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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개의 달 Dec 06. 2018

원 투 쓰리 아 뽀

 SNS 너머로 땐뽀걸즈 소식이 들린다. 춤. 항상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영화를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며 나의 땐뽀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나는 4월부터 우리 동네의 댄스스포츠반에 등록했다. 댄스스포츠는 춤을 좋아하는 내가 평생 하고 싶던 일 중 하나였는데, 슬슬 운동을 해봐야겠다는 투병 4년차의 착한 생각과 안 해본 거 시도하고 싶다는 봄날의 간질거림이 만나 일을 벌였다. 사실 생각만 또 한참을 하다가 집 앞에 붙은 동사무소 전단지를 보고서야 집 앞 3분 거리의 센터에서 댄스스포츠 수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등록할까 하고 쓱 견학 하러 간 날 열 분정도 되는 어르신들께서 차차차를 추고 계셨다. 맨 앞에서 동작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힘찬 목소리와 빛나는 눈, 집중한 표정을 보면서 아. 괜찮겠다 싶었지. 얼렁뚱땅 대충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내게 집중된 눈동자들을 보면서 오랜 시간 예쁘지도 않으면서, 잘 하지도 못하면서 춤을 좋아한다고열정 자체를 비난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 적어도 저분들은 춤 좋아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뭐라고는 안하시겠지. 내가 가기 전까지 우리 반의 막내는 60대였다. 화요일, 수요일 오후 1시반 수업. 젊은 사람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시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간 첫날 나는 아줌마세요? 아저씨세요? 온갖 질문을 다 들었다. 젊은 나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지만. 아픈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고 그간의 병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몰라서 그런 거니까 그럴 수 있어‘라고 되뇌며.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 내내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반의 모두는 내 가족이 되었다.     


"아픈 게 얼마나 서럽겠어. "

"젊음이 막 지나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속절없이 속상했겠지. "

"그래도 지금도 참 괜찮여."     


 우리는 누구도 서로의 사정을 지레 짐작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못 나온 날에는 서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오면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중간엔 소소한 간식을 나누어먹고. 못 온 사람은 놓친 시간을 아쉬워하고, 서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묻는다. 춤바람 난다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성별로 남-여 역을 나누는 댄스스포츠의 흔한  룰은 이 수업엔 없었다. 그냥 키가 좀 더 큰 사람이 남자 역의 스텝을 배우는 것. 누구든 원하면 자기 역할을 바꿀 수 있고, 돌아가며 서로의 파트너가 되는 것. 회원님들끼리 손잡고 어서와 내 파트너! 하고 부르고, 돌아가며 쉬면서 모두를 챙긴다.

 조금 더 다닌 뒤에는 강당 뒤에 작은 탈의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자의 삶 중간에 어느 좋은 오후 시간을 내어 이곳에 온 분들은 그 작은 탈의실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산 댄스화와 화려한 댄스복을 갖춰 입으신다. 누구도 서로의 몸매를 평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반짝이 예쁘다, 이거 새로 산거야? 자기한테 너무 잘 어울려."

"자기는 참 스텝을 잘 밟아. 턴이 예뻐. 어머, 신발 딱 맞는다."     


 일부러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서로의 장점을 남김없이 칭찬한다. 댄스 수업하는 그 시간만큼은, 모두 프로 댄서다. 좀 더 잘해보기 위해 영상도 찍어 가시고, 남아서 연습도 하시고. 나는 그곳의 너무도 어린 막내. 모든 회원님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살면서 춤 잘 춘다. 근사하다. 흥이 있어서 좋다. 그런 말을 내 부모님께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기준은 너무도 엄격해서 나는 늘 살을 빼야하는 대상이었고, 나서기엔 모자란 얼굴이었으며, 흥이 아닌 나대는 것이었고, 나보다 잘 추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어왔다.      


근데 이곳에선 아니었어.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시면서 쭉쭉 배우고 따라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신다 하시고, 다른 회원님들은 막내가 와서 흥나게 하니까 무릎아파서 쉬고 싶어도 또 하게 된다고 더 하자하신다. 살을 빼야한다는 내 말에 있는 그대로 충분히 근사하다고 무슨 소리냐고 말해주신다. 올 때마다 나는 이 수업이 댄스스포츠가 아니라 날 위한 맞춤 심리치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은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꾸물거리기도 한다.     


오늘의 댄스 시작.     


