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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May 10. 2022

꿈? 돈 없으면 뒈지시던지!

파트 2. 포기하다


“도전 골든벨.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18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KBS 도전골든벨 프로그램 촬영이 있었다. 사전 인터뷰 때 췄던 막춤 덕분이었는지 나는 맨 앞줄에 배정됐다. 심지어 패자부활전에서도 살아남아 오프닝 멘트를 외치는 MC 체험도 하게 됐다. 전교생과 모든 카메라가 나를 향했고,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가 담기는 순간에 온 몸이 짜릿했다.


그때부터였다. 막연하게 TV에 나오고 싶다고 외치던 나는 ‘아나운서’ 4글자를 가슴에 품었다. 어딜 가나 “저는 아나운서가 될 거예요!”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저러다 말겠지 라는 표정으로, 아니 사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어휴 저 철딱서니 없는 것’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주저앉혔다.  


대학교 3학년, 편입학 후에는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곧장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기웃거렸다. 이내 어른들의 그 눈빛이 왜 그리도 회색빛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백만 원. 아나운서 아카데미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었다. 이미 7년쯤 지난 이야기니 더 큰 숫자일 수도 있겠다. 멈칫하긴 했지만 주저하지는 않았다. 명확하게 얘기하면 주저하지 않은 쪽은 엄마였다.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아주 약간의 할인을 받고, 카드 할부처럼 현금을 나누어 내기로 하고 수강을 시작했다. 나름의 돈벌이를 하는 지금의 나에게도 4백만 원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엄마는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전화를 끊고 호흡이 아주 긴 한숨을 내쉬었겠지.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 52번 손희애입니다.”


아카데미를 다닌 지 몇 달이 되어도 카메라 테스트에서 인사 한 줄 할 기회조차 손에 꼽을 만큼 드물게 찾아왔다. 또 기회가 찾아와도, 그마저도 부담이었다. 헤어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연예인들이 다니는 청담동 숍을 찾아가서 10만 원, 의상을 하나둘씩 구매하면서 또 10만 원 20만 원. 또 지방에서 시험이 있을 때면 여기에 교통비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이것쯤이야’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많이 필요했다. 기회가 나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듯했다.


“돈 없으면 뒈지시던지!”


그 때문이었을까.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 할수록 내 몸 가득 120% 충전돼 있던 자신감은 날이 갈수록 닳았다. 얼굴 이목구비 구석구석은 어떻게 하면 더 작게, 일명 ‘화면발’이 잘 받는 형태가 될 수 있을지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기본. 올록복록 나만의 모양으로 갖고 있던 말투, 걸음걸이 심지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나의 모든 것들을 평평하게 눌러내는 과정을 거쳤다. 지폐 한 장 두 장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기회를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애쓰는 이들 앞에서 나는 자꾸만 닳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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