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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in the kitchen Jan 20. 2020

밥상머리 앞에서

밥 먹다가 드는 상념들...




카메라를 한대 사서, 브런치를 먹던 날 사진을 찍어됐었다.

그렇게 푸짐한 밥상머리 앞에서 들었던 생각들이 내 삶의 관점을 조금 바꿔놓은 듯하다.


어느 순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 현재를 즐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못해 하던 게 습관이 됐던 걸까, 즐기는 일보단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일이 더 많은 느낌의 삶이었다.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가르쳐준 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면,

처음 몇 번 친구들에게 운전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내 요구를 들어주며

내 운전을 먼저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었다.


처음엔 내 오랜 친구 하비가 오빠다운 든든함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운전연습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만나지 못했던 그에게 조국에 돌아가서 결혼을 했다는 쇼킹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해선 안된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 존나 깜짝이야. 그새 결혼을 했다고? 어떻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내가 내 남자 친구와 험난한 신뢰의 기둥을 세우느라 긴긴 시간이 걸렸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결혼을 했다고? 그것도 나보다 빨리?!"


페르시아인인 그는, 인도에서 나고 자랐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도 역시, 혹은 어쩔 수 없이 인도의 풍습에 따라 (스스로 아내를 맞이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위한 최적의 풍습인) 중매로 처음 본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도 그처럼 인도에서 자라온 페르시아인이었다. 아름다운 웨딩카드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이자, 요가 선생님이었다. 많은 요가선생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온 그라, 둘은 잘 맞을 거라는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의 이 같은 불평에 너털웃음을 보이며, 그는 그녀의 와이프가 아직 조국에 있다며 안심(?) 하라며 나에게 운전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가 차를 가져왔을 때, 도로 위는 교통체증으로 도저히 돌아다녀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있는 데로 짜증이 났는데 내가 일방통행을 거꾸로 들어가 운전해서 그의 짜증을 한껏 높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배도 고파있었다. 나는 그만하자고 하고 그를 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고 짜증을 최대치로 내려준 다음, 그가 농담을 할 때 그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다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회사 크리스마스 회식에서 만난 매니저 리오 역시 먼저 운전연습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운전연습 후, 다른 매니저 집에 가서 술 한잔 하자는 말에 부담스럽던 내가 거절하자, 그는 꽤 기분이 상한 듯했다. 다른 것보다 다른 매니저 집에 초대되는 게 너무 갑작스러워 거절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그의 요구에 응하지 못해 미안했지만, 타이밍이 적절치 않아 불편했다.

 





그 뒤론 그 누구도 괴롭히지 말아야지 마음먹고 학원을 알아보는데,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 닉이 운전연습 제안을 해왔다. 그는 좀 특이했다. 나에게 맨날 전화해서 운전연습을 하자고 했다.


내가 일중독증에 잠에서 헤매고 있을 때도, 나에게 만나서 운전연습을 하자고 했다. 선의를 베푸는 자 앞에서 거절은 가당치 않다는 생각에 3시간 반을 자고 졸린 눈으로 그를 만났던 몇 번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먼저 포기했다. 그도 곧 떨어져 나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나는 너무 피곤해서 졸음운전이라도 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_-;; 어쩜 어느 순간에 포기하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와 화창한 여름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와 브런치를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거 같았다. 내가 지불하는 음식값은 그의 노력에 비하면 택도 없었지만, 그는 그걸 좋아하는 거 같았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이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고, 나도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현재의 삶을 과거 시점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내 삶의 끝에서 인생의 책장을 하나하나 펼쳐낼 때, 나는 아마도 현재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할거 같았다. 

아, 내가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의도적으로 만났듯,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었든) 시간을 보낸 게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웠구나.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내 인생의 책을 만들어 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은 타인에 대한 판단이나 비판을 최소화시켰다.


내가 항상 갖아온 누군가에 대한 불편함이 내 많은 선입견과 판단함에 기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니야, 아무래도 이상한 건 이상한 거야 -_-;;) 오랜 시간 만남을 갖아온 한 좋은 친구가 미치도록 특별해지는 순간이었고, 내가 원했던 어떤 인연이나 삶의 모습들이 있었는데, 만들어 오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간다는 말이 진심으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 앞에 있는 한 명 한 명을 다시 한번 180도 다른 눈으로 한번 더 응시하게 되었다.

내 안에 더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근데 왜 이렇게 힘들지?)

 사탕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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