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졸업식

대학교 졸업식은 인생학교 입학식

아들이 졸업식을 했다.

아니 식은 없었고 사진만 찍고 싶은 곳을 골라가면서 찍는 새로운 형태의 졸업식을 했다는 게 맞다.

더운 날,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아이스커피를 마셔가면서 힘을 내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는

나름 강행군이었다.


셋을 키우고 있지만 딸들 중 하나는 체육 특기생으로 4년 장학생 자격, 입학이었기 때문에

학비가 들지 않고 있고 한 명은 3학년에 진학하지만 국가의 혜택과 본인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누적되어 있는 학자금 대출이 한학 기분만 있기 때문에 거의 학비가 들지 않았다.


아들만, 사립대학교 음악대학 졸업생이라 사천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학자금 대출과 졸업장을 바꿨다.

김숙이 난다김이라는 부캐로 불렀던 "사천만 땡겨주세요" 노래가 생각난다.

무이자 무담보로 잘되면 이자를 얹어 원금의 따블을 얹어 확실히 갚을게요 걱정마요~ 사천이 뉘 집...

이런 가사였었다.

이게 우리 집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사천 가까이 땡겨쓰고 졸업을 한 아들이다.


사천을 땡겨 썼으면 뭐 어떠냐!

갚으면 되고 당장 졸업식을 했다고 해서 담 달에 돈 벌러 나갈 곳 없는 청춘이지만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놓지 않고 있다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 믿는 철없는 엄마 여기 있으니 그것도 우리 아들의 복이라 생각한다.


전주에서 입학하고 제주도에서 중학년을 보낸 후 춘천에서 졸업을 한 파란만장 초등학교 졸업사진이다.


졸업식을 하고 입학식이 바로 이어지는 인생의 코스가 끝난 졸업식은 의미가 남다르다.

더 이상 진학할 학교가 없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 한 대학교의 졸업식은 뭔가 허전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었다.


나는 그랬었다.

1987년에 입학해서 1991년에 졸업을 한 전형적인 386세 대지만 그때만 해도 시국은 어수선했으나

자기가 노력하면 취직이 지금처럼 어려운 때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우리 과 여자 동기 중 하나는 공기관에 작은 아버지의 추천으로 들어가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기도 했었다.

누가 말을 해주면... 그런 게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작은 아버지를 부러워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노력하면 어디로든 돈벌이할 곳은 지금보다

더 많았던 때였다.

무슨 배짱으로 대학교 4학년을 놀면서 다녔는지 지금은 이불 킥을 할 만큼 후회되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도 못할 만큼 생각 없는 청춘이었다.

남한테 미안한 일은 살면서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진심으로 1987년에서 1991년의 나에게는 미안하다.

좀 더 열심히 목표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아이들을 키울 때 힘이 덜 들었을 텐데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의 기회가 주어지는 최적의 시간이 대학교 4년 동안일 텐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지금 안 걸 그때 알았더라면...

알고 나니 오십이 넘었다.


더 늦기 전에 나도 내 인생을 좀 더 보람있게 보내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오십이 되는 해에 교토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고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마지막 졸업식이 될 졸업식을 했다.


9982A9425C885C0305[1].jpg 상타러 나가서 서 있는 뒷모습이 나다.

1년 과정의 수료였지만 졸업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매일 내주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한 학생에게 주는 특별상이었다.

출석율 99.1였으니 과제도 당연히 빼먹지 않고 제출했고, 성적은 90점대로 졸업을 했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1987부터 1991년 2월까지의 나를

일부분 보상해주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대학교 졸업식은 인생학교 입학식이라고

알아들었을지, 못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출근할 곳이 없는 스물여섯살이 갑갑하지 않을리가 없다.


대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는 대학교라는 이름만 붙는 곳이면 어디라도 입학한 해주면

바랄게 없을 것 같더니, 졸업을 할 때는 취직이 된 아이들을 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졸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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