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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묘지를 거부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돈을 주셨습니다. 브런치 편이 조회 수 5만을 넘었다는 알림이 떴습니다.

4명의 자녀에게 2천씩 8천을 나눠 주시고 지금쯤 시아버지는 홀가분하실지, 옆구리가 허전하실지 정확한 심정은 모르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했던 내 말에 '걱정마라' 한 소리 하시고 전화를 끊으신 걸로 봐서는 홀가분하다에 비중이 실려있는 답변 아닐까 싶지만 분명한 것은 돈을 나눠주는 시아버지의 마음은 종활(終活)이라 생각됩니다.


일본에서는 활(活)자를 붙여서 글자를 만드는 게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혼활(婚活)은 결혼을 위한 노력, 취활(就活)은 구직 활동, 종활(終活)은 마지막 생애 정리 활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아버지가 우리들에게 주신 돈은 시아버지의 종활(終活)에 해당되는 것일테고 시아버지의 종활은 묘지를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삼십년 전 쯤 마련해둔 시댁의 가족 묘지 조성에는 우리도 300을 냈고 그 땅에 시아버지는 자식들 모두 끌고 들어가서 사후세계에서도 일가를 이루겠다는 찬란한 꿈을 가지고 계셨는데 묘지의 형태가 삼십년을 거치는 동안 봉분의 형태에서 비석만 얹는 평평한 형태로 생각만 바뀌셨을 자식들도 줄줄이 데리고 가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셨을텐데 아버지의 말이라면 싫어요 소리를 했다는 남편을 내가 시아버지에게 '그건 싫습니다' 소리를 것이 바로 시댁 가족 묘지에 함께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봉분의 형태부터 절차를 미리 정해놓아야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시아버지께서 부쩍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저는 거기에 들어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소신발언을 했다가 어이없어 하시는 시어머니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 : '저는 거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시어머니 :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시며) '그럼 너는 어디로 들어가냐'. 

나 : '그건 제가 알아서 결정해요. 어머니' 

시댁 가족들 모두 모여 있던 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은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을테지만 살아서도 자기 자식, 죽어서도 너는 내 자식이라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을 시부모님에게는 충격이었을테지만 충격받으셨을 시부모님의 마음만큼이나 나도 진심이었습니다.


이천만원을 주셨어도 시댁 가족묘에 합류하고 싶지 않은 걸 보면 돈이면 다 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하여간 싸가지없는 며느리 대회에 나가면 순위 안에 들 게 분명할 나의 소신발언으로 시부모님은 살짝 현타가 오셨는지 이제는 함께 데리고 들어가겠다 뭐 그런 대화는 없어졌네요.

남편 : 그냥 가만히 있지 그랬어.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가 함께 묻히는지 따로 묻히는지 부모님이 알게 뭐야.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을테니 앞으로 같은 이야기 나오면 그냥 가만히 있어 줘.

맞습니다. 남편이 백 번 천 번 저보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감정이 올라 오면 입으로 말이 먼저 나오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감정을 누르고 이성으로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족입니다.

티나 에프냐 로 따지면 남편은 티고 저는 에프인가봅니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말 한마디인것은 분명합니다.

남편의 한 마디로 다시는 시댁 식구들 앞에서 묘지에 대한 소신발언은 자제하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이 규칙적이지 않아서 열심히 쓰라는 경고성 알림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래도 별 감흥이 없어서 열심히 안 썼지만 시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연달아서 글감이 생겨나고 있으니 결국 돈이 좋긴 좋네요. 비록 가족묘는 거부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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