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피아노를 배우다.

피아노를 배우다.


죽을 둥 살 둥 리코더를 배웠더니 피아노 치지 않으면 점수도 안 주던 음악 선생님 덕분에 중학교 때 피아노가 대단한 악기가 돼버렸다.


전학 와서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를 봤다.

나랑 친하게 지냈던 "김옥"이라는 아이랑 집까지 함께 다녔었는데 하루는 옥이가 자기가 다니는 피아노 집에

들렀다가 함께 가지고 했었다.

보통 때는 옥이가 다닌다는 피아노 집 앞에서 헤어지고 혼자 갔었는데 그날은 함께 피아노 집까지 간 거다.


전학 와서 시골 친구들을 몽땅 잃고 옥이라는 친구 하나를 얻었다.

물론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친구이긴 하지만 1980년 6학년 때 옥이가 있어서 상실의 시대를 견뎠다.


"군것질은 절대 하지 마라 그건 나쁜 짓이다"

엄마가 하도 말씀을 하셔서 나는 군것질은 하지 않고 집까지 한 번에 다니는 아이였었다.

집에 가면 엄마가 부침개도 해주고 빵도 쪄주고 저녁이면 아버지가 해태당 빵도 잘 사 오셨기 때문에

학교 앞 군것질거리에 한 눈 팔지 않고도 견딜 수 있기는 했지만 군것질은 나쁜 짓이라고 가르쳤던

우리 엄마 말과는 달리 착하기만 했던 옥이는 문구점에 들러서 낱개 한 개에 십원 하던

땅콩 캐러멜을 두 개 사서 저 하나 먹고 나 하나 주면서 그랬었다.

"땅콩 캐러멜이 젤 맛있어"

지금도 투명 비닐 종이에 앞 뒤로 꽁꽁 묶어져 있는 땅콩 캐러멜을 보면 옥이가 가끔 생각난다.


그때는 피아노 학원이 없었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친구 옥이는 피아노 집이라는 주택으로 나를

데리고 갔고 작은 방 피아노 한 대 아래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앉아있어서 옥이를 따라서 피아노 집에 가서

앉아 있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는데 나도 피아노 집에 다닐 아이로 보였는지 선생님이 아주 잘해주셨었다.


그때 피아노 집 렛슨비는 만원이었고 주산학원은 사천 원이었었다.

엄마가 뭐라도 배우라고 했을 때 나는 주산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6학년 때 내 마음에는 만 원짜리 피아노 학원보다 사천 원짜리 주산학원이 괜찮아 보였다.

그때는 딱히 피아노를 배워야 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주산학원이 좋아 보였고 시골에서 살 때는 우리 집이 부자인 줄 알았었는데 이사 와서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서 만 원짜리 학원보다는 사천 원짜리 주산이

낫겠다 싶었다.


어린 마음에 돈 걱정이 시작된 거다.

피아노와 주산에서 선택한 게 아니라 만원과 사천 원의 기준으로 선택했던 시장 안에 있던 사천 원짜리

주산 학원을 몇 달 다니면서 급수도 땄는데 비 오는 날 주산 가방을 들고 갔다가 물 먹은 주판알이 움직이지

않아서 짜증이 나서 그만둬버렸다.


주산 알이 빡빡해져서 그만둬버린 주산 학원

그렇게 단순 명료한 삶을 지향했던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걱정이 많은 어른이 돼버렸다.


음악 선생님한테 은주가 불만에 가득 차서 따지듯이 질문했을 때 리코더를 불어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나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였지만 그떄만해도 피아노를 배워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절실히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음이 확 하고 바뀌기도 하는 게 인생이라

중학교 2학년 때 놀러 갔던 소영이네 집에서 소영이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나도 피아노를 배워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대여섯 명쯤 놀러 갔던 것 같다. 함께 놀던 애들이 우리 집만 빼고 다들 잘 사는 집 애들이었다.

