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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크족을 결심한 얘기를 애플민트의 남편(브런치명 톡쌤)이 풀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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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여행을 먹고 사는 부부
TV 여행프로그램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펼쳐진다.
"우리 갔을 때 코로나 잠잠해진 직후였는데도 사람 진짜 많았어, 그치?"
"꺅!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나온다! 진짜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감동적이었어."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예전 여행 갔을 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우리 부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그거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신발 아냐?"
"자기는 로마에서 산 옷 입었네?"
여행의 추억은 옷과 신발, 집안을 장식한 각종 인테리어 소품에도 묻어 있다. 여행지에서 산 물건들은 그 때의 풍경과 대화, 냄새까지 담은 저장고다. 만지면 자동으로 당시의 기억이 재생된다. 모두 아내와 함께 했기에 하나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다. 추억은 이렇게 우리 부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됐다.
3월, 5월, 9월, 12월 최소 1년에 4번은 여행을 떠났다. 전날 결정해서 무박 2일로 홍콩을 다녀온 적도 있을 정도로 여행에는 진심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에게 한 약속도 근사한 집, 두둑한 돈봉투가 아닌 여행이었다.
결혼기념일 만큼은
매년 다른 곳에서 보내게 해줄게.
지난해 결혼기념일 즈음 떠난 바르셀로나 숙소에서 맞은 아침.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여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도, 비행기는 탔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오르며 또 다른 여행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패키지 여행 못지 않은 촘촘한 여행 계획을 짠다. 1분 1초가 아깝다. 아내는 매번 기진맥진한다. 오후 10시만 되면 눈이 풀리고 질문에 제 때 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내 말에 기를 쓰고 반응을 해주다가 쓰러져 잔다.
아내는 느긋하고 즉흥적인 성격이라 촘촘하게 움직이는 여행을 해봤을 사람이 아니다. 안쓰럽고 고맙다. 정신이 가출할 정도로 기절하듯 자고 난 뒤, 다음 날이면 말끔하게 컨디션을 '리셋'하고 다시 내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선다.
낯선 여행지에서 아내가 가장 관심있는 건 놀랍게도 부동산이다.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를 가보고, 기회가 되면 그 안에서 묵어보는 걸 좋아한다. 근로 계약에 묶인 월급쟁이들이라 10일 이상의 휴가를 내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일을 그만둔 후에는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빼앗아 갔을 때도 정부가 하늘 길을 닫기 직전까지 비행기를 탔다. 코로나19로 중국 우한이 봉쇄될 때 한국인들이 전세기를 타고 우한에서 김포공항으로 '탈출'했는데, 그 전세기가 공항에 도착한 걸 보면서 우리는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입국자 자가격리 규정이 해제되자 마자 또 떠났다. 항공편도 극히 적고 공항 내 시설들도 대부분 폐쇄된 상태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외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으면 대책이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스페인으로 향했다. 10년여 동안 이어 온 결혼 생활, 여행을 빼면 뭐가 남을까 싶다. 사실 여행 없는 삶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02. 아이도 뺏을 수 없는 것
"지금이야 좋지, 나중에 후회한다~"
"힘들어도 아이는 그걸 잊게 할 만큼, 그 이상의 행복을 주는데 그걸 포기하게?"
"언제까지 둘이 재미있을 거 같아?"
딩크를 고민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말렸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한 시간 넘게 설득하려 했던 선배도 있었다. 무슨 뜻인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걱정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게 있었다. 여행이 대표적이다. 함께 하는 사람과 성격도 잘 맞아야 하지만, 시간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없는 생활'을 마음 먹게 됐다.
03. 늘어나는 가족 수가 버겁다
같이 살아보니 아내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요리를 못 하는데 하루 세 끼를 꼭 챙겨먹었다. 전형적인 '삼식이'다. 성격이 온순한 사람인데, 배가 고프면 달라진다. 자주 시름시름 아프다고 끙끙댄다. 약도 필요 없다. 배를 쓰다듬어줘야 잠이 들었다.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하고, 낯선 사람과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는 게 불편하다며 택시 타는 것도 싫어했다.
태생이 '프로 챙김러'인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이라 뭐든 내가 알아보고 해야 마음이 편했다. 내 일을 하는 김에 아내 것도 같이 했다. 잘하는 사람이 빨리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천생연분인 건지, 요리와 운전을 좋아했다.
오롯이 아내에게만 집중하고 챙기면 되는 삶이 행복했다. 지금도 웃으면서 요리하고 쉬는 날 출근하는 아내를 내 차로 출퇴근시킨다.
하지만 아내와 나를 제외한 누군가 챙겨할 사람이 추가되는 것은 버겁다. 아내에게도 지금처럼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족이 늘어가면 행복도 커진다는데…. 난 그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10년 동안 쌓아 올린 우리 부부의 '생태계'가 뿌리부터 흔들릴 거란 거부감이 든다.
04. 싸울 게 뻔한 미래, 피하고 싶다
아내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걸 좋아한다. 작은 것에 얽매이기 보다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렸을 때부터 과도한 과외에 시달렸지만, 효과 없이 돈만 버렸다면서 확고한 교육관을 갖고 있었다.
"나무도 의지만 있으면 잘 자라. 잘 못 자라면 또 어때. 꺾여도 보고 뒤집혀도 보는 거, 그게 인생이야. "
나와는 정반대였다. 요즘 나무는 물만 준다고 자라는 게 아니라는 게 내 교육관이다.
"비옥한 흙에 비료도 좋은 거 쓰고 햇빛이랑 온도도 다 맞춰야 해. 꺾이지도, 뒤집히지도 않게 해주는 게 부모의 책임이야. "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접점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시각이 다를 뿐 서로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의견 차이가 큰 만큼 그 과정은 정말 치열했을 것이다. 사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둘 다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어정쩡하게 타협하고는 뭔가 잘 안 되면 서로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게 싫었다.
자꾸 그 길만 보인다. 그래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 길을 가기에는 지금 부족한 게 없었다. 그래서 딩크가 되겠다는 결정이 그렇게 고민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