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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귀멸의 칼날 X 마르틴 하이데거

시대의 마스터피스. 유한한 삶의 찬란한 승리.

by 하인즈 베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소비되고 있는 <귀멸의 칼날>은 결코 만만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재미와 볼거리를 넘어 이 작품은 아주 명징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인정과 거부의 충돌'이다. <귀멸의 칼날>은 어쩌면 20세기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평생 탐구했던 질문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극적인 답변으로 나는 보았다.


<귀멸의 칼날> 속 인물들의 삶과 죽음 (혹은 소멸)은 하이데거의 핵심 사상인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Sein−zum−Tode)를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 던져져 있으며,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모든 가능성 중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종착점은 바로 '죽음'이다. 하이데거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죽음이라는 종장을 회피하며 살아간다고 보았다. 우리는 죽음을 아직 오지 않은 것, 혹은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며, 무의미한 일상과 사회적 역할(dasMan) 속에 자신을 숨긴다. 하이데거는 이를 '비본래적 삶'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자신의 죽음이라는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유한성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태도가 '본래적 삶'이 된다. <귀멸의 칼날>은 이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들을 인간과 악마에게 대입해 충돌시키며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ca82a533adaa6.png 마르틴 하이데거 / 한겨레 사진


악마(오니)들은 사실 단순히 죽음을 두려워해 불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상현 3 아카자'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 불멸을 택했고, '상현 2 도우마'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공허를 외면하기 위해 스스로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삶의 일부인 고통을 피하려는 비겁한 도피였고, 그 결과 그들은 인간성과 의미를 상실한 채 비본래적 실존에 갇혔고, 끝없는 생은 오히려 그들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 기억과 감정은 점차 지워지고, 남은 것은 살육과 욕망뿐이었다. 도리어 악의 축인 '기부츠지 무잔'만이 아무리 막강한 힘을 쥐었어도, 죽음의 공포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존재였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렇듯 악마들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결코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불멸은 삶이 아니라 끝없는 공허의 연장이며,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순간 이미 살아 있는 자의 세계에서 추방된 것이다.


반대로 귀살대원들의 삶은 하이데거가 말한 본래적 삶 그 자체다. 그들은 매 순간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삶의 유한성을 피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전집중의 호흡'은 단순한 전투 기술이 아니다. 숨을 들이쉼과 호흡의 멈춤을 동시에 의식하는 행위는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한 번의 호흡과 한 번의 검격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또한 호흡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검사들의 삶과 죽음이 담긴 역사다. 탄지로가 '히노카미 카구라'를 이어받는 과정은 과거의 삶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하이데거의 '시간성' 개념까지 보여준다. 그들의 모든 훈련과 전투는 언제라도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선구적 결단이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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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열차>에서 소개된 염주 '렌고쿠'의 죽음은 이 모든 철학적 논의의 절정이다. 상현 아카자는 렌고쿠에게 불멸의 삶을 제안하며 비본래적 삶으로의 유혹을 건넨다. 하지만 렌고쿠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늙는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물의 아름다운 한 부분이다."


그는 이 명언처럼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끌어안는다. 하이데거는 운명에 대한 수동적 수용을 넘어, 죽음 위에서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태도를 강조했는데, 렌고쿠의 죽음이 바로 그 완벽한 예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단순히 슬픈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렌고쿠의 결단은 탄지로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의 유지는 영혼의 형태로 탄지로의 마음에 영원히 새겨진다.


결국 <귀멸의 칼날>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결국 죽음을 끌어안고서야 완성되는 삶의 승리를 그린다. 하이데거의 복잡한 철학적 명제들이 이토록 아름답고 극적인 서사로 표현된 경우는 드물다.


<귀멸의 칼날>은 죽음을 부정하는 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유한한 삶의 찬란한 승리를 보여준다. 철학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재미까지 확실한 이 시대의 마스터피스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8K_uE1LYg

<귀멸의 칼날 : 무한성>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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