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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Aug 25. 2019

그러니까 대체 그 애티튜드란 건 뭘까?

사람들이 그토록 애티튜드를 말했던 이유


입사하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애티튜드'라는 용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자세’나 ‘태도’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고오-급 단어를, 나는 회사에 들어오고 처음 반년간 500번 정도 들었던 것 같다. 대개 ‘애티튜드’를 논하는 문장은 이 말에 대단한 권위를 부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인데, ‘애티튜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애티튜드가 모든 일의 기본입니다’처럼 단정적인 격언들이었다.


90년대생 스테레오타입(나)은 저런 말을 굉장히 싫어했다. 회사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곳인데 자꾸 자세나 태도까지 지적하는 것이 선을 넘는 오지랖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에티튜드라는 단어는 언뜻 군대에서 늘 듣던 ‘군기’나 ‘정신무장’을 연상시켰기에 유독 거부감이 심했다. 그래서 가끔 회사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 그분이 ‘애티튜드가 정말 중요하지’라고 언급할 때면 ‘오우- 저 사람도 꼰대인가 봐’하며 마음속 미니 판결을 땅땅 쳐버리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애티튜드의 새로운 의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있었다. 회사에서 이벤트 페이지 제작을 위해 업체를 물색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 동안 여러 업체를 비교하다 마음에 쏙 드는 개발사를 발견하고 견적을 요청했다. 제시해준 가격이 예상보다 조금 높았지만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이어진 상세 상담은 꼼꼼하고 재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에 쫓기고 있던 우리 팀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더 이상 다른 업체를 찾을 것도 없이 여기랑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계약을 위해 미팅을 요청했다. 그러자 담당자분은 본인이 다음 주 휴가 예정이라 개발팀장을 대신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미팅에 오신 팀장님은 첫인상부터 아주 강렬했다. 그분은 금방이라도 호놀룰루 공항에 내린듯, 하와이 티셔츠를 입고 스냅백을 뒤로 비스듬히 쓰고 계셨다. 스타트업을 자주 만나는 내 입장에서도 첫 미팅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었던지라, '패션이 참 독특한 분이시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회의실에 총총 앉은 뒤 그분은 첫마디를 이렇게 던지셨다. '제가 제대로 못 듣고 왔는데 오늘 뭐하면 되는 거예요?' 2초 정도 정적이 흐를 만큼 회의실에 있는 사람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우리 팀은 짐짓 괜찮은 척하며 미팅의 목적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러자 그분의 두 번째 말이 좀 더 심해졌다. 그분은 흥미롭다는 표정과 함께 ‘좀 논외이긴한데 이 프로젝트, 이 회사에서 정말 중요한 거예요?'라고 물어보셨다. 이제 우리 팀 사람들은 이 사람이 보통 특이한 게 아니라 아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식은땀이 났다. 분명 괜찮은 업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상상도 못 했던 말들이 쏟아지니 팀원들에게도 민망할 노릇이었다. 물건을 사려는 손님이 도리어 영업을 해야 하는 웃픈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뒤로 그분은 어려운 개발 용어들을 줄줄 늘어놓으며 나와 팀원들을 가르치듯 설명하셨다. 'html개발을 기획자가 아실리가 없겠지만..', '근데 이 라이브러리 유료인 것 모르시죠?' 등등. 내가 너무 놀라서 화도 못 내고 있자, 보다 못한 우리 팀의 개발자가 이건 계약을 위한 회의이니 기술 회의는 나중에 하시자며 끼어들어주었다.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분 이상 해박한 지식을 춤추듯 뽐내셨다. 마지막에는 계약서를 조금만 수정해서 진행하자며 당차게 정리멘트까지 하셨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곱씹고 있었다.


제가 그걸 다알면 혼자 하지 않을까요..


개발업체 분들을 로비까지 바래다 드리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팀원들은 다 같이 뜨끈뜨끈한 사무실에서 구한말 고종께서 하셨을 법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계약은 다음날 당장 취소되었다. 아직도 팀원들은 그 업체의 이름과 비슷한 상호만 보아도 치를 떤다. 그러니까 그분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영업 매니저가 며칠을 공들여 만든 계약을 개발자 한 분의 ‘애티튜드’가 통째로 날려버린 셈이었다.


그분은 아마 능력 있는 개발자였을 것이다. 뛰어난 개발 지식에 당찬 말투까지 가지고 계셨으니 충분히 자신만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은 만장일치로 여기와 일을 하느니 차라리 일정을 미루자고 결정했다. '저 업체랑 일하면 복장 터질 거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실력도 충분하고 조건도 잘 맞았지만 일이 어그러질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꼰대의 말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 '애티튜드' 하나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애티튜드를 자세나 태도로만 직역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투나 몸가짐'이 아닐까. 솔직함으로 포장한 무례나, 실력이란 이름의 자랑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해주는 것. 그것이 선배들이 그토록 내게 알려주시던 애티튜드가 아니었을지 깨닫는다. 비록 이번 계약은 완전히 망해서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참신한 에티튜드 선생님께 도리어 '배려'를 배울 수 있었던 씁쓸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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