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간의 설연휴 내려갔던 본가에서의 마지막날, 2년 전 이사 온 이래 처음으로 시골의 외딴 단독주택에서 함박눈을 봤다.
아침 10시쯤눈이 떠진 건 눈길 운전을 걱정하던 언니의 볼멘소리 덕. 언니 말대로 창 밖이 온통 새하얬다.
어머니의 첫째 딸의 운전이 어려워졌거나 말거나,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망고 눈 좋아하는데!'.
와다다다 내려가 신발장에서 자고 있는 인절미의 생사 여부부터 확인했다.
언니는 와 진짜 너무 춥다를 연발하며 밖엘랑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고, 신발장부터 느껴지는 한기에 내 몸까지 움츠러들었다.
그치만 엄마아빠가 보내준 사진과 영상 속 망고는 눈이라면 환장하던 갱아지가 아니던가! 고민 없이 두꺼운 패딩을 두르고 망고와 눈 구경에 나섰다.
과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졌다. 우리 망고 얼마나 신날꼬.물 만난 고기처럼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쏘댕기고 싶어 하는 듯 해, 목줄을 풀어주고 네 꿈을 펼쳐보라 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 찰나 스쳤던 슬픈 생각 때문이다.
목줄을 푼 망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나서 시야 밖으로 사라질 기세로 전력질주해댔다.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가는 그
밖에서 목줄 없이 한 개를 책임지게 된 건, 그리고 그 개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내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본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쫄린 마음에 큰 소리로 망고를 불렀다.
'망고야!!!!!!!!'
고맙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준 망고
슬쩍 뒤를 돌아본 망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게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나를 올려다봤다.다행히도.
물론 한 번 발도장을 찍고는 다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전날 무리한 러닝으로 한쪽 발목이 시큰거리던 나로서는 그를 따라잡을 여력이 없었다.
첫 일정은 남의 집 마당의 온갖 잡동사니를냄새 맡고 구경하는 일. 개는 개더라도 장성한 사람까지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밖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겨우 오리목뼈로 유인해 마당에서 빼내고 나서도 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내 시야밖으로 사라졌다. 두꺼운 눈으로 덮이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는 수풀 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바닥 냄새를 맡는가 하면, 겨우겨우 아픈 발 이끌고 그 수풀 속에 따라 들어가면 갓 태어난 노루처럼 3초 만에 빠져나와 기껏 들어온 나를 허무하게 했다.
무엇보다 너무 추워서 정말 더는 그 동화 같은 숨바꼭질을 더 해줄 수가 없을 것 같은 한계에 이르렀다. '망고야 누나 발 너무 시려!!!'
전해질 리가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돌아다니다 그를 발견한 건 앞 동네 '바비'네 집 앞. 바비가 먹고 남은 사료를 버린 통에서 밥을 열심히 주워 먹고 있었다.
먹는 데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겨우 이제는 감각을 잃은 손으로 목줄을 채우고, 식사를 다 마치시기를 기다린 후에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가 영영 사라지지 않고 나와 함께 집에 돌아와 줬음에 감사했다.
안 가겠다고 버티는 망고
그러다 문득
나보다 수명이 한참 짧은 망고가 언젠가 이런 몇몇 장면으로만 남은 채 남은 내 삶 속에서사라지겠구나
누릿누릿 복슬복슬한 생명체가 눈 깜짝할 새 하얀 지평선 너머로 내 맘도 모른 채 깡충깡충 뛰어가고, 여기저기 그를 찾아 헤매어 보지만 가는 그를 잡기엔 역부족일 나의 모습.
지금에야 바비 밥을 훔쳐먹던 목에 '딸각' 목줄을 채우면 그만이지만
언젠가 나는 네가 사라진 저 들판을 혼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되겠구나
오늘처럼 내 곁으로 돌아오길 감히 바랄 수 없게 된 채로
그날이 늦게 왔으면
신이 난 그의 모습에 검정치마의 Everything 도입부를 bgm으로 입혀Sns에 업로드한 영상을 보다가도 혼자 슬픈 생각에 젖었다.
눈을 좋아하는 덩치큰 털북숭이
자기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는 모르고 매번 두 발로 서서 매달리려 하는 내 아가
망고야 너무 빨리 뛰어가지는 마
천천히 같이 가자 나 슬퍼
그럴 수 있다면 내 수명 절반을 주고 더 오래 함께이고 싶다
네가 눈을 좋아하는 만큼 나는 네가 좋아
야 나랑 오래오래 걷자. 내가 잘해줄게
I'm gonna love you like I'm gonna lose you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Cause we'll never know when we'll run out of time
먼 훗날 망고가 내 곁에 없게 되고 나면 자주 꾸게 될 꿈을 미리 꾼 것만 같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