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지만, 많은 시간 혼자였다. 여행자의 모습으로 어느 낯선 골목에 서 있을 땐, 그때만큼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나답고 싶었다. 내가 가진 나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내려놓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낯선 거리를, 그 낯선 공기를, 그리고 나도 그 어느에게도 편견을 가질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을 좋아했다.
항상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과거의 누군가의 삶들을 뒤적이며 상상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었을 땐, 오래전 남자친구의 가까운 지인 A 씨가 생각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했었고, 그걸 계기로 한 친구와 단 둘이서 만난 자리에서 '게르만 모임'이라 자신들을 칭하던, 감히 나는 끼어들 수 없는 울타리 밖에서 그녀들을 부러운 눈으로 봤던걸 기억했다.
그때 그녀의 삶이 이런 모습이었겠구나를 상상하며 몹시도 궁금했던 그때를 책 넘기듯 가볍게 넘겨본다. 그녀가 밟았을지도 모를 땅, 그녀가 다녀가봤을 법한 쇼핑몰, 그녀가 한 번쯤 어딘가를 떠날 때 타봤을 기차역...
나의 지인도 아닌 그녀가, 하지만, 동경을 마다하지 않던 그녀가 내가 여행하는 모퉁이 곳곳마다 서 있는 듯했다.
스위스, 로젠을 갔었을 땐, 동료 B가 생각났다.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자유롭게 자란 그녀는 동물애호가였고, 그로 인해 생소한 내 주변에 실존하는 비건이었으며, 우리를 먹을 것이라곤 없는 비건 레스토랑에 데려갔고, 비건케이크를 만들어 와서 나눠주는 호의를 베풀었지만, 케이크가 달아야 한다는 우리의 의견에 거스르는 참 신선한 동료였다. 그녀는 곧 잘 펜으로 말을 그려냈다. 어릴 때 말을 타고 놀았다며 갈기를 휘날리는 말 엉덩이를 얼마나 육덕지게 그려냈는지.. 엉덩이 근육만 보였다. 항상 머리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의 뒷모습만 그렸기에 엉덩이는 더욱 인상지게 보였다.
스위스에서 캠핑을 했을 때,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쳐보니, 내 눈앞에 깎아 내지르는 산과 초원이 정말 말을 타고 달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텐트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명랑하게 빙빙 돌던 소녀가, 양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소녀가, 내 동료의 어린 시절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더 없는 자유로움을 전해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내 동료가 그려내던 말의 모습이 보인다. 그 말도 자유롭게 안장 없이 갈기를 사정없이 휘날리는 엉덩이 근육에 힘을 준 모습이었기에.
캠핑을 하다 입 돌아갈 뻔했다.
나는 어릴 적, 꼭 브라질, 상파울루에 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파울루에 가면 제제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어린 제제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가 모든 고민을 나무에게 다 털어놓았을 때처럼.. 그 도시를 가면 내가 갈 때마다 느끼는 나를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것처럼, 제제도 내가 돌고 도는 모퉁이 곳곳마다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토록 도시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브라질은 쉽게 닿는 곳이 아니었음을 어른이 되어서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