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작은 것들에 대한 어떤 정
텃밭 두둑에 전부 멀칭을 했지만은 한 두둑 중 일부, 비닐을 씌우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그냥 둔 이유는 봄에 땅 주인이 경운기로 죄 갈아 엎어 준 텃밭 자리를 정리하다 발견한 작년에 심어 둔 당귀 뿌리들 때문이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거기에 잎깻잎 씨를 한 봉지 사서 뿌렸다. 작년 가을에 월동 시금치 씨를 뿌릴 때 마구잡이로 뿌려서 시금치가 영 두서가 없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한 줄로 뿌렸다. 너무 많은 씨를 짧은 두둑에 줄뿌림 해서 그 싹들 - 한줄로 - 마구 자라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작은 숲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잎깻잎들을 호미로 한번 퍼지는 만큼씩 퍼다 밭의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다. 옮겨 심은 이후에도 6-7줄기 정도가 한 번에 심겨지니 귀엽긴 하지만 다른 편으로 쑥쑥 자라지가 않는 것 같다. 속아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문제는 그들 중 무엇을 잡아 속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뿌린 씨에서 자란 어린 잎깻잎들을 속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덥잖이 애잔해져 손으로 깻잎들을 슥 훑어본다. 아직 미니어처 마냥 작은 깻잎들이지만 고소한듯 쌉싸름한 듯 깻잎 냄새가 확 퍼진다. 얘네들이 살아있구나, 이미 깻잎이구나하는 생각에 더 속아내기가 어려워진다. 한뿌리 한뿌리 옮겨 심을수도 없고. 이걸 어쩌지 못해 결국 그대로 등 뒤에 잎깻잎들을 둔 채 밭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깻잎을 심고 2주 정도 뒤에 그 바로 옆 줄에 주주룩 뿌려놓은 바질들도 작은 새싹들이 진한 흙색 두둑 사이로 초록빛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 짧은 좁은 두둑에 바질도 한 봉지를 전부 뿌렸으니,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지난 삼 일 간 비가 왔다. 비를 핑계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잎깻잎을 손대지 않고 방치한다. 괜하고 엄한 데 붙은 정은 금새 식고 곧 잎깻잎들도 속아지고 옮겨지겠지만 지금 느끼는 작은 것들에 대한 애잔함을 포함한 어떤 정은, 그래 - 텃밭 일구는 일에 느낄 수 있는 작은 하나의 즐거움이지 않겠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