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포기당하다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신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 아버지가 두 분 다 계신 그 어느 가정에서 자란 것보다 훨씬 반듯하게 자랐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어릴 때는 아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에게만 무거운 짐이 짊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중학생 때가 처음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친구가 우연히 같은 학원을 다니게 됐고, 더 친해졌다.
그때 그 친구에게 처음으로
“사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어.”
라고 털어놨다.
그리고 30대가 된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라는 꼬리를 달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지방 소도시 우리 동네의 웬만한 아줌마들은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됐다.
우리 엄마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나와 동생을 혼자서 꿋꿋하게 키울 수 있었던 힘도 그것이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져도 얼버무리고 이야기를 흘렸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동생이었을 거다.
나와 동생은 여느 평범한 가정의 친구들도 못 입는 브랜드 옷에 브랜드 가방을 들었고,
내가 배우고 싶다는 건 그 무엇이든 하물며 값비싼 바이올린도 배울 수 있었다.
엄마는 우유배달을 하면서, 출판사 영업직을 뛰면서,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안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게 다 아빠 없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한 엄마의 몸부림이었을 거다.
그렇게 엄마가 지켜온 옹벽을 내가 무너뜨렸다.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그까짓 알량한 우정을 돈독히 하겠다고 속삭인 말 한마디로 엄마가 힘겹게 지켜온 것들을 흩뿌렸다.
나는 몰랐다.
그때 나는 엄마가 만든 무대에서 엄마를 강제로 끌어내렸다는 걸.
한 번 내려온 무대는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