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in the kitchen Nov 04. 2023

나도 알고 보면 도서관 노마드

누군가에겐 쉬운 것이 나에겐 어렵다.

누군가의 책 제목이었던 거 같다.

도서관 노마드.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도 여기저기 도서관에서 유목생활을 하곤 한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냥 플랫메이트가 컴퓨터 앞에서 하루종일 있는 날인데, 내 방에서 틀어박혀 있는 내가 싫어서 그가 모닝커피를 사러 나가기 전에 씻고 일어나 간단한 간식을 챙겨 내 아지트로 갔다. 지갑을 들고 나왔는지,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상관도 않은 채, 민낯으로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어디에 앉아야 머리가 팍팍 돌고 집중이 잘될까'

옛날에 친구가 문을 등지고 앉아야 기가 흐르는 방향이라 공부가 잘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땐, 스무 살 밖에 안된 애가 웬 풍수지리냐 애늙은이 처럼 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사해서 책상을 놓을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났다. 문을 등질 수 있는 자리를 정해 앉았다. 공부를 하기 전에 간단한 예능을 조금 봐주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의 풍수지리가 적중을 하였는지 예능에 정말 집중이 되었다.


한 남자가 오더니 내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나에게 다가와, '죄송하지만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물건 좀 봐줄 수 있냐 물었다.'  나도 간혹 부탁했던 기억이 있어 '알았다고,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안심을 시켜 보냈다. 다시 왔을 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갈 땐, 난 그냥 내 물건을 놔두고 다녀왔다. 그리곤 그도 나에게 더 이상 부탁하지 않고 다녀왔다.


며칠이 지나, 도서관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는 '뭐지' 하고 그를 바라보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 여기 자주 오는데 자주 오다 보니까 너도 자주 오는 거 같아서~ 여기서 공부해?"

나는 사실 인터뷰 공부에 질려하고 있어서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상황이었다.

"나 인터뷰 공부하는데 생각보다 잘 안되네, 얼마 전에 일 관뒀거든.."

"어느 사 보는데?"

"어, 항공사 들어가려고.. 몇 년째 파이널 인터뷰에서 떨어지네. 한번 공채 나면 공채에 들이는 시간이 2~3개월 걸리는데.. 너무 지쳐. 한 번은 파이널 인터뷰 붙었는데도 바보같이 영어시험에서 떨어졌지 뭐야.."

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도와줄까?"

나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짐을 챙겨 그 책상으로 옮기며 "정말?" 그는 내 잽싼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여기 앉아" 라며 의자를 빼주었다.


한 한 시간 정도 그는 내가 원하는 회사의 특징, 뉴질랜드가 가진 인터뷰 특성, 일관성 있게 말하는 방법 등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 주었다. 나는 그가 잠시 차에 가 있는 동안 그가 말한 대로 그래프로 그려냈다. 너무 오랜 시간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한방에 정리해 주어 나는 너무 환희에 들떠 있었다. 이. 럴. 수. 가.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구나. 내가 모르는 걸 너는 쉽게도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 인터뷰 스크립트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지, 얼마나 많은 시간 유튜브 강의를 봐왔던지, 그래도 알 수 없던 그 단순하고 명료함을 너는 쉽게도 풀어놓는다.


그는 날씨가 너무 좋다는 핑계를 대며, "우리 커피 마시러 갈까?" 한다. 내가 사겠다고 했는데, 그는 "내가 커피 살게~" 라며 나를 광장으로 데려갔다.


긴긴 장마뒤에 날씨는 정말이지 참 좋았다.


광장 앞 빨간 커피카트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아주머니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곤 깔깔 거린다. 오랜만에 좋은 날씨처럼, 그들도 행복해한다.


우리는 그렇게 3시간을 수다 떨었다. 얼마 만에 그렇게 웃어 보았던지..

그는 뉴질랜드 토속인 답게, 호탕해 보이고 마음이 넉넉해 보이며, 덩치에 맞지 않는 순진한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음악 저작권에 관한 일을 한다고 했고,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길래 좀 불러보라고 했더니 스스럼없이 몇 소절 불러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반했지?!"    -_-;;  (네.....? 뭣이라 굽쇼?)


그러면서 보내준 자신의 유튜브 비디오. 그는 사실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하지 않은 이곳에서 나름 가수였다.

12년 전 비디오긴 하지만, 아직도 퀄리티가 돋보이는 뮤직비디오와 자신의 문화를 아주 잘 녹여낸 노래였다.

나는 이 뮤직비디오를 몇 번이고 듣게 되었다. 그리고 칭찬을 마다 않았다.  


https://youtu.be/L39D478G6CM?si=qUKkYtmb96TH6fAQ

나도 가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며, 기억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