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셋째 날
From Mom's Heart
전날의 빡빡한 일정으로 피로가 몰려왔지만, 딸아이와 함께 뉴욕을 떠나 워싱턴 D.C.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미국의 수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았다. 워싱턴 D.C. 는 세계적인 강대국인 미국의 정치와 역사의 중심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이곳은 단순한 수도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도시였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워싱턴 기념탑이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상징적인 구조물이었다. 주변을 거닐며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을 바라보니, 이 도시의 공간 배치가 철저한 계획 아래 국가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려는 듯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컨 기념관과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 역시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노력의 산물처럼 보였다. 미국이 후발 국가로서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어떤 면에서는 애잔하기까지 했다.
역사적 기념물들을 둘러본 후, 우리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단지인 이곳은 문화, 과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다. 여러 전시관을 돌아보며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이 떠올랐다. 한때 고고학자를 꿈꾸었던 나는 공룡 화석과 유물들을 보며 가슴이 뛰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스미소니언 연구소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특히 버지니아주 프런트 로열에 위치한 스미소니언 보존생물학연구소(Smithsonian Conservation Biology Institute)는 멸종 위기 종의 보존과 관련된 중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곳으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궁금해졌다. 박물관의 전시물은 과거의 유산이지만, 연구소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 문 뒤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지 상상하는 동안, 한때 품었던 꿈의 잔상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이런저런 상상에 빠져 있던 중, 문득 박물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딸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아이의 꿈이 떠올랐다. 사회학자에서 통계학자, 법의학자, 의사, 빅데이터 전문가, 재료공학자까지, 아이는 여러 직업을 꿈꾸며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며, 혹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본인의 진짜 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시선을 들어 딸아이를 바라보았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이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저 아이가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그 길을 든든히 응원해 줄 수 있기를.
Through Daughter's Eyes
셋째 날에는 워싱턴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미국의 수도가 뉴욕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한국의 수도인 서울처럼 미국에서는 뉴욕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도시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의 수도가 들어보지도 못한 워싱턴 D. C.라는 도시인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후에도 워싱턴 D.C.는 나에게는 미국의 수도정도로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백악관을 제외하면 정확히 그곳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간 워싱턴은 완전히 나의 생각을 깨부수었다. 워싱턴 D.C.에 들러 내가 생각한 것은 워싱턴은 가장 미국다운 도시라는 것이다. 뉴욕은 높게 솟은 빌딩과 각 맞춰 설계된 도로들이 산업의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워싱턴에는 백악관,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 중앙은행 그 외 모든 중요 행정 기관들이 다 모여 있다. 사실 워싱턴은 미국의 심장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워싱턴을 드라이브하며 중앙은행, 국회의사당 등을 보는 순간에는 딱히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한 나라의 주요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담긴 개성 있는 건물을 좋아하는 나의 관광 취향에는 완전히 부적합했다. 그러다가 흥미를 가지게 된 곳이 링컨 기념관이다. 링컨 기념관은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한 미국의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링컨 기념관은 굉장히 넓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딱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올 만한 높이의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속으로 온갖 불평불만은 다 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념관에 올라간 순간 왜 굳이 이 건물을 이렇게 높은 곳에, 넓게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보면 병원처럼 새하얀 기념관에 링컨 대통령의 동상이 정말 크게 위치해 있다. 직접 보면 웅장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한 사람만을 위한 거대 건축물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더더욱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제작자가 링컨을 기념한다는 의도를 잘 표현한 느낌이었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곳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너무나 유명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모티브가 된 장소이다. 그 영화를 제대로 보지는 않았지만 요약본으로 보았을 때 박물관의 크기도 컸고 모든 장식물 하나하나가 매우 디테일해서 진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여행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여러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워싱턴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스미소니언이라는 협회가 미 전역에 21개의 박물관과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리는 많고 많은 박물관 중에서도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약간의 중정 구조였는데 커다란 중정을 기준으로 해양관, 동물관, 지질관, 보석관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그 규모에 놀랐고 다음에는 중정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코끼리 표본에 놀랐다.
살짝은 소름 끼치는 코끼리를 뒤로 하고 먼저 지질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지질에 대한 기초 지식과 다양한 표본, 화산과 지진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를 주제로 삼았다. 솔직히 박물관의 모든 설명을 다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흐름은 읽혀서 뿌듯했었다. 다음은 지질 전시관과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보석관으로 향하였다. 이곳에서는 휘황찬란할 정도의 다양한 보석 장신구들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희망의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있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45.52 캐럿의 블루 다이아몬드로 매우 희귀해 유명세를 탔다. 또 역대 소유주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저주의 다이아몬드라는 별칭도 있는데 희망과 저주라는 두 가지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뭔가 웃겼다.
다음으로 간 곳은 동물관이다. 이곳에는 여러 동물들의 박제 표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조금 징그러웠다. 그래도 북극에 사는 생물들이 위험해 처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이글루는 인상 깊었다.
어느새 떠날 시간이 되었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정말 아쉬웠는데 맛보기로 해양관에 발만 들였다가 나오기도 했다. 만약 기회가 되어 워싱턴에 다시 들린다면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은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