 파트너와 마주보고 서고, 시작 자세를 잡고 나면 음악이 나온다. 원, 투, 쓰리 아 뽀. 선생님의 경쾌한 큐싸인과 함께 스타트. 파트너와 춤을 추면 내가 무심한 채 살았던 내 몸에 대해 알게 된다. 아. 내가 등이 굽은 채로 다니는구나. 이쪽 어깨가 더 낮았구나. 짝다리를 짚는 버릇이 있었네. 센터의 거울은 누구나 아는 투명한 거울이 아니라 검은 선팅이 되어있는 아크릴이다. 자기 자세를 보고 하나씩 교정해야하는 수업과 좀 거리가 멀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거울은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았는데도 여전히 어색한 나를 나와 조금씩 익숙해지게 만들어준다. 저기 비치는 사람이 나구나. 하고. 슬쩍 미소를 지어보기도 한다.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고 끝나면 다음 사람에게 이동하며 파트너가 바뀐다. 댄스스포츠 시간에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동그랗게 서서 돌아가며 추기 때문에 누구든 센터다. 파트너와 눈을 맞추며 추면 좋을 텐데, 난 아직 너무 어린 병아리라 스텝이 꼬이지 않게 발을 보기 바쁘다. 선생님의 발을 재빠르게 훔쳐보는 내게 방금 바뀐 파트너가 옆얼굴이 귀엽다는 말을 건넨다. 


와.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칭찬은 반칙입니다.     


 박자에 맞게 추지 못해도, 동작이 어설퍼도 탓하지 않는다. 양옆을 보며 눈으로 배울 때까지 넉넉하게 기다려준다.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다. 가르치시는 데 신이 나신 선생님은 나를 개인 교습하듯 잡고 자이브를 가르치셨고, 나는 자이브의 앞을 얼추 익혔다. 그리고 갑자기 선생님이 모두를 박수쳐서 부르신다.      


뭐지?     


 씨익 웃으며 내 오른손을 잡아 끄시고 음악 큐싸인을 주신다. 모두에게 잘 보라는 말과 함께. 나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만들어진 무대. 당황한 내게 같이 추자고 마저 손을 맞잡고선 시작. 선생님의 리드에 정신없이 입으로 박자를 세며 따라간다. 쓱 멀어지시면 쭉 당기고, 한 바퀴 돌아 찾아오시면 기꺼이 맞아드리고. 배운 대로 열심히 추고 나니 박수소리가 들린다.      


"춤선이 예술이다. 타고났다. 꼭 배워서 지도사해라."     


 듣고 싶던 말들. 내가 자랑하지 않아도 나를 세워주는 칭찬들. 늘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어서 시무룩해하고, 칭찬을 갈구한다고 혼났던 나에게는 어색하지만 바래왔던 순간들. 살갑게 서로 손을 잡고, 잘했다고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준다. 깎아내림 없이 칭찬하고. 동경하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눈. 선하고 근사한 마음들을 받는다. 쉬는 시간에는 삼삼오오 벽에 붙어 이야기하시는데 가면 삶의 빛나는 순간들이 들린다. 그분들의 빛나던 시간들. 내 눈에는 여전히 빛나는 시간들. 남의 빛은 그렇게 잘 찾아주시면서 지금도 근사하다고 칭찬하시면 손사래를 치신다. 아이, 아까 잘하시는 거 다 봤는데. 이야기가 내 차례로 넘어가면 어린 내가 가져오는 세상의 소식들을 신기해하며 들어주신다. 내가 있어서 세상을 안다고 좋은 말을 얹어주시는 걸 잊지 않는다.

 내게 공동체는 늘 두려움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배제된다고, 다들 날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들을 정말 한 번에 날아가게 만드는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 미움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불안이 없는 공동체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떠올리며 웃게 되는 시간. 근사한 나의 땐뽀. 수업이 끝나고 난 강당은 한 시간 정도 비어있다. 나는 거기서 집에서 크게 부를 수 없던 노래를 부르고, 강당을 마구 뛰어다니고. 점프하고 춤추고 노래를 틀어놓고 바닥을 구르기도 한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날은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오래 아픈 시간동안 외면했던 나를 바라보려고 애써본다.

 일주일에 이틀, 댄스스포츠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어느 삶으로 돌아간다. 시장 나물 파는 할머니. 세 손자를 봐야하는 외할머니. 건널목 옷장사, 경로당 반장.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일들도 있겠지. 모두 동네에 사시기 때문에 가끔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다 화요일, 수요일 점심을 먹고 나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댄서들로 변신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수술 전 금식 검사를 마치고 혼자 병원 로비에서 꽈배기를 먹다가 그만 들켰다. 쓱 오셔서는, 땐쓰쓰포츠 막내 아니에요? 앗. 들켰다. 이내 내가 산 곳 옆집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환자가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다는 잔소리는 덤으로 얹어서 팍팍. 일흔이 넘으신 왕언니와 나의 마지막 말은 역시 투정이다.     


"아~춤추러 가고 싶다."     


그래. 가슴에 음악이 계속 들려오는 우리는 앞으로도 수없이 춤을 출 것이다.     


원, 투, 쓰리 아 뽀.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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