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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개의 달 Dec 31. 2018

새벽의 종류

새벽

 처음으로 새벽 길거리를 걸었던 날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엄마와 계속 되던 불화에 결국 집을 나와 친구와 자취하던 여름. 이른 저녁식사 덕에 굶주린 배를 쥐고 배회하다가 새벽 세 시에 슈퍼마켓에 갔다. 평생을 12시 안에 반드시 집에 들어가야하는 신데렐라 인생에게 새벽 세 시의 거리라니. 완전한 자유를 가졌다는 느낌과 함께 이어지는 묘한 설렘과 불안. 계속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이래도 되는거야?
당연하지. 넌 이제 자유야.

아직도 미처 다 식지 못한 후끈한 공기아래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과 조용한 거리. 이 곳에 꼭 우리만 있는듯한 낮과 전혀다른 세상. 이 모두가 다섞인 새벽 세 시의 냄새는 자취방에서의 기억이 아스라하게 지워지는 그 순간에도 곁에 남았다. 아마 모두에게 처음으로 혼자 새벽을 맞이한 그 순간은 미묘한 떨림으로 남지 않을까.

 그 뒤로도 새벽은 마음대로 잠들고 깰 수 없는 내게 축구게임의 추가시간이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낮의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고. 골치아픈 일들로부터 퇴근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아주 조금이라도 낸다. 차를 대접하고 따듯한 담요를 덮고, 미뤄두었던 생의 두근거리는 기억들은 꺼내 기록한다. 집 옥상이나 베란다에 나가 다 잠든 도시를 살짝 구경하며 그때의 그 새벽 세시 냄새를 맡아보기도 한다. 물론 모든 새벽이 이렇게 내 시간인건 아니다. 때로는 미뤄둔 일에 낮의 나를 책망하며 애써 키보드를 두드리기도하고, 급한 공부에 꾸역꾸역 머릿속으로 지식을 밀어넣기도 한다. 열두시부터 부지런하면 좀 끝내고 잘 수있겠지만 그럴리가. 한 두시까지는 새벽의 추가시간이 있음에 안도하며 음악을 좀 듣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그러다가 세시쯤 되면 으악 늦었다 세시라니 깨닫고는 좀 해보려다가 네다섯시가 되면 졸음을 못이기고 끝내 엎어지기. 그러고 정신차리면 아침! 이런 불량한 새벽도 종종 나를 찾아온다.

가끔은 특별한 새벽도 있다.  보낼 수 없는 새벽. 너무 안가는 새벽. 많은 것이 변하는 새벽. 보낼 수 없는 새벽은 사람과 같이 온다. 아끼는 사람들과 모여서 서로의 행복이 되는 새벽.대화가 무르익고 배가 가득 차고. 점점 졸음이 차올라서 같이 히죽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끝내 꾸벅 고개가 무거워질 때 이 순간이 계속 영원하길 바라는 보낼 수 없는 새벽. 그런 순간들은 대게 아쉬운 아침을 길게 남긴다. 너무 안가는 새벽은 설레는 마음과 같이온다.사랑하는 당신을 보러 달려가야하는데 아침은 한 없이 멀고. 어서 아침해가 떠야 갈텐데. 속절없이 긴 밤, 잠들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며 기다리는 그런 새벽. 설렘이 심장에 살아서 어쩔줄 모르는 그런 새벽도 있다. 많은 것이 변하는 새벽은 시작과 같이온다. 오늘과 같이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순간들을 맞이해야하는 새벽. 분명 평소와 똑같은 시간인데도 마법같은 변화가 찾아와서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맞이한다. 올해의 무거웠던 일들은 낮에 두고 새벽을 넘어 더 나은 나에게로.


이 새벽의 끝에 당신에게도,

내게도 웃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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