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넷째 날_에피소드 1
From Mom's Heart
캐나다 국경에 도착했을 때, 나는 딸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며, 차 안에서 여권을 건네는 것만으로 국경을 넘는 과정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딸아이는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 이렇게 쉽게 다른 나라를 갈 수 있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미국과 캐나다는 이웃한 나라라서 비교적 입국 절차가 간단한 편이야. 유럽에서는 더 쉽게 국경을 넘을 수도 있어.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독일로 갈 때는 여권 검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
딸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처럼 나라가 바뀐다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 아이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마주한 순간, 그 거대한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물안개 속에서 나는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 벅참 속에서 나는 딸아이와의 작은 실랑이를 떠올리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테이블락에서 유난히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툴툴거리는 딸에게 불쑥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여행의 중반이 지나면서 체력이 달렸을지도 모르는데, 그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나 자신이 되려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나이아가라 폭포의 유람선을 타고 폭포 가까이 다가갔을 때, 딸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서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 물보라 속에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딸아이를 보며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결국 여행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이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는 대자연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길, 거리낌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온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룬 순간,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저 장관을 이루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였다. 폭포의 물이 만들어내는 수력발전소, 특히 로버트 모제스 나이아가라 발전소는 약 2,400MW의 발전 용량을 자랑하며 뉴욕주의 주요 전력 공급원이 되고 있었다. 뉴욕주의 전체 전력 중 약 30%가 재생에너지에서 나오고, 그중 20% 이상이 수력발전이라는 점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힘이 단순한 경관을 넘어 실질적인 에너지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폭포는 단순히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일부이기도 했다. 1647년 프랑스 선교사 헤네핑이 발견한 이후로, 나이아가라 폭포는 꾸준히 후퇴하고 있었다. 빙하가 녹아 오대호가 형성되었고, 그 물이 대서양으로 흐르면서 현재의 폭포가 만들어졌다. 거대한 수량으로 인해 매년 1m씩 후퇴하는 폭포는 결국 이리호와 합쳐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늦추기 위해 수력발전소에서 수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조절하지 않았다면 연간 9m씩 후퇴했을 것이고, 현재의 폭포는 5만 년 후에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의 힘과 변화의 원리를 직접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딸아이에게 이런 거대한 자연을 직접 보여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아이가 폭포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이 먼 길을 온 이유를 다시금 되새겼다.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의 거대함을 깨닫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여행이 아이에게 오래도록 남을 경험이 되리라는 것을.
Through Daughter's Eyes
여행의 4일차가 되었다. 이날에는 조금은 특별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사실 여행 전의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대해 딱히 관심이랄 게 없었다. 폭포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흥미 자체가 적었고 물 떨어지면 그게 다 폭포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일정 중 거의 하루를 나이아가라 폭포를 즐기는 것에 쓴다는 데 약간의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는 나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나이아가라는 내가 여태껏 본 자연풍경 중 가장 위협적이었고, 장엄했고, 또 웅장하였다. 이날은 나이아가라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즐겼다고 할 수 있다.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내가 나이아가라를 느낀 방법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워싱턴에서 나이아가라로 향하는 길은 쉽지 만은 않았다. 타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니만큼 거리도 멀었고, 이동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내 기억상으로는 7~8시간 정도 걸렸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출발하였다. 솔직히 멀미를 걱정하긴 했지만 차에서 자고, 드라마도 보니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다가 조수석에 앉은 나를 부르며 가이드님이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색색의 단풍이 가득했다. 여행 시기가 10월 말에서 11월 초라 단풍을 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신선들의 세계 같았다.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신선이 아주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이곳의 단풍을 보고 신선놀음을 하는 아지트로 삼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만큼 단풍이 신비로웠는데, 뻥 뚫린 산에서 어떻게 이리 비밀스러운 느낌을 받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그 풍경을 묘사하자면, 차가 달리는 도로를 기점으로 왼쪽의 산맥은 노란색, 오른쪽의 산맥은 붉은색이었다. 이게 또 특이한 게 왼쪽의 노란색 단풍은 미국 지역의 것이고, 붉은 단풍은 캐나다의 것이라고 한다. 한 풍경에서 두 나라의 산과, 울긋불긋한 단풍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경험이었다.(원래 이런 풍경을 보면 사진부터 촬영하는 데, 감상에 치중한 나머지 사진 찍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다.)
넓게 뻗은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하다 보니 미국 특유의 옥수수 농장이 나왔다.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땅이 좁은 곳에서는 이토록 빽빽하고 넓은 농장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끝없이 노란색으로 모습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숨이 막혔다. 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읽은 한 소설의 영향이 큰데, “미세스 폴리팍스”라는 소설이다. 소설 끝부분에 추격을 피하다 옥수수 농장에서 길을 잃어 주인공은 빠져나오지만 추격자는 사망하는 내용이 있는데,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대체 농장이 어떻길래 그 속에서 길을 잃어 사망할 수 있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느낄 수 있었다. 2m는 족히 넘을 길이에 숨 하나 못 쉴 정도로 뺵빽한 옥수수 사이에 막혀버린다면 정말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겠구나 하고. 혼자서 옥수수 밭 한가운데 떨어지는 망상을 하고 있는 사이 차량은 캐나다와 미국의 입국 검사소로 들어왔다. 여태까지 내가 해본 입출국 심사는 공항에서 매우 심각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또 외국에서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물론 JFK 공항에서 보았던 미 보안요원들의 분위기도 한 몫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도 입국 심사는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그냥 여권과 얼굴 확인만 하고 심지어 캐리어 검사도 다 하지 않았다. 물론 단체 인원이다 보니 작은 검문소의 사이즈에 부담이 될 수는 있겠다 싶지만, 내가 지금 국경을 넘는 건지 그냥 다른 도시로 가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나서 도착한 곳은 테이블락이라는 공간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이아가라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는 그 크기에 감탄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정말 한 화면에 안담길 정도의 크기였다. 일단 사이즈에 놀란 뒤로는 소리에 다시 놀랐는데, 주위 사람과는 1m 이내의 거리에서 목청껏 소리를 쳐야지 들릴 정도로 나이아가라 폭포의 소리가 컸다. 테이블락이 나이아가라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크다는 점이 나이아가라의 규모를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 같았다.
신기하게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의 공동 소유이다. 미국은 나이아가라의 왼쪽 대형 폭포와 소규모의 브라이턴 베일 폭포를 소유하고 있고, 캐나다는 나이아가라 하면 가장 유명한 말발굽 모양의 폭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테이블락은 그 위치를 한눈에 절감해 볼 수 있는 구역인데, 나이아가라를 유심히 내려다볼수록 미국이 조금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포의 수로만 따지면 미국이 2개로 캐나다보다 많지만 나이아가라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곳은 캐나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만 캐나다가 알짜배기 부분만 가져간 느낌이었다. 심지어 나는 미국 소유의 폭포는 미디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한 초면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영토 문제인 만큼 이리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관광 수익 쪽에서는 캐나다 쪽이 좀 더 우세할 것 같다. 다음으로는 스카이론 타워에 갔다. 스카이론 타워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인데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특이하게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노란색 딱정벌레 모양인데, 멀리서 보면 거대한 딱정벌레가 건물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보여 개인적으로는 소름 끼쳤다. 스카이론 타워가 또 특이한 게, 전망대가 돌아간다. 기본적인 전망대 구조 위에 돌아가는 원반 형태의 바닥을 세워 나이아가라 폭포를 모든 좌석에서 볼 수 있게 만든 장소였다. 천천히 돌아가는 전망대와 나이아가라를 구경하면서 내가 언제 이런 식사를 해보겠냐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