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계속 나를, 너를,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지 않은가.
파라솔. 조개. 모래. 동해바다. 6월 초. 유난히 뜨거운 올해는 여름이 앞서 우리를 바다로 밀었다. 계곡도 건너뛰고 달려간 바다는 그러나 아직 차가웠지만. 바다는 늘 거기에 있었고, 바람을 보여주는 도로 가 나무들과 풀들로부터 우리는 파도를 예감했다. 모래는 뜨겁거나 따뜻하고, 유모차 바퀴를 먹어버렸다. 파도의 가장자리, 그 옆자리에 깔아둔 돗자리는 곧 다가올 만조까지 조금씩은 더 젖을 예정이고 애써 꽂은 파라솔 기둥은 흐트러지는 모래 이리저리로 속절없이 쓰러지려 했다. 파라솔이 얼마나 예뼈보이느냐는 단지 얼마나 쨍쨍한 햇빛을 막아주는지에 따라 달라질뿐. 어떤 얼룩이 있건 얼마나 헤졌건, 창고의 깜빡이는 형광등 밑에서 오히려 더 잘 보이는 파라솔에 묻은 세월의 손때들은 햇빛 아래 빛났고. 그렇게 그 아래 자기보다 더 연약한 것들을 지켜 주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지팡이가 되어주었고. 파도는 계속 모래를 밀어 올렸다 쓸어 내리고 이미 언덕받이가 된 꼭대기에 지은 모래성은 말 그대로 모래로 허물어지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밀려치는 파도에 데구르르 구르는 건 조개보다 돌이 많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가벼워서 헛손질 사이로 빠져나갔다. 젖은 몸의 차가움을 모래의 울퉁불퉁한 온화함에 눕혀놓고 보면, 여름이라는 게 어쩌면 모래사장 저 아래 어딘가에로부터 오는 건 아닌가 싶었고. 끝끝내 팔다리 어깨 귓등 어디엔가에 붙어 숙소까지 따라온 모래들을 털다보면, 그렇게들 모여있어도 사실 모래들은 각자 각자 외로웠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외로운 한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튀어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뒤끝으로 끝끝내는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저린 생각이 역시 조용히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