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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Sep 03. 2019

화내도 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참고 참고 또 참고


‘무조건 너가 잘못했어’


회사 선배가 따끔하게 질책했다. 나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채 아직도 씩씩대고 있었다. 정수리 끝까지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선배는 한 마리 무지한 새끼양을 바라보듯 온화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화를 낸 순간 너가 진거야, 절대 그러면 안돼’ 나는 선배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폭주하는 단비처럼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으아아악 난 잘못 안했어!!!


이 분노는 회사 브랜드 콘셉트 회의에서 시작됐다. 카피라이터들과 함께 우리 팀의 브랜드 방향을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정작 회의에 디자이너가 없어서 이야기가 계속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회의를 끊고 말을 건넸다. ‘디자이너 분도 같이 의논해야 일을 두 번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제 시간 된다고 하셨으니 제가 지금 모셔 올게요’ 그러자 카피라이터들이 갑자기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일에는 엄연히 순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체 무슨 순서가 디자이너를 브랜드 회의에서 빼는 것인가 싶었지만 20년 차 부장님의 말씀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상대로 결과물은 완전히 망했다. 결국 한 달 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에서 디자이너만 추가된 똑같은(!) 회의가 다시 열렸다. 그런데 그때 카피라이터가 꺼낸 말이 가관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디자이너도 같이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그때 반대하셔 가지고 쯧쯧’. 그 꼰대 아저씨의 잘못된 주장으로 이미 한 달을 통째로 날렸던 나는 저 말에 펑! 하고 터져버렸다.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때 부장님이 못 오게 하셨잖아요!’ 팀 선배가 내 정강이를 몰래 차며 진정시킨 덕에 간신히 화를 참았지만 부장님은 끝까지 ‘허허 설마.. 지금 회사에서 화내는 거 아니죠? 깔깔’하며 약을 올렸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본 부장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카피라이터 부장이 속한 팀은 디자이너 팀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부장은 자기 성과를 빼앗길까 봐 일부러 협업을 안 한 것이었다. 우리 팀은 그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당한 셈이었고.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의 사이가 안 좋은데 브랜드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지만 그 동네는 그런 것 같았다) 다시 그 부장이 했던 망발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본인이 얌체짓한 것을 들켜 무안하니, 앞자리에 앉은 어린애한테 자기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었다. 문제는 불행히도 그 어린애가 나였다는 사실이고.

얼음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열을 삭이고 있으니 선배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회사는 화를 내면 무조건 지는 거야, 넌 그 능구렁이한테 오늘 당한 거고. 화가 나도 참아. 무조건 참아야 돼. 화를 내면 너만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 사람들은 너가 화를 낸 이유는 까먹고 화를 낸 사실만 기억해. 다음부터 꼭 명심해라’ 얼음을 다 먹고 임산부들이 한다는 라마즈 호흡법을 10분 정도 따라하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이때부터 몇 달 동안 ‘화 안내기’를 금과옥조처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뒤로도 회사에서 화나는 순간은 참 많았다.  구우-지 여자 동료가 준 술 아니면 못드시겠다는 변태 아재를 봤을 때, 맨날 인사를 안 받길래 그 뒤로 생략했더니 재 버릇없다고 팀장님께 이르던 이간질쟁이를 봤을 때, 여자 동기랑 말만 해도 ‘수상해, 수상해’ 달고 사는 옆팀 오지라퍼를 봤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화가 났다. 그런데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화를 내면 무조건 지는 거야’라는 선배 말이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처럼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참고 무표정으로 있었다.


명심하거라 두한아, 돈 비 앵그리


이처럼 회사라는 신묘한 공간은 인간에게 딱 절반의 감정만 허락했다. 예를들어 사람의 감정을 ‘극대노’에서 ‘극대희’까지 10점 척도로 둔다면 회사는 오직 ‘보통’에서 ‘극대희’까지만 윤허하는 것이었다. ‘극대노’란 마치 중국 사천성 시골에서 태어난 셋째 딸처럼 주민등록번호도 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했다. 혹여나 누군가 이 법칙을 거슬러 역정을 내면 ‘분위기 수호의 요정’이 포로롱 나타나 ‘이상한 애’라며 딱지를 붙여줬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정말 무조건 화를 금지한다고 사람의 분노가 없어지는 것일지 말이다.

회사에서 사람들을 곰곰이 관찰하다 보니 화를 내지 못하게 한다고 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화는 냉소, 비아냥, 체념, 낙담같이 비슷한 감정으로 옷만 갈아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호텔 델루나에나 나올 법한 악귀가 되어 사무실을 망령처럼 떠돌았다.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부당함에도 화를 못 내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지켰다. ‘역시 이 회사는 아예 글러먹었어’ 하며 냉소하거나 ’내가 다시는 저기랑 일하나 봐라’하며 낙담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각자의 마음에 높고 단단한 벽이 쾅쾅 세워졌다. 그리고 이 벽이 조직을 병들게 하는 것 같았다.


대략 이런 느낌, 으스스


나는 건강한 분노가 허락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물론 직원들이 다들 고질라처럼 브레스를 뿜어대는 회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화를 낼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찾고 싶다. 그래서 잘잘못은 확실히 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똑바로 고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이 거대한 조직에서 몇 년씩 ‘화남’을 도려내다간 언젠가 ‘화를 안내는 인간’이 아니라 ‘화를 못 내는 인간’ 이 될까 무섭다. 부당한 것을 봐도 화가 안나는 그런 멍청이가 될까 봐 불안하다.

나중에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혹은 내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벌이게 된다면 ‘감정은 꼭 건강하게 표출하세요’라는 룰을 정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화를 내도 서로에게 솔직한 회사, 애정이 담긴 다툼이 가능한 팀이 건강한 조직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내 이름 하나 못외우는 옆팀 오지라퍼의 간섭에 빙긋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마디 제대로 쏘아붙이는 90년대생이 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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