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전지적 한국인시점1

in 보로니야

애들 키우고 뒷바라지할 때는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아르바이트하던 보로니아에서는 전지적 한국인 시점으로

교토의 일본어 학교에서는 전지적 학생 시점

아줌마 시점으로

서너 개의 자아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살았다.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헤롱헤롱헤롱


그래서 가졌다.


자아 조정시간

"자아 조정 시간"

학교에서는 표준어를 쓰는 선생님들과 발음이 구질구질한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참으로 이상한 게 중국애들이 일본어 하는 건 빵집 아줌마들이 사투리 쓰는 것만큼이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일본어 발음은 중국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이 훠얼씬 A급이었다.


수업을 마치면 20분 뛰다시피 날아가서

헛둘헛둘, 학교가 끝나면 늘 뛰었다.

옷을 갈아입고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물한 병 옆구리에 차고 빵집 출하부로 출근을 했다.


이런 건 만화에나 등장하는 거고 머리에 망을 쓰고 모자, 마스크 쓰고 중무장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모두 모자 속으로 밀어 넣고 눈만 내놓은 채로 그러고도 모자라 마지막 문을 열기 전에는

거울을 한 번 쳐다 보고 깔끔이 테이프로 온 몸을 밀어주는 쎈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빵 봉지 안에 들어갔다가는 할복이라도 할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하는 게

일본 아줌마들이었다.


평일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2시부터 6시까지가 내가 일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일하면서 놀란 게

일하는 동안 이야기도 하고 누구를 씹기도 했지만 (주로 하마 다상을 씹었는데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사람 없는 데서 욕하는 것과 관리자급을 씹는 건 똑같았다)

단 1분도 놀지 않았던 일본 아줌마들!


즉!!! 입은 놀아도 손은 정말 빠르게 움직이면서 쉬지 않고 빵을 자르고 포장하고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빵집의 노예처럼 일을 했다.

막례 할머니 말을 내가 하고 싶을 정도로 아줌마들은 개미처럼 일했다.


빵집 출하부의 일이라는 게 빵이 구워져서 우리한테 넘어오면 그걸 종류별로 자르기도 하고 같은 종류별로

포장도 하고 백화점이나 큰 거래처로 가는 택배 물량 따로, 개인이 인터넷으로 주문 한 택배 물량 따로 포장하고

보로니아 빵집에서 판매될 물량 따로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는 건데 빵 종류도 많고 초보인 내가

보기에는 초코빵이나 캬랴멜 빵이나 색깔이 비슷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빵 종류를 실물로 보고 익히는 게

학교 수업보다 더 어려웠다.


캐러멜 커피 빵, 건포도빵, 녹차 팥, 검은깨 치즈-빵값이 비싸기도 했다.

학교에서 배운 수업도 다시 복습해야 되고 빵집의 빵도 종류별로 다시 외우고 할 일도 다 외워야 되고

학교에서나 빵집에서나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어려웠던 일은 바로 1.5근 식빵과 3근 식빵의 포장지를 교체하는 공정

비닐 롤을 기계에 끼워서 교체해야 되는 데 처음에 후지모토 아줌마한테 설명을 들었을 때

저 아줌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싶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본어 같았다.


사투리도 가장 심하게 쓰는 데다 기계의 교체 과정이 쉽지가 않아서 내가 그걸 해낸다면

이 세상에서 못해낼 일이 없겠다 싶었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는 담당이 후지모토 아줌마였기 때문에 후지모토 아줌마의 심한 사투리와

억센 억양으로 빵집 일을 배웠다.

인정은 있어서 시행착오 끝에 포장지 교체를 결국 해냈던 순간! 후지모토 아줌마가 함께 기뻐하고 손뼉 쳐주고 내가 무슨 시험에라도 통과한 것처럼 모두 웃고 난리가 났었다. 기뻐하며 소리 지르던 아줌마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 쫌 미친 거 아닌가 할 정도로 - 내가 일 하나 배운 게 그렇게 좋나 싶었지만

일본 사람들 정서라는 게 우리와는 좀 다른 게 있어서 내가 당연히 해내야 되는 일도 손뼉 쳐주고 격려해주는

정서가 있었다.


보로니아 대표상품 3斤식빵

목소리도 크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내가 후지모토 아줌마를 싫어했었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나카무라 아줌마도 좋았고 오노상도 좋은 사람이었고 한카이상,타카하세상도 친절했고 카미쓰나상도

엉뚱하고 재미있었다.

하루에 다섯 명 정도 한 조가 되어서 일을 했는데 처음에 싫어했던 후지모토 같은 아줌마는 사실 단순한

사람이었고 알고 봤더니 복병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말은 있었으니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알았냐

나는 그걸 눈물로 알았다.


모자 벗고 마스크도 벗고 앞치마는 던져 버리고 머리 끄댕이 잡고 한 판 붙고 싶었던 이치모토상

6시에 끝나는 내 일이 5시 50분 쯤 끝나면 정리하고 갈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 40분은 더 일해야 끝날 분량의 일을 턱턱 줘서 시간외 수당도 없이 끝나는 시간이 7시 가까이 되는게 한 두번이 아니어서

빵집 구석에서 디지게 패주고 병원비 물어주고 그만 두고 싶었던 마음을 꾹꾹 누르고

참다참다 세련된 일본어로 문장을 만들어서 따졌다.


너는 시계도 못보냐 이 나쁜 년아 한 두번은 너를 봐서 해줬지만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건데

후지모토 아줌마한테는 쪽도 못쓰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나쁜 년아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이후로 나는 6시에 칼퇴근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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