 글을 쓰는 걸 보면 돈이 좋긴 하네요.

있는 사람이 보면 크다고 할 수도 없는 이천만원이지만 팔천만원 있던 사람은 이천이 있어야 일 억이 되는 돈이니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이천만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고요. 지금 제가 팔천만원 있다고.

어제는 덤덤했으나 오늘은 어제보다 더 감사한 마음이 드는 아버님의 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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