끼리끼리 놀던 애들 틈에 내가 왜 끼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지만 함께 놀던 애들 중에는

전교 1등부터 소영이처럼 아빠가 주유소를 해서 부잣집인 애들까지 다 내 친구였었다.

소영이네가 집을 새로 지어서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거실에 피아노가 있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던 검은색 피아노가 새로 지은 소영이네 집보다 더 좋아 보였다.

누군가가 말했을 것이다.


"한 번 쳐 봐"

반에서는 덜렁거리고 웃음소리도 컸던 소영이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엘리제를 위하여"를 쳤고 거기 모였던

애들이 갑자기 피아노 배틀이 붙어서 각자 칠 수 있는 곡을 쳤다.

아니 쳐댔다.

음악 실기시험에서 피아노를 못 쳐도 리코더를 잘 불 던 아이들보다 점수를 잘 받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더니 친한 친구가 모두 피아노를 치는데 나만 못 치는구나 싶으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면 당장 피아노부터 배우고 싶다고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돌아왔다.


"엄마 나 피아노 배울래"

"시끄러워 돈 없어"


엄마가 나한테 시끄럽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았던 아버지 월급으로 다섯 명을 키우면서 살림에 쪼들리던 엄마가 제대로 보이던 때였다.

아버지 월급날이면 노란 봉투에서 돈을 꺼내서 한숨을 쉬면서 돈 쓸 곳을 갈라놓던 엄마로서는 내가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하는 게 쓸데없는 소리였을 거다.


내가 내 의지로 뭘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피아노가 처음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도 피아노를 배워서 점수를 잘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 의지로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진 거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시끄럽다"라고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이후 중학교 2학년의 삐뚤어진 반항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문을 쾅쾅 소리 내고 닫고 여는 것은 기본

밥 먹고 숟가락 소리 내고 밥상 위에 내려놓는 것은 옵션

말대꾸는 필수

말 끝마다 "피아노 집 다니고 싶어" 조르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살면서 그때처럼 고집부린 적도 단연코 없다.

아버지 월급 삼십만 원으로 피아노 집 이만 원 주는 게 엄마로서는 출혈 같은 지출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 월급 세면서 삼십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고 한숨을 쉬는 걸 늘 봤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월급이 삼십만 원인걸 기억한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의 기세도 나의 꾸준한 반항으로 결국은 엄마랑 나는 우리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피아노 집으로 가서 등록을 했다.


담에는 장미가 피어 있었고 별채 같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에 피아노가 두대 앞 뒤로 있었고

옥이가 다니던 피아노 집은 아줌마가 선생님이었었는데 내가 다니기로 한 피아노 집은 젊고 예쁜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6학년 때는 피아노 집 렛슨비가 만원이었고 중학교 2학년 때 다니기로 한 집은 이만 원이었다.


집에서는 그렇게 다니지 말라고 하더니 피아노 선생님 한테와서 돈을 주고 갈 때 엄마는 자식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을 때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던 얼굴로 인사를 하고 돌아갔었다.

우리 집과 삼백 미터쯤 떨어져 있던 피아노 집에 오려고 그동안 엄마한테 그렇게 조르고 거절당하다가

겨우 허락받고 온 건데 어쩜 엄마가 저렇게 말하지


동화책에서 봤던 가증스러운 새엄마를 보는 듯했으나 피아노를 배우게 해 줬으니 괜찮다고 넘어갔다.


중학교 2학년 늦게 시작한 피아노를 무서운 속도로 책을 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소나티네를 책상 위에서 손가락 연습을 하면서 외워 버렸다.


20190421_171407.jpg 나의 첫 소나티네



시작은 미비하나 끝은 창대였으니 나는 그렇게 고집부리고 오기 부려서 시작했던 피아노를 내 동생들은

내 덕분에 순조롭게 다닐 수 있었고 우리 집 세명 아이들도 모두 내가 가르쳐서 피아노 기초를 뗄 수 있었다.


그게 다 내가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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