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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Jan 12. 2023

늦게 한 결혼의 장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를 걸 결혼 전에 알았다

퇴근한 서방은 오늘도 주머니에서지갑과 동전, 차키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둔다.

식탁에 그릇 외에 다른 것을 두지 말아달라는 나의 부탁·잔소리· 으름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눈에 거슬리지만 통하지 않는 말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식탁 위에 놓인 서방의 소지품을 말없이 책상 서랍으로 슬며시 옮겨 놓을 뿐.




"누가 이번 주 일요일에 나올 수 있어요?"


목요일 저녁, 예정에 없던 주말 근무가 생겼다.

부장의 요청에 5명의 팀원 중 누군가는 출근해야 하는데 서로 눈치만 볼 뿐 나서는 이가 없다.

누군가는 손을 들어야 끝나는 상황.

결국 연차가 가장 높은 내가 손을 들고 서로 난처한 상황을 매듭 짓는다.


직장생활에서 배운 일반상식은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꺼린다는 거다.

'나 아닌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기대는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하길 바라는 거 보다는 그냥 내가 하는 게 편하고 빠른 길일 때가 많다.  


후배에게 '왜 조금도 손해보려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하는 건 의미 없다.

나도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그런 상황 자체가 부당하게 느껴졌으니까.

월급 많이 받는 선배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잔소리는 내 속풀이 밖에 되지 않고, 상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무례하기도 하다.

나처럼 손 들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답이라는 법도 없고.

어차피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깨달아야 변한다.


남편도 후배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배우자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기에 위의 나열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고 배려해준다고 해도 같이 사는 사이에 인간의 특성을 거스르는 행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한두 번의 잔소리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의 행동은 당장 변하지 않을 거다.

변하지 않는다고 더 잔소리를 하면 자신을 바꾸려 한다며 반발하거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행동을 보기 싫은 사람이 움직이는 게 빠른 길이다.

말 없이 그의 소지품을 식탁에서 치운 이유다.


사실 한 켠으로 치우는 게 크게 귀찮은 일도 아니지 않나.

다행인 건 내가 자신의 물건의 말없이 한 켠으로 치우는 것에 대해서는 남편은 뭐라하지 않는다.

수차례 옮겨놓다 보니 어느새 서방이 알아서 서랍장에 넣어놓기도 한다.

그의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닌데, 의외로 효과가 있다니.

기대하지 않아서인지 그가 내심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넌 그게 참아지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인 24살에 결혼한 친구가 되묻는다.

결혼한 지 15년이 훌쩍 지난 친구는 남편과의 대화가 거의 없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과 다툼이 많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도대체 라면 먹고 왜 설거지도 안 하고 누워있는 건데. "

"왜 화장실을 그렇게 지저분하게 쓰는 건데. "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못 마땅하다며 툴툴대던 친구.

식사 후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는 것도, 퇴근 후 벗은 옷을 식탁 의자에 걸어놓는 것도 말없이 치운다는 날 이해할 수 없단다.


"참는다기 보다 그냥 내가 하는 게 속 편해서 그런 건데. "

"그래도 매번 어떻게 그렇게 해줘. 잔소리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리지. "

"잔소리 하는 게 더 귀찮겠다. "




함께 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이제 남편은 식사 후 나보다 먼저 일어나 설거지를 한다.

하지만 식탁 위에 차키와 카드, 마스크 등을 늘어놓는 건 변하지 않았고 내가 조용히 치운다.  


남편은 변한 부분도 있고 안 변한 부분도 있다.

나 역시 남편에게 마찬가지리라.

지금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사람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결혼을 늦게 하지 않았다면 인간에 관한 경험을 부부싸움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랑하는 이에게서 더 큰 실망과 상처를 받았으리라.


이 글을 본 남편이 씩 웃으며 내게 되묻는다.

"당신은 잔소리를 안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지?!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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