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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개의 달 Nov 29. 2018

목요일의 저녁 인사

그냥 좋아하기만 합니다.

 오래전 유튜브를 돌다가 일본어로 된 금요일의 아침인사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노래의 내용은 서로 좋아하는 학생 두 사람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전철 자리에서 마주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으로, 주말에는 학교에서 볼 수 없으니 금요일 아침인사만큼은 활기차게 기운 내서 전하겠다는 뜻의 제목이었다. 그렇다. 모든 요일의 인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와 위치를 갖는다. 없는 활력도 끌어서 만들어야 하는 월요일 아침인사. 조금 깬 머리로 꾸역꾸역 살아냈다고 한숨 쉬는 화요일 저녁 인사. 중간에 점찍듯 지나가는 수요일 점심인사. 뭔가 턱 목에 걸려서 안 넘어가듯 묵직한 목요일의 저녁 인사와 순식간에 사라질 주말을 준비하는 금요일의 아침인사. 그리고 주말. 

 목요일의 저녁 인사는 아주 미묘한 녀석이다. 금요일처럼 다 끝나버린 느낌도 아니면서, 앞의 요일들처럼 마냥 먼 것도 아니고. 그래서 목요일에는 진이 빠지기 쉽다. 턱 막히기도 쉽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려면 목요일의 등을 살짝 밀어줄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 같이 요일도 날짜도 모르고 지나가는 시간들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가끔 세상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알려줄 것이 필요하다. 아끼는 이들과의 저녁 약속이나, 나를 위한 작은 시간.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것이나, 조금은 깊은 잠이라도. 그중 누군가에게는 그냥 좋아하기만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필요할지도 몰라서, 그래서 목요일 저녁 인사를 꾸준히 하려 한다.

 어디서든 좋아하면 뭔가 하라고 말한다. 사람을 좋아하면 끝내 고백을 하라 하고. 악기를 좋아하면 한 곡 제대로 쳐야 하고. 근사한 요리로 식탁을 채우거나, 물건을 가득 사서 남긴다든지. 상대의 흔적들을 열심히 모은 것으로 서로의 마음 깊이를 재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쌓는다.     


  근데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되나?     


 뭐가 남지 않아도, 잘하지 않아도 좋아하면 안 되나. 꼭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 다 그림 잘 그리고 노래 좋아한다고 다 가수 급으로 부를 필요 없지 않겠는가. 실력과 몰두한 시간이 마음의 깊이를 다 나타낸다면 프로들만 남은 세상일 텐데, 그럼 그 프로들 보고 손뼉 치는 것은 누가 한단 말인가. 나는 내 생의 오랜 시간을 깊이 검토한 끝에 그냥 좋아하기만 하는 것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란 걸 깨닫고 말았다. 간혹 누군가는 끝내 노력하지 않았다고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냥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늘 그렇게 필사적으로 힘써야 할 건 또 뭐랍니까. 힘 좀 빼면 어때서. 뭔가 해내는 것이 재능이라면 안 하고, 관두고, 도망가고, 옆으로 새고, 엄청 늦거나 멈추는 것도 재능일 것이다. 당장 운전만 봐도 직진만 해서는 차에서 내릴 수 없는 걸. 멈추고, 우회전에 유턴. 주차도 해야 하는 것처럼.

 끝내 올라가지 않는 고음은 대신 좀 애쓰는 귀여운 맛이 있고, 완벽하지 않은 춤은 파닥거리는 사랑스러움이 있는걸. 맛있는 것을 먹고 공간을 거닐면서 산책을 하는 것은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좋다. 매듭이 영 서툰 소원 팔찌는 대신 빨리 끊어져서 소원을 일찍 이루어줄 테니 그만하면 됐지. 요리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학교에서 못다 한 화학실험 같다.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어보고. 취미는 꼭 명사로 똑 떨어져야 할까. 흥미는 또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 낱말로 툭 떨어지기에는 길고 사소한 것들을 가진 당신이라면, 가끔 목요일의 저녁 인사를 들어주실 것만 같아서 이렇게 조금씩 안부를 나눈다.

 

누가 뭐 하냐고 물어보거든 대답으로는 이 정도가 좋겠다. 

저는 그냥 좋아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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