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이해의 첫 단추-
"황폐해진 유럽 해안을 떠나자! "
- 푸쉬킨 -
소련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이 지배하던 민족들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놓아준 인류사의 유일한 제국이라는 것을 아는가? 1991년 소비에트 붕괴 이후 불과 몇 달 사이 15개 국가가 자유와 독립을 얻었다.
냉전시대 소련 봉쇄 정책의 입안자였던 조지 캐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해체는 러시아가 전쟁에 패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결과였다. 솔제니친의 표현에 의하면 “자기 파괴와 자멸”의 역사였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러시아를 이해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분할된 소련의 모습을 보는 러시아의 물리적, 심리적 상실은 푸틴의 말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우린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 축적된 많은 것들이 손실되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전 영토의 40%를 잃었고, 무엇보다 그동안 소련 시민으로 살아오던 각지의 “러시아인” 2500만 명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새로운 국경 뒤로 버려진 이방인 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분단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거 소련으로 회귀를 부추기는 향수는 물론 아니다. 2010년 한 방송에서 푸틴은 “소련의 해체를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형태의 소련을 복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소련 붕괴는 목욕물을 버려야 하는데 물과 함께 아이를 버린 셈인 것이다.
러시아 동방으로 대 전환!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하지만 전쟁은 끝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전쟁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마감된다. 이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진단과 전망은 우리 글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러시아는 “질 수 없는 전쟁을 시작했고”,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전쟁 이후의 모습이다.
과연 러시아는 어디로 갈 것인가?
러시아의 향후 방향은 어디인가?
서쪽이 막힌 러시아가 갈 방향은 “동쪽”이다. 러시아가 동쪽으로 더 큰 전환이 예측된다면, 국경을 맞닿은 우리는 이에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터 대제로부터 시작된 서구화 정책은 300년간 러시아의 변함없는 방향이었다.
여기서 러시아는 자신들의 후진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소비에트 붕괴 (서구가 러시아를 미워하지 않던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이후 미국과 밀월 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까지”라는 “위대한 유럽 정책”을 견지했다.
2000년 집권한 푸틴도 초기에는 “나는 러시아가 유럽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며 나토의 회원국이 되고자 하지 않았던가? 동시에 푸틴은 집권 초기 국내 산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을 추진했고, 러시아는 유럽 내 상호 학제 인정 프로그램인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에 참여하여 유럽 기준에 맞는 교육 개혁으로 서방에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서구가 러시아에 보낸 대답은 어땠는가?
2004년 동유럽 7개국이 나토 가입을 하면서 나토의 동진이 시작되었고, 구 소련 독립국가들의 “색깔 혁명”은 러시아를 자극한다. 여기에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러시아는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결국 2010년대 러시아는 자신들의 방향을 유럽에서 동쪽으로 급 전환한다.
유라시아주의 혹은 동방정책!
정책에는 방향과 길이 있어야 한다.
방향은 유연하지만 길은 오랜 준비속에서 다져져야 한다.
19세기 러시아의 지적 논쟁에서 서구의 일원으로 편입되길 바랐던 서구주의자와는 반대로, 러시아의 독창성을 주장한 슬라브주의자들은 “러시아 만의 길”이 동쪽에 있음을 주장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유럽에서는 식객이거나 노예였고, 아시아로 와서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유럽에서는 타타르인이었는데 아시아에서는 우리도 유럽인이다… 길은 동방에 있다”는 외침을 우리는 기억한다.
머리는 서방을 향하고 몸은 동쪽으로 커가는 모습이 300년간 러시아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17-18세기 유럽이 제국주의 영토 확장에 몰두할 때, 러시아는 동으로 시베리아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달려갔다. 19세기에는 영국과 소위 “그레이트 게임”을 통해 중앙아시아를, 터키와의 경쟁을 통해 발칸반도와 흑해를 그리고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까지 확장해 왔다.
그러다 혁명 이후 망명 인텔리겐챠들의 “유라시아주의”가 등장한다.
위대한 언어학자인 투르베츠코이를 필두로 한 많은 지성인들이 몰락하는 서구(이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 나왔다!)는 러시아의 대안이 될 수 없고 “동쪽에 출구가 있음”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2010년 이후 진행되는 러시아의 동방 정책의 기저엔 “유라시아주의”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푸틴이 “러시아는 유라시아 국가다”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단순한 지리적 선언이 아니다. 여기엔 정치, 경제, 문화적 의미가 있다. 이제 러시아는 머리도 몸도 동쪽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이다. 인류학자 구밀료프의 “러시아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유라시아 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라는 말은 푸틴의 단골 인용문이다. 구원은 정신적, 물질적, 문화적 통합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러시아 동방정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왜 러시아의 동방 정책, “유라시아 주의” 까지 알아야 할까?
여기엔 러시아 이해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쟁 이후 서쪽이 막힌 러시아가 동방으로 향하는 속도는 더욱 강력해질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우리는 러시아의 동방정책과 다시금 조우할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도 박근혜정부 시절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신 북방 정책”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성적표는 미미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정책은 단기적이며 즉흥적인데 비해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수세기를 걸친 역사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성찰 그리고 문화적 함의를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논리를 얻을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방향만 있고 길이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북방”으로 정책은 하나의 목표, 즉 경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는 정치, 경제 무엇보다 문화적 측면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미국의 1극 체제에 대한 다극체제 (이경우 중국과의 연합이다!)라는 정치적 방향과, 서구의 “세계화”에 맞서는 경제적 “공동체” 개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 동방정책의 문화적 층위는 우리가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다.
푸틴은 서구의 타락한 문명과 전쟁을 선포한다. 동성애 문화와 이를 방조하는 자유주의 체제의 맹점을 집중 공격하면서, 서방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강조한다. 그리하여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푸쉬킨의 선언처럼 “황폐해진 유럽 해안을 떠나” 유라시아라는 정신적 물질적 공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외교에 영원한 친구는 없다,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다.
동방으로 달려오는 러시아를 맞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놓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동방정책을 단지 “돈”의 관점으로만 보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 실패할 것이다.
러시아의 동방정책, 유라시아주의는 경제적 효율성뿐 아니라 지정학적 우호성에 기반을 둔 문명정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방향은 바뀔 수 있지만 길은 보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치, 경제의 길이 막히더라도 문화의 길을 포기하면 안 된다.
문화마저 포기하면 그 길은 황폐해지고 사라진다.
길이 없다고 마냥 서있으면 그곳은 감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