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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Nov 08. 2019

저는 편견이 많은 선생님입니다.

저는 경력단절여성입니다.

그리고 8년만에 좋은 기회가 닿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공부방에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림을 가르치고, 같이 이야기도 합니다.

그 중에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보기에는 몸집이 왜소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이 보통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아이는 열심히 하길래 참 기특하고 

예뻤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수업에 나오지 않길래, 공부방선생님께 그 남자아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그 아이의 가정환경과 상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또래에 비해 왜소했는지, 여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며칠 후 학교 근처에서 그 남자아이와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졸졸 쫓아오길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학교운동장까지 같이 걸어갔습니다. 

학교운동장에 도착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저는 다시 학교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남자아이가 저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를 왕따시켜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계속 들어주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제 마음 속에 큰 돌 하나가 놓여집니다. 

아이는 이제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집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엄마도 늦게 오신다고 합니다. 

제 마음 속에 큰 돌 하나가 더 얹어집니다.

이 아이가 저에게 먹을 것을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마음에 돌이 자꾸 쌓입니다. 

그 아이는 저와 한참 이야기를 하고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조금 놀더니, 저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는 “죄책감”이라는 큰 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먹을 것을 사주었어야 했는데...’

‘집에 가면 엄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잖아.’

‘아휴...먹을 것을 사줄 걸.’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구점 앞을 지나가는데 공부방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여자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저를 보자 반갑게 인사하며 문구점에서 먹을 것을 사달라고 합니다. 


저는 웃으며 가볍게 그 아이의 손바닥을 찰싹 치며 지나칩니다.

그 아이는 입을 삐죽버리고는 웃더니 또래친구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다른 것은 무엇인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나는 남자아이를 안쓰럽고 불쌍한 아이로 본 것은 아닐까...

내가 그 남자아이를 “동정”한 것은 아닐까...


그 남자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편견이 많은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내 아이만 키웠다면 모를 일입니다.

선생님이 되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래, 나는 편견이 많은 사람이구나. 

나는 그 남자아이가 부담스러웠구나.‘


그런 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자 마음속의 돌들이 조금씩 사라져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상처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아이로 보자! 

다음에 만나면 가볍게 인사해주자

그 아이를 동정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주자.‘


그렇게 조금씩 내 아이만 키우던 엄마에서, 내 주변의 모든 아이를 키우는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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