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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Jan 25. 2022

대학 포기하겠습니다. 알바만 시켜주세요!

파트 1. 포기당하다



대학은   예정이고요. 오래 일할  있습니다!


수능을 치고 나서, 정확하게는 망치고 나서 가진 거라곤 시간과 걱정뿐이었다. 엄마가 다쳐서 당장 일을   없게 됐으니 이제는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친구가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 면접을 보러 갔다. 가당치도 않은  말은 면접을 보면서  말이다.


그래도 나름 지역 내에서는 공부 제일 잘하는 고등학교에서 3 동안 죽어라 공부해놓고 대학은   예정이라니. 엄마가 들으면 뒤로 넘어갈 말이다. 사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막상 면접을 가보니 나처럼 수능 이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학생들이 많았고, 매장에서는  두 달 일하다가 대학 입학을 핑계로 그만둘 사람은 뽑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장 다른 대안도 떠오르지 않아서 무작정, 형편상 대학은    같으니 오래오래 일하겠다고 지르고  거다.


결국 일할  있게 됐다. 대체로 빠릿빠릿한 편이라서 가장 바쁜 런치 시간에 투입되는 일이 많았다. “안녕하세요 맥도날드입니다! 주문 이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기계처럼 같은 말을 하루에 수십 번을 외쳤고, 내가 일할  쯔음에맥도날드에 라지 세트 선택지가 생겨서 600원만 추가하면 감자와 콜라를  사이즈로 먹을  있다는 권유 멘트까지 해야 했다. 


12월이  가기 전에 엄마는 집으로 왔다. 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아져 있었지만 병원에서  것만큼 크지는 않았고 이따금씩 붕대를 풀어보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위로 꿰맨 자국이 선명했다. 엄마는 컵을 드는 연습부터 시작했지만 아주 작은 컵을 들어 올려서 물을 마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빙시  됐다.”


라면서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 아무렇지도 않아. 이런 것쯤이야.’라고 말하려는  의연한 말투였다. 엄마가 집으로  이후에도 아르바이트는 계속해야만 했다. 대학도 포기하면서 들어간 아르바이트 자리인데 놓을  없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고 아르바이트를 처음으로 가던 날, 늘상 늦잠을 자는 주말에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으니 엄마가 어딜가냐며 의아해했다. 친구 만나러 간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고장 난 로봇같이 얘기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간다고 실토했고 엄마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처음에는 네가 그런 걸 왜 하냐며 했지만 나중에는 그래 그런 경험도  번쯤은 이라며 결국 허락했다. 종종 동생이 좋아하는 맥플러리를 사러 일부러 매장까지 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매니저 눈치를 스윽 살피고는  스쿱씩  얹어서 주곤 했다. 참고로 맥도날드에는 아이스크림도 맥플러리도 정량이 정해져 있다. 더 달라고 하면 알바가 곤란하다.


 월급은 40만 원쯤 됐다. 시급이 4-5천 원 남짓되던 시기였다. 이따금씩 뜨거운 감자 기름이 손등을 쓰라리게  것치고는 옹졸한 숫자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돈으로 우리  가족이 외식도   있다는  어린 마음에 내심 뿌듯했다. 물론 대학을 포기했다는  거짓말이다. 대신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순간까지 연기를 해야만 했다. 가정형편이 빠듯했던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할머니가 대학 등록금을 대주었다며, 대학을   있게 됐다고 방방 뛰는 연기를 하면서 ‘죄송하다 사직의사를 밝혔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매니저도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나온 갓 스무 살이 된 학생인지라 그저 모른 척 넘어가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십만 원,  합치면 2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석 달 간의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엄마와 나, 동생은 종종 외식도 하고 처음으로 MP3 샀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검은색 바탕에 분홍색 포인트가 들어간 아이리버 MP3. 엄마가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 나도 MP3 사고 싶은데…”


라는 말은 죽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엄마한테 부담을 안기지 않고  힘으로 샀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포기는 나의 선택지에 없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겠다고 안 해본 일이 없는데, 의도적인 철부지인 나는 대학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힘들 때마다 불쑥 솟아오르는 생각 하나가, 진짜 중요한 순간에 포기를 모르는 척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마 내가 진짜로 ‘돈 때문에’ 대학을 포기한다고 했다면 오히려 나에게 실망했을 사람이 우리 엄마다.


나는 그 바람대로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컸다. 아닌가, 조금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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