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팀의 작가 소개, 그리고 가을의 캠퍼스투어
어느덧 제법 완연한 가을이 찾아오고, 반석학교 학생들과 만남을 가진 지도 두 달 정도가 되었습니다. 10월 마지막 날 저희가 기획한 문화교류 시간은 ‘서울대학교 캠퍼스 투어’였습니다!
매번 저희가 반석학교를 방문했던 것과는 달리, 반석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을 서울대학교 캠퍼스로 초청해서 캠퍼스 곳곳을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있는 서울대학교 캠퍼스를 소개하고, 잔디광장에서 함께 피자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울대학교 내부 카페인 ‘느티나무’의 시그니처 메뉴인 ‘리얼 딸기 라떼’도 한잔씩 마셨습니다. 잔디광장에서 가을 피크닉을 즐기며, 반석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본명 이외에 작가 데뷔에 사용할 ‘필명’을 무엇으로 정할지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이 활짝 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소리 매거진의 이번 호에서는 저희 책의 주인공이자 직접 작가가 되어줄 반석학교 학생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총 7명의 학생들이 북소리 프로그램에 참여해주고 있고, 이번 호에서 소개할 친구들은 3명입니다. 캠퍼스 투어 때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자신만의 필명과, AI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특징을 담도록 만들어진 캐릭터와 함께 소개될 예정입니다. 또한 향후 출판할 책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학생들이 직접 적은 글을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의 작문이 아직 서툴어 의미전달이 어려운 부분은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10년 후 자신에게 쓴 ‘석양’의 편지
To. 십년 후의 OO(석양)
이 편지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미래의 너의 모습도 궁금했어.
요즘 잘 지내고 있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니? 일은 잘 되고 있어? 집은 샀어? 지금 어느 나라에 살고 있니? 요즘 기분은 좋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이미 너를 스물아홉 살로 이끌었고, 청춘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서 탕진하는 자본이 되었어. 하지만, 이 말을 보고도 책상을 치며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새로운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 인생에서 너는 활발하고 명랑한 사람이야. 지금의 네가 성숙해졌는지 모르겠다. 여러 나라를 여행했니? 자라면서 너는 많은 조언을 들어왔어. 하지만 모든 조언이 너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야. 네 인생이 어떻게 되든 네 손에 달려있어. 남의 길이 아무리 좋아도 네가 가야할 길은 아니야. 생활이 어떻든 간에 즐겁게 지내야 해. 외출할 때 옷을 잘 갖추어 입고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을 잊지 마. 아프지 말고. 나는 네가 어떤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너 자신을 선택할 거라는 걸 잘 알아. 네가 어떻게 변하라고 요구하지 않아. 단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돼. 너 지금 감동해도 돼. 지금 내가 쓰는 이 편지가 너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은 모래시계 속에 있는 모래들처럼 결국은 끝까지 흘러가겠지. 아직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난 네가 해냈다고 믿어. 화이팅!
19살의 OO(석양)
‘석양’의 영화 감상문
< Green Book > 감상문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첫발을 내딛는 것을 두려워한다.
영화는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여전히 아파르트헤이트가 성행하던 시대였다.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가 인종 장벽을 허물기 위해 용감하게 미국 남부 투어에 나섰다. 그의 곁에는 솔직한 성격과 인종적 편견을 가진 백인 운전기사 토니 립이 함께했다. 이 여행은 두 사람 사이에 돈독한 우정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 중에, 돈 박사와 토니는 여러가지 도전과 곤경을 겪는다. 그들은 사회로부터의 편견과 차별에 직면했지만, 바로 이러한 어려움들이 그들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나는 돈 박사의 재능과 강인함에 감탄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사람의 가치가 피부색에 의해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백인 운전기사 토니의 성장과 변화는 인간 본성의 빛과 따뜻함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 운전기사’였지만 돈 박사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된 그가 변화해가는 모습은 개인을 넘어 이 사회의 축소판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린북’은 흑인 여행자의 생존 지침서일뿐 아니라 그 시대 인종차별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이라는) 이런 배경에서 두 주인공의 우정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인종과 편견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존경하고 지지하며 어려움과 도전에 함께 대처한다. 나는 이런 진실한 우정에 감동받았다.
‘그린북’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종차별의 잔혹함과 무자비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인간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린북’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와 존중을 받고 이해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단발소녀’의 반석학교 제주도 수학여행 기록
2024년 10월 10일.
