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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레오치바

 '누레오치바(ぬれおちば, 젖은 낙엽족, 거추장스러운 중년 남자)

남편이 퇴직을 했습니다.. 남편은 한사코 진짜 퇴직은 아니다, 공로연수 기간이니 앞으로 일 년 남은거다. 

"그 증거로 월급이 나오지 않느냐"라고 말 하지만 연금받으면 퇴직이고 월급받으면 직장인이 아니라, 집에 있으면 퇴직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남편이 난리 때굿을 쳐도 현실적 체감은 퇴직이 맞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 집으로 돌아 온 남편은 34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일주일을 넘겼고 집에 있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슬기로운 퇴직 생활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34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낸 그 어떤 일주일보다 지난 주 일주일이 가장 길었을 남편은 집안 일도 어지간히 하고 살림에 도움이 되는 편이라 도움이 되면 됐지 신경 쓰이는 면은 없는 사람이지만 이제부터 쭈욱 집에 있게 되는 일은 서로 간에 마음의 준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편은 전주에서 시작해서 대전찍고 대구 거쳐 다시 전주 찍고 제주도까지 다녀 온 후 춘천으로 날라가더니 과천 입성 후 전주와 공주 청주 다시 대전을 찍은 후 안양에서 직장 생활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러느라 우리집 삼남매는 태어난 곳이 각각이고 큰 애는 초등학교만 전학을 두 번 했고 중학교 전학까지 한 번을 하고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네요.

결혼하고 나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나도, 전주에서 새 신자 입교반에 들어 간 후, 대전에서 교리를 받고 대구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잦은 이사는 삶의 지속성은 없었으나 대신 즐거운 기대감은 있었으니 제주도 살 때는 저녁마다 바닷가에 내려 가서 발에 물 담그고 다시 올라 오는 현지인 생활이 즐거웠고, 삼남매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들려 오는 현지 사투리가 즐거워서 아이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춘천 살 때는 좀처럼 가기 힘들었던 화천 인제 양양까지 도민 정신으로 훑고 다녔으니 전국구적인 삶은 우리 가족의 활동 범위를 넓혀 주었고 그게 싫지는 않았으니 남편의 직장 이동이 싫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란게 그렇더라구요. 대구 살 때는 대구 사투리를 쓰고, 제주도 살 때는 제주도 말을 씁니다.

2002년 제주도 살 때 네 살이었던 셋째가 가장 먼저 배운 제주도 사투리는 "무사"였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사"(왜?) 라고 묻던 아이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던 상황들은 남편의 전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지만 남편의 직장 이동이 만들어 낸 가장 큰 결과물은 큰 아이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전주에서 제주도로 했던 이사였다는 겁니다.


학교를 가려고 해도 통학버스가 와야 되는 해발 400고지 관사에서 아이가 다닐 수 있는 학원은 없었습니다.

전주에서는 단지 앞에 있는 태권도 학원을 다녔는데 제주도에서는 내가 운전해서 태워다 주지 않으면 학원도 갈 수 없었고 미술 학원이나 어린이집도 일정 인원을 모아서 우리 쪽에서 학원과 협상을 해야 만 학원 차가 올라와 주겠다라는 조건이 붙는 동네여서(일단, 눈이 오면 아랫동네 내려가기가 후덜덜 거렸던 동네였습니다.)


어린이집 원장 " 네 어머니. 그 동네는 좀 힘들어요.... 하지만 4명 이상 올 수 있으면 생각해 볼게요"

치킨집 사장 "네, 네. 못 가요. 아래로 좀 내려 오시면 중간에 받아 가시죠"

중국집 "열 그릇 시켜도 불어서 못 가요"


소길리, 이효리가 살면서 이름을 날린 동네였지만 이효리보다 15년 전 쯤 내가 먼저 살 던 소길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소길리도 급이 있어서 이효리가 살 던 소길리는 아랫동네였고 내가 살았던 소길리는 해발 400고지, 엄마의 운전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이었습니다.


2004년 12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 관사에서 몇 마리로 협상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후라이드 치킨을 받으러 관사 대표 아줌마로 눈 오는 밤, 운전을 하고 내려 간 소길리의 눈 오는 밤 풍경은 "미쳤다" 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습니다. 


옮겨 다닐 수 밖에 없는 남편의 직장 생활 덕분에 가족끼리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지난 시간들이 싫지 않았으니 그 또한 남편의 덕분이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34년 동안 성실히 해 준 직장 생활 덕분에 아이들도 교육 시킬 수 있었고 연금이 보장되어 노후 걱정을 덜 수도 있으니 남편의 정년퇴직은 열심히 살아 온 상장 같은거라 생각됩니다.


남편 친구들의 단톡방에서 며칠 전 누군가 보내 온 "누레오치바"(젖은 낙엽)에 대해서 남편이 물었습니다.

남편 "이거 뭐라고 읽어"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남편은 음독을 알고 싶어 했지만 나는 내용을 설명해줬습니다.

퇴직하고 집에 있는 남편이 은퇴 후 아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는 상황을 여자 입장에서는 신발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여기는 것이라고요.


일본의 심리학자인 이사야마 교수가 만든 용어라고 하는데 젊어서는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람만 불어도 알아서 굴러가는 낙엽이 비에 젖은 축축한 낙엽이 되면 신발밑창에 들러 붙어 떨어지지도 않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는 걸 퇴직하고 집에 돌아 온 중년 남편에 비유한 용어입니다.


퇴직한 중년 남편을 누레오치바(ぬれおちば)- 젖은 낙엽말고도 そだいごみ [粗大塵芥] 소다이고미: 돈 주고 버려야 되는 대형 쓰레기라고도 부르는 일본 아줌마들이 무섭기도 합니다.

웃는 얼굴은 우리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 상냥해 뵈는 얼굴에 그런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게 칼의 나라답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식이니 삼식이니 하면서 남편을 훏어 내리는 우리도 그 용어 자체가 칼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젖은 낙엽과 대형 쓰레기같은 남편들 덕에 가정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고 살았지 않았나요.

다른 가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집은 남편이 버텨주고 견뎌주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바르게 자랐고 딸들이 스물 일곱, 여섯 먹었어도 '아빠' 부를 때 혀가 짧아 집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제는 돌아와 소파와 한 몸이 되고 유튜브 속으로 들어 가서 살 것 처럼 구는 남자 사람이 집에 있어도 그들을 젖은 낙엽이니, 대형 쓰레기같다는 말로 깎아 내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이식이 삼식이도 금지입니다. 남편을 그렇게 대하는 순간 나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 귀하게 대할 수 밖에 없겠죠.


이상, 퇴직한 남편 한 명을 집에 보유하고 있는 아줌마의 다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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