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1. 포기당하다
나는 신학기가 싫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학년… ‘새로움’에 주목하며 3월 만을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꺼려지는 계절이었다. 내 치부를 드러내는 시간이었으니까.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3학년이었던가.
아직 내 옆에 있는 친구 이름이 뭔지도 잘 모르는 어느 날에 선생님은 눈을 감으라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내뱉은 그 말은, 아마도 2022년 현재 입 밖으로 나왔다면 뉴스 헤드라인 첫 번째로 보도될 테지.
“아버지 안 계신 사람 손 들어.”
마치 마피아 게임을 할 때처럼 모두가 숨을 죽이고, 옆사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이듯이 교실 안은 적막으로 메워졌다.
나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손을 들었다.
옆 자리 친구가 혹시 눈을 뜨지는 않았을까 살피느라, 역효과로 잔뜩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서 손 든 사람이 나라는 것을 한껏 티 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반드시 그 방법이어야만 했나, 싶다.
가정통신문을 돌려서 조사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고 따로 학부모 면담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
그렇게 얼굴을 붉히며 손 드는 일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던 걸 보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났나 보다.
또 어느 날은 학교 전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것 역시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아, 본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학생은 지금 교무실로 오세요.”
아마 교통공단 따위의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을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방식이 틀렸다.
그 방송을 듣고 일어서서 교실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심’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셈이 됐으니까.
처음 그 방송을 들었을 때는 일어나지 못했다. 교실의 적막을 내 의자가 드르륵 거리는 소리로 깰 용기가 없었다.
한참 뒤에 그 적막을 깼더라면 돈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앞서서 깨지 못했던 적막을 깼다. 바닥만 보고 교실 문을 나섰다.
아직 중학생도 채 되지 않은 내가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그 비슷한 것을 포기하면 돈이 나온 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 대신 화장실을 가는 척 화장지를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적막을 깬 대가로 받은 지원금은 얼마였느냐 묻는다면 실소가 나온다. 지원금을 받지는 못했다.
친할아버지의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골 땅 소유로 우리 가족은 단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었다.
뒷 목이 뻗뻗해져올 만큼, 복도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걸었던 대가로 최저 시급이라도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괜히 승모근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