선선한 목요일이다. 아침에 바람이 불었고 기분이 참 좋았다. 쉬는 날이지만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이것을 정리하고 여유 있게 버스를 탔다. 늦잠을 잤는데도 피곤해서 버스에서 잠을 청했다. 오늘은 수학여행이 끝난 후의 첫날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갑자기 수학여행의 둘째 날이 생각났다. 수학여행 둘째 날은 오전에 제주도에 있는 녹차 공원에서 녹차를 마셨다. 바다를 보고 참 좋은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낚시를 하러 갔다. 나는 친구랑 당진에서 낚시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낚시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작아졌다. 그래서 수학여행의 둘째 날 오후에도 선생님께 낚시가 하기 싫어서 보트를 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표를 이미 샀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보트에 탔다. 바다를 구경하며 바람을 쐬고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20분동안 바다 구경을 마치고 낚시하는 시간이 되었다. 단체팀이라서 우리는 마지막 순서였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나는 직원분 바로 옆에 서있다가 자연스럽게 낚싯대를 건네받았다. ‘이따가 낚시를 하고 싶은 사람이 오면 나는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는 전에 낚시를 해본 적이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낚시를 시작했다. 옆에서 사람들은 고기를 잡아서 신나했지만 나는 이때에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때, 내 낚싯대가 점점 흔들리며 무거워졌다. ‘뭐지, 물고기 잡았나?’ 라는 생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우와, 잡았다!” 옆에 있는 친구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봤다. 갑자기 마음이 설레였다. 물고기를 다시 바다에 풀어주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까 그 기분은 뭐였지, 나는 분명히 낚시가 싫은데 왜 물고기를 잡았을 때 그렇게 기쁘고 좋았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 낚시를 싫어하는 게 맞나? 참 어렵다.’
‘케이크’가 부모님께 쓴 편지
어머니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잘 지내시죠?
한국에서 지낸 지 9개월이 되었네요.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제주도에 가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산악 바이크랑 루지도 타고, 비에 홀딱 젖어 신나게 한바탕 놀았어요. 끝날 때쯤 되니 부모님께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부모님과 함께 있었을 때는 언제나 저에 대해서 과하게 간섭하셔서, 새로운 것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겁에 질려 있었죠. 그렇지만 이번 일 이후에, 제가 좋아하는 것은 부모님이 생각하시던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단지 하기 싫었던 것이지,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이전에 저는 다른 지역에 가서 친구와 놀아 본 적이 없었어요. 노래방에 가고 염색하는 아이들은 전부 나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죠. 여기에 온 이후에는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나가 놀아보기 시작했어요. 견문이 정말 넓어졌지요. 제 생각에 우리는 봉건적인 사상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생각의 구조를 펼쳐야 해요. 어머니 아버지, 인생은 넓디넓은 평원과 같아요.
어느새 날이 추워졌네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건강하고 만사형통하시길 바라며.
OOO(케이크) 올림
2024년 10월 10일
위의 글들은 모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고나서 실습시간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렇게 수업시간에 작성하는 글 외에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여러 주제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도록 자율 글쓰기 과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글에 대한 개요를 쓰고, 이후 개요를 바탕으로 글을 구체화시키는 방식으로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케이크'의 개요 중 하나를 미리 소개합니다.
글의 주제: 전쟁
주제 선정 이유: 평화롭지 않은 국가들을 위해서, 그리고 희생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처음: 폴과 알료샤의 고향에 전쟁이 일어났다.
중간: 2시간 전, 파벨 코르차긴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라온 아이가 전장에서 상대의 가슴에 칼을 찔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사가 마지막으로 대화한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한때 베를린까지 함께 싸웠는데, 우리는 오히려 여기서 서로를 죽이고 있군.“
모스크바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저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마세요.
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6.25 전쟁. 세계대전의 마지막에는 정치인들이 악수하고 화해하며, 상인들은 수레를 가득 채워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묘비를 바라본다.
세계평화!
어떠셨나요? 매 교류 회차마다 학생들은 아직은 서툰 한국어 실력이지만 진솔한 자신들의 이야기와 마음 속 생각들을 담담하게 또 진정성 있게 적어주고 있습니다. 한명한명의 소중한 개성과 성격이 드러나는 글들로, 저희 단원들에게도 매번 새로운 기대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글을 만날 때마다 생각보다 멋진 문장, 생각보다 멋진 생각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청소년’이라는 하나의 특성으로 인해 그들을 낯선 사람,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기에는 삶에 대해 함께 느끼는 따뜻한 감정,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많은 부분이 닮아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공감대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다양성’에 대해 보다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 ‘석양’의 <Green Book> 감상문 인용.
반석학교 학생들과의 9월 첫 교류를 시작한 이후로 사소한 일상의 기록에서부터,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10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좋아하는 책에 대한 독후감 등 다양한 내용의 글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 다 소개하지 못한 ‘북한이탈청소년 작가님’들과, 더 좋은 글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반석학교 친구들의 작가 데뷔 여정, 그리고 저희 북소리 팀의 책 출판 프로젝트에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