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념있는 희애씨 Jan 30. 2022

두시부터 다섯 시, 나에게 허락된 시간

파트 1. 포기당하다

수능은 망했다. 사실 엄마가 다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수시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중학생 때부터 하나둘씩 나갔던 글짓기 대회, 백일장에서 나는  상을 받았고, 전교생이 모인 조례시간에 수상을 위해 앞으로 나가는  당연하게 느껴질 때쯤부터 그렇게 마음먹었다. 


불행히도 내가 살던 지방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성적대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만 했다. 나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교의 학생이었다. 그게 뭐가 불행 요소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학교는 그게 패착이었다. 모든 학생을   명도 빼놓지 않고 정시로, 수능으로만 대학을 보내려고 했으니까. 그게 그 학교의 자랑거리였다. (별게 다 자랑거리다.)  


그래서 수시는  혼자 준비했고, 아쉽게도 혼자만의 힘으로 서울에서 내놓으라 하는 대학들의 수시 전형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최종에서 탈락했다. 평소에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불합격 소식을 들은 후로 멘탈관리에 실패했다. 거기에 엄마의 사고까지. 평소의 성적에도 훨씬  미치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솔직히 말하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학교였다. 연년생의 동생도 있었고 형편상 나를 재수학원에 보내줄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편입학 결정했다.


편입학이라는  단어 그래도 다른 학교에 중간에 ‘편입해서 들어가는 거다. 기존 학교의 학점을 대체로  인정받고, 전혀 다른 학과라고 하더라도 일부분은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나처럼 아예 새로운 출발을   없는 여건의 사람들은 편입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편입학 시험은 90% 이상이 영어 시험이었다. 1학년 때와 2학년 반년 정도는 학점 관리를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 최종 학점이 4.45였으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편이다. 편입학에서  학교의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혹여나 편입학 준비에 실패하면 조기졸업을 통해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고등학생처럼 공부했다.


편입학 준비를  학기 만에, 정확하게는 3개월 만에 성공한 비결을 묻는다면 ‘두시부터 다섯 시’라고 말할 거다. 새벽 두 시에 자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생활 루틴에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모조리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비결이었다. 그러 보면  인생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나를 갈아 넣은 시간들이었는데 코피 한번 나지 않았다. 드라마 보면 ‘열심히  사람의 상징 = 코피같던데.


캠퍼스 건물에 앉아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데 한 친구가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단 해봐야지.”라고 뱉었다. 진득하니 앉아서 밥을 제대로 먹는 것도 사치라고 여기고, 걸어 다니는 시간조차 아끼려고 종종 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상황에서는 ‘안되면?’이라고 고민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저 최선을   .


때때로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한순간도 나의 21살을 온전히 즐기지 못해서 아깝다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쳐가는 청춘의 단면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한 시간이었다. 오히려 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인지한 21살의 손희애에게 감사할 . 그러고 보니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보다 11살이나 어린 친구네. 어린 친구가 기특하구나.


3개월 만에 합격했으면 조금  오래 했으면 훨씬 좋은 학교를  수도 있었을 텐데! 아깝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다. 나는 나를  안다.  오래 했으면 오히려 숨이 차서 헐떡 거리다가 결국 다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때로는  높은 곳을 목표로 잡고 손을 멀리 뻗어야 될 필요도 있지만, 내가 가장  힘을 발휘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객관화해서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여유롭게 재수를 선택했다면   좋은 결과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재수 따위는 안된다, 포기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공기가 말해줬다. 너한테 그런 여유는 없다고.


그게, 까지였던 거다. (오타가 아니다. 우리 엄마의 말버릇이다. “그게 니 까지다!” 한계를 뜻하는 거 같다. 아마도?)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 포기하겠습니다. 알바만 시켜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