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겨울
제가 수능시험을 보던 해는 그전 해보다 시험이 매우 쉬웠습니다. 특별히 제 점수대의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요. 저는 평소 모의고사보다 10점 정도 오른 것에 반해, 원래 저와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은 수십 점 더 높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평소보다 시험을 못 본 것도 아닌데, 제가 원래 가고 싶었던 대학들의 합격선이 높아져 저는 지원조차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닌 대학의 시험을 보러 가자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만 같았어요. 한참을 울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바나나 우유를 하나 주시면서 왜 이렇게 우냐고 말을 거셨어요. 처음 보는 분인데도 아저씨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셔서 주절주절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아요.”
아저씨가 제게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으셨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는 제게 축구가 총 90분간 경기를 하는 걸 아냐고 덧붙이셨어요.
“인간이 90년 정도 산다고 생각할 때 학생은 이제 전반 18분을 뛰고 있어. 전반 18분인데 벌써 졌다고 말하면 안 되지. 학생이 이길지 질지는 아무도 몰라.”
제 인생을 전반전, 후반전과 연장전, 인저리타임 같은 추가 시간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그때의 학생보단 훨씬 나이가 들어 이젠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시간이지만, 아직 제겐 절반인 후반전이 남아있습니다.
종종 “내 삶은 왜 이런가.”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제게는 펼쳐지지도 않은 후반전이 남아있습니다. 이기고 있는 인생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크게 지고 있는 인생인 것 같지도 않아 제 인생의 승부는 아직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가끔 심하게 넘어져 버려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도 있지만, 그 시간도 경기의 일부이므로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인저리 타임입니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을 할 수도 있겠지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가도 괜찮은 제 인생은 넉넉히 추가시간이 주어집니다.
전반전을 잘 마무리해 봐야겠습니다. 아, 중간에 하프타임도 잘 이용해 푹 쉬기도 해야겠습니다. 인저리타임도 있으니 너무 힘들면 잠시 아픈 나를 돌봐야겠습니다. 후반전에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지겨운 출장에서 돌아가는 길이다.
장장 7여 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도 TGV 같은 고속철도를 만들어 전국 어디든 최대 3~4시간이면 갈 수 있게 한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런 꿈같은 일은 언제쯤 이루어질는지…. 긴 여행 잠이나 푹 자며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랬다. 새벽에 유럽 축구 리그를 보려면 지금 자 둬야 한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생 같기도 하고, 대학생 같기도 한 여자애가 계속 훌쩍거린다. 한 몇 분 그러다 말려니 했는데 몇 십분째 저러고 있다. 차라리 꼬맹이가 엉엉 소리 높여 울다가 울음을 그치는 게 낫지, 저렇게 들릴락 말락 우는 게 더 신경에 거슬린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결국 눈을 떴다.
짜증이 나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 했다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난 어린 숙녀가 울고 있는데 무작정 화를 내는 그런 비신사적인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신사적으로 “제발 잠 좀 자게 그만 좀 울어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가는 간식 판매차를 세워 바나나 우유를 하나 샀다. 그리곤 화를 꾹꾹 참아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며 음료수를 건넸다.
“학생,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울어?”
본인이 고3인데, 이번에 수능을 봤는데 시험을 망치고, 그래서 가기 싫은 대학에 시험을 보러 가고, 주절주절..... 한마디 말을 걸었을 뿐인데, 애의 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하게 울먹거린다. 망했다.
“제가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을 끝내곤, 이젠 아예 엉엉 울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다. 이게 뭔 일이람. 어떻게든 달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하나.
“혹시..... 축구 좋아하니?”
뜬금없긴 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게 축구밖에 없었다. 아이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축구 본 적 있어? 90분 동안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지. 마지막까지 누가 이길지 정말 모르거든, 마지막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누구도 경기 결과를 확단할 수 없어. 인간이 90년 정도 산다고 생각할 때 학생은 이제 전반 18분을 뛰고 있어. 전반 18분인데 벌써 졌다고 말하면 안 되지. 학생이 이길지 질지는 아무도 몰라.”
갑자기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서서히 눈물을 그쳤다. 갑자기 생각해 낸 말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멋졌다. 이래서 질풍노도 청소년인가? 좀 전까지 그렇게 울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바나나 우유를 마신다. 그러곤 또 금방 잠이 들어 버린다.
이제 옆자리가 조용해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전반 40분인 내 인생 스코어는 몇 대몇일까?
학생에게 말해주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경기 결과를 확언할 수 없다 해도 너무 많은 점수차로 지고 있으면 우린 모두 경기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90분 내내 경기를 응원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박수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꼭 경기의 이기고 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을 위해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