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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Jun 04. 2019

나도 술을 좋아하고 싶다

그래서 남들과 똑같은 것을 느껴보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7살에 제사를 마치고 처음 먹은 음복주에 기절했을 때부터 그 출발이 심상치 않았는데, 대학교에 와서는 별명이 ‘리트머스 종이’가 되었다. 그래서 술자리의 친구들이 나에게 ‘리트머스 종이님, 이 음료가 알코올(C2H5OH)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지 검증해 주십시오’하고 물으면 내가 곧장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1분 내로 새빨간 얼굴을 보여주는 실험이 횡행(?)하곤 했다. 심지어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에는 옆방에 살던 영국 친구들이 내 플러시(홍조)를 함께 확인해보자며 알코올 성분 0.5%의 루트 비어를 줬었는데 그때도 곧장 빨간 얼굴이 되어 그 민감도(?)를 인정받기도 했다.


높은 민감도를 가진 알코올 판독기


이 정도로 술을 잘 못 마시다 보니 딱히 주사(술버릇)라고 부를만한 것도 없어서 조금만 많이 먹으면 그 자리에서 잠들어버리기 일쑤고, 그나마도 참-고 참아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에서 기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니 '술 먹고 실수하는 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나 졸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 딴생각을 할 수 있는 그분들의 체력이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이런 내가 술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선호는 아주 어렸을 적 만들어진 습관 같은 것인데, 그 첫 번째 계기가 아버지였다. 유전학적으로는 굉장히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술을 매우 잘 드신다.(공대생 버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슬기로운 생활’을 배우던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얼큰하게 취해 퇴근하실 때면 현관문에서 곧잘 5000원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주시곤 했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술이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음료이길래 일주일 용돈보다 많은 돈을 한 번에 만들어낼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계기는 비슷한 시절 100번 이상 읽었던 삼국지 책이었다. 삼국지를 보면 장수들이 집채만 한 항아리를 들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러다 적군의 기습을 받아 한밤 중에 목이 달아나기도 했다. 어렸을 적 생각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저렇게 달게 마시는 음료가 있다면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는걸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선망은 단순히 머릿속에만 남아있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도 계속 이어져, 술을 못 마시는 사람(나)의 경영 대학 졸업 논문이 ‘클라우드 맥주 마케팅 사례 연구’였다.(...)


대개 수염 덮수룩한 장비가 이런 술독을 통째로 들이켰다


그 때문일까, 나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들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술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를 (머리 아픈 것 없이) 느껴보고 싶다. 회사 선배건, 거래처 직원이건, 혹은 우연히 알게 된 친구건 술자리라는 무대에 이야기를 대사로 날밤이 새도록 마음을 나누는 일은 대체 어떤 경험일까. 지금은 조금만 마셔도 머리가 아파 꾹꾹 참아가며 버티는 그 고통의 자리가 정말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지, 그런 것이 참 궁금하다.


부러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마저 풍요로워지는 것이 부럽다. 한창 일본어 공부를 위해 일드를 볼 때, 퇴근 후에 혼맥 하는 주인공을 여러 차례 관찰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멋있고, 시원해 보인 나머지 큰 맘먹고 맥주 4캔을 집에 사와 하루에 한 캔씩 의무적으로 마시곤 했다.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10분을 못버티고 꿈나라행. 일주일 뒤 너덜너덜한 몸상태가 되어 1일 1맥주 정책은 포기해야 했지만 베란다를 내다보며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는 그 청량감은 아직도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맥주를 애타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마지막으로 술 애호가라면 주류의 역사와 전통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정말 부럽다. 인간이 그토록 사랑하는 술이다 보니 모든 술에는 그만큼 깊은 배경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은 공장에서 만든 1500원짜리 소주에서부터 100만 원이 넘는 와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칵테일 한잔을 마실 때도 옛이야기 한편은 들려줄 수 있는 사람, 우리 술과 전통에 깊은 자긍심이 있는 사람, 여행 가서는 현지 사람들과 똑같은 음료를 마시고 문자 그대로 그 문화에 ‘취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참 부럽다.


나도 술을 좋아하고 싶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거나하게 취해, 요즘 힘들다는 친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싶다. 퇴근하면 맥주캔 하나를 팡! 하고 따서 벌컥벌컥 들이켠 뒤 캬~하고 드라마처럼 소리를 질러보고 싶다. 어려운 자리에서 발렌타인 30년 산 잔을 받을 때면 ‘이렇게 귀한 술은 남기면 안 되죠!’하고 너스레를 떨어보고 싶다. 그렇게 나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경험해보고 싶다. 남들이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껴보고 싶다.


두 잔의 삼페인을 마시고 나니,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심오한 무언가로 바뀌어 있었다.

F.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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