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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도 준비가 필요했다.

호흡곤란편

시댁 이야기를 쓰다 보니 화요일에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등판하게 되는 시어머니께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서 보내 드려야 되나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글을 써 놓고 나서 남편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시댁의 이야기를 까발리고 쓰는게 불편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정리된달까. 분명히 그런게 있어서 이야기 하나 쓰면서 하나 지워가는 것처럼 쓰면서 마음을 비워내는 중이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 '호흡곤란 편'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쇼핑몰 앞 스피커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직원 여러분 개점 5분 전입니다. 손님을 맞이 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결혼도 마음을 여는 일이니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했어야 됐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만난 지 석달만에 호들갑스럽게 갑자기 한 결혼에 당연히 덜컹거림이 있을 수 밖에 없었구나 나는 요즘에야 힘들었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나의 시간들에 대한 복기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바둑 시합에서 이고 오든 지고 오든 자신의 수들을 복기하면서 전략을 세웠다는 대사가 있었다.

이미 교통정리가 끝난 4차선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요즘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기는 분명히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다만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 받던 그 때, 내가 복기라는 걸 했더라면 나는 부부싸움의 횟수를 줄이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반복되는 패턴이었던 어머니의 수는 이미 읽혀서 내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그 분이 내게는 새어머니같았던 존재였으므로 나는 입으로는 '어머니' 했지만 하고 싶었던 말들은 꾹 삼키기만 했고 분출은 남편에게만 했으니 우리는 지구에게서 벗어나지 못 하는 달처럼 늘 같은 모양을 반복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시어머니 : ' 저녁먹고 가라, 우리 땡댕이는 5년동안 통근도 했다'

나 : "네 어머니 , 그 때는 결혼전이었고 지금은 결혼했잖아요. 차도 없고 아침에 가려면 불편하니 집에 가서 쉴게요"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는데 왜 말을 못했을까. 어머니 탓 할 것도 없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5년 통근 가스라이팅을 보내주렵니다. 


'호흡곤란'은 큰 애 낳고 돌 전에 일어난 일이다. 오래된 주택에서 사실 때라 시댁은 마루가 있던 옛날 구옥이었고 씽크대만 있었을 뿐 정말 옛날 집이었는데 어머니는 성격이 워낙 깔끔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주방 바닦부터 걸레로 닦아놓고 일을 시작하셨다. 그러니 어지러진 꼴도 못 보시고 당신의 음식 맛에도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이셨는데 둘째 아들네 집에 간다고 나에게 집을 봐 달라고 부탁하셨다.


큰 형님과 함께 서울 사는 둘째네 집을 다녀 오시느라 집 봐달라고 하신건데 시아버지 밥 차려드리는 일부터 집 정리,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오는 걸 보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 까지가 부탁의 범위였을텐데 나는 그렇게 폭넓혀서 생각하질 못했다.

토요일이었고 남편은 당직 근무라 나 혼자 돌 전 아기를 데리고 우리집이 아닌 곳에 있는 것 부터 쉬운 일이 아니라 혼자있더라도 맘 편한 내 집으로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마침 막내 여동생이 전화를 했다.

막내 여동생: "언니 나 지금 언니네 집에 왔는데 시댁 가 있었구나"

재수하고 있던 여동생은 우리 큰 애가 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우리 집으로 온 건데 내가 없으니 시댁에까지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집으로 가면 안되겠냐고 했을 때 남편은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술 한잔 하시고 집에 오신 시아버지께 여동생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집에 가도 될까요 그랬더니 그럼 가라고 괜찮다고 하셔서 아기 가방을 싸들고 버스 한 번 타고 택시 한 번 갈아타고 우리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은 저녁에 터졌다. 서울에서 돌아 온 시어머니 눈에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낡지만 반질반질한 주방은 라면 끓여 먹고 치우지 않은 냄비가 개수대에 있었으며 라면 냄새는 환풍기도 제대로 없던 주방이라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바닥도 신문지부터 널어져 있던 상태였을 것이다.


서울에 함께 갔던 형님을 태우러 처가에 온 고모부와 시아버지는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드신 거고 설겆이는 당연히 안했고 식사하면서 신문 보는 습관이 있던 고모부는 신문지를 아마 그대로 한 쪽으로 밀어 놓았을 것이다. 당연히 꼴이 어땠을까 안봐도 훤한 그림이었다. 


집 비워놓고 있다 돌아왔을 때 깨끗이 치워진 상태가 아니면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그런 분이셨는지 어머니는 화가 잔뜩 나서 나에게 전화를 하신 거다.

시어머니: "너는 집에서 시아버지랑 땡땡이 아빠 라면 끓여 먹게 했냐, 집 꼴은 엉망이고"

어머니가 화 난 이유는 집이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아버지와 사위에게 라면 끓여 먹게 해서 였는지 아니면 저녁까지 있으면서 집을 반질반질 치우고 있었으면 했는데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중간에 돌아가버려서였는지 나도 어머니 마음은 모르겠지만 그나마 허수아비 같더라도 남편이 있던 상태에서 공격을 당하는 것과 나도 감당이 안되던 돌 전 큰 애와 함께 있다가 어머니에게 전화로 당신의 기분을 고스란히 퍼붓는 것을 듣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것이었다. 


속절없이 무너졌다. 억울하고 분하고, 시아버지 밥 차려주고 고모부 저녁 차려 주라고 내가 결혼한 것도 아닌데 그들이 취향대로 먹은 저녁이 단지 라면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설겆이도 안 해 놓고 라면 냄새 풀풀 나게 해놓고 있었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분노에 가까운 화를 나에게 전화로 퍼부으셨다.


그리고 함께 서울에 다녀온 고모(큰형님)도 중재자의 역할을 하진 못했다. 그 분 마음에도 내가 남아서 당신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저녁을 차려주길 원했던 것 같고 그것이 큰며느리가 해야 될 소임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시어머니, 나, 형님 이렇게 삼자대면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때문이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하고 묻질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끝난 사건이 되었으니 주먹 한 번 제대로 허공에 대고라도 휘두르지 못 하고 나는 링 위에서 쓰러진 패배자가 되었다.


한 때 다니던 국민학교의 웅변 연사였던 내가, 도시 학교로 전학가기 전 전교 부회장까지 했던 내가 그렇게 한 마디를 못하고 어머니의 화내는 소리들을 들어냈다. 혈압은 상승했고 당직 근무중인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당신만이라도 내 편이 되어다고 했으나 남편도 근무중에 날벼락이었을 고부갈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그가 했던 말은 '그러게 처제는 돌려보내고 그냥 집에 있질 그랬어. 그랬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거였다'였다.


어머니에게 갔어야 될 분노는 남편에게 방향을 틀었고 그 일로 남편과 전쟁같은 싸움이 벌어졌다.

남편은 남편 말만, 나는 내 말만 하다가 중간에 욕실에 들어 간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억장이 무너지고 숨이 안 쉬어지는 호흡곤란이 온 것이다.

싸우는 중에도 자기 부인 죽는 꼴은 못 보겠던지 남편은 물을 끼얹어가면 정신 차려 소리를 질렀다.


남편 : "정신차려" 찬물 쫘악

더 했다가는 119에 실려 가짜로 혼절한게 뽀록 날까봐 찬물 한바가지 맞고 눈을 뜨긴 했지만 그땐 정말 이 놈의 집구석, 탈출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완전히 조작된 쓰러짐은 아니었음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쓰다보니 이번 편에 등장하는 시누이, 그녀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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