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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러기 May 17. 2022

꿈꾸는 것

그곳에서의 3년

어떻게 편지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3년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어떻게 처음을 시작해야 하는 건지 너무 막막하네.

 

그러고 보니 시작은 늘 언제나 어렵고 막막한 일인 거 같아. 만약 누군가 이곳에서 3년간을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를 묻는다면 막막하기 그지없었던 맨 처음 시작이었다고 대답할 거야. 파견 전 날까지도, 아니 공항에서 네게 잘 다녀올게라고 웃으며 전화했던 순간까지도 나는 사실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어. 나 잘할 수 있을까? 최고는 아니지만 언제나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나인데 낯선 곳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얼마나 좌절할련지. 도전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시작이 흥분되기도 하지만 내 방 침대에서 누워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며 영화 보고 책 읽고 음악 듣는 안락함을 얼마나 그리워할는지.. 40여 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볼리비아로 오는 내내 나는 고민하고 걱정했었어.      


그 고민은 3600m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2년간 활동해야 할 임지, 해발 200m 아마존의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도 멈출 수가 없었어. 한 밤 중에도 35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경험 해보지 못했던 무더워가 아찔했고, 평생 살면서 물린 모기보다 여기서 일주일 만에 더 많은 모기에 물렸고, 여기 온 지 보름 만엔가 열대성 이질로 열이 40도를 넘어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잖아. 이런 생소한 환경이 날 더 고민하게 만들었어.


지금이야 15분 출퇴근 길에도 최소 10명의 사람들과 인사하지만, 내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 마을의 유일한 아시아 사람인 내가 너무나도 생소해서인지 내가 먼저 인사해도 아무도 받아 주지도 않았어. 인사 정도만 스페인어로 말할 수 있던 나는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힘들었고..


뭘 해야 할지도,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퇴근하고 나서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반문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했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민했던 밤들이 결국은 3년을 달리게 한 힘이 되었더라.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보며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인가부터 내게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으며, 우두커니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니 코 워커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뭘 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고민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마을 곳곳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눴던 것들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림을 그리게 되더라고.     


내가 있는 이곳은 아마존 지역에 위치한 산보르하(San Borja)라는 곳이야. 면적은 넓지만 인구수나 경제여건으로 봐서는 작은 마을이지. 평균 월 소득이 100달러 정도이며, 마을 중심가에서 차로 30분만 가도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는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은 마을이야.      



난 이곳에서, 유일한 제1호 마을 도서관을 만드는 프로젝트 사업을 했어. 책을 빌려 읽을 곳도 없고 책을 살 수 있는 서점 하나도 없는 이곳의 친구들 대부분은 교과서 외의 책을 읽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어. 아니, 사실 교과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많지 않아. 그러다 보니 독서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80%의 친구들이 숙제를 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위해라고 대답했고, 책 읽는 자체가 즐거워서라고 대답한 친구는 2%에 불과하더라고. 난 즐겁고 재미있는,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어. 책이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도서관이 되었으면 했어.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난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수백 번 고민했던 것 같아. 이곳엔 월 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지금 책을 읽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 몇 번씩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여전히 이곳엔 많은 굶주린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책 한 권보다는 한 끼의 식사가 더 그들에게 가깝게 필요한 건 아닌지...


하지만 나의 결론은 그래도 희망은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것에 있다는 것이었어. 그렇게 나를, 그리고 시 관계자, 그리고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고 모두의 힘을 모아 10년 혹은 수십 년 뒤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기대하며 산보르하 1호 도서관 문을 열었어. 내 기대와 바람이 틀리지 않기를,, 이 도서관이 계속 이 마을의 꿈이 되길 꿈꿔..


도서관을 열고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도서관에 책상과 의자를 더 사야 되겠다 고민을 할 정도로 지금은 많은 지역주민들이 찾아오고 있어. 언젠가는 너도 한 번쯤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출국날 공항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어찌 밥맛이 있을까?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매번 밥 먹을 때마다 그립겠구나' 생각했던 나는, 웬일이니? 그동안 이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늘 함께 식사를 하느라 몸무게가 많이 불었어. 이곳에서 내가 활동하고 희망이 꿈꿀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지. 이런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난 결코 여기서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었을 거야. 낯선 곳에서 버벅거리고 좌절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있는 나에게, 또한 여럿의 힘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우리”이기 때문에 함께 꿈꾸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어. 처음엔 내가 이방인인 것만 같았는데 이젠 이곳이 정말 나의 마을이고 편안하고 안락한 내 방인 것만 같아. 이젠 여행이나 출장으로 다른 지역에 갔다가 만난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면 “산보르하에서 왔어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아차차,, 아 저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덧붙여.      


I' ve learned that people will forget what I said and what I did to them.

But they will not forget how I made them feel.    

 

한국에 돌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자꾸 조바심이 나더라.. 난 뭘 더 할 수 있을까, 내 어떤 말들로 조언을 해야 할까? 그런데 나 오늘 어디선가 읽은 문구에 내 마음에서 뎅.. 하니 종소리가 났어. 그래.. 내가 했던 일도, 내가 했던 말들도 잊힐 거야..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여기 있었는지, 혹은 내가 한국인이었던 것도 언젠가는 잊힐지 몰라. 하지만 저 지구 반대편에서 왔던 애와 함께 무엇을 느꼈는지는 기억할 거야. 그 애와 함께 즐겁고, 웃고, 행복했는지.. 혹은 기분 나쁘게 사람들을 대했고 얼굴을 찌푸렸고 그래서 더 불행했는지는 오래도록 기억이 날 거야.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나 행복한 기억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려고.     


얼마 전 우유니 사막에 갔었어. 도대체 이렇게 온통 새하얀 사막에서 차들을 어떻게 길을 찾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사막을 바라보니.. 새하얀 사막에는 먼저 간 차들로 가까이에선 보이지 않는 곧은 길자국이 나 있었고 다음 차들은 용케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더라고. 2년 내내 난 이정표가 없는 사막에서 길을 찾고 있는 마음이었어. 삐뚤삐뚤 헤매며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길도 멀리서 보면 한 길로 반듯이 가고 있은 길이었을까? 내가 간 이 길이 내 다음으로 오는 누군가에게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까?     


곧 한국에서 보자. 오랜만에 돌아간 한국에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돼.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와 함께 꿈꾸는 우리가 있으니,, 한국에서도 어떤 희망이라도 꿈꿀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나와 함께 꿈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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