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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r 08. 2022

사회성에 인간성까지 훅 떨어졌다

나의 사회성에 문제가 생겼다.

사람을 만나보고 알았다. 코시국에 집에서 고요히 지내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적응이 잘 안 된다는 걸. 복작복작한 분위기가 반가우면서도 여간 낯선 게 아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 폭포를 멍하니 바라보는 관광객이 된 듯하다. 어쩜 저렇게 이 시간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털어놓을 이야기들이 많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내 이야기를 하려 해도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특별한 이슈가 있었더라도 이미 해결된 지난 일이고 그러니 잊어버렸고 그러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금세 피로를 느끼고 수시로 벙찌는 느낌이 든다. 왕왕 울리는 소리로 가득한 공간에 귀를 막고 서 있는 것 같다. 홀로 부유하는 유령처럼. 고립되어 사는 사회 부적응자가 된 기분이다.


이 상태로 지내면 안 되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야겠다, 뭔가 간단하게라도 바깥 활동을 하며 변화를 줘야겠다 싶었다. 강좌 하나를 신청했다. 집 근처 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아이패드 드로잉 강좌였다. 구민들을 대상으로 여는 강좌로 하루 3시간 이틀간의 단기 수업이었다.

여섯 시간 수업으로 제대로 배울 수가 있나, 취소할까... 이 시국에 대면 수업에 가는 것도 찜찜하고... 이왕 신청한 거 눈 딱 감고 들을까... 변화가 필요한데...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수업 시작 10분 전까지 고민하다 일단 출발했다. 15분 만에 도착했고 꼴찌로 교실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분, 내 또래 여성 명이 있었다. 비어 있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나눠주는 아이패드와 펜슬을 들고 수업을 들었다. 강사가 장황하게 이 수업의 취지를 설명할 때부터 후회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설명해도 모자랄 판인데... 우려했던 대로였다. 이 수업 나한테 도움 안 되겠다, 에 방점이 찍혔다. 난 지겨운 티를 팍팍 냈다.


뭔가를 배우는 게 재미는 있었다. 중간중간 한숨을 여러 번 쉬긴 했지만. 이런 수업을 몇 번 들어본 바로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처음엔 메뉴 하나하나 필요 이상으로 설명을 꼼꼼히 한다. 당연히 시간이 부족해지니 뒷부분은 나 몰라라가 된다. 일단 해 보세요다. 하다 보면 수강생들은 여기저기서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이것저것 혼자 눌러보다 모르는 게 생기면 잽싸게 강사를 선점해 질문하고 해결해야 한다. 강사를 한번 놓치면 다시 내 앞에 모셔오기 힘들다. 강사는 다른 수강생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다. 주로 로그인이 안된다던가 이런 표시가 나한테만 없다라던가 하는 기초적인 문제다. 그런 데서 시간이 무진장 소요되는 거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황금 같은 오후에 무려 3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이 수업을 왜 신청했을까... 그냥 유튜브로 볼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강생들하고는 일절 말을 안 섞기로 마음먹었다. 수업도 긴가민가한 데다 이틀 지나면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래도 귀는 열려 있어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할아버지들은 포토샵, 영상 프로그램 편집 등 이곳에서 열리는 강좌의 대부분을 장기 수강한 분들이었다. 게다가 올해 대학교 웹툰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이라 하셨다. 헐! 대박!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고 나도 모르게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ㅡ 예? 신입생이시라고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ㅡ 아이구, 아닙니다. 우리 나이에는 들어도 자꾸 까먹어서 수업을 어떻게 들을까 걱정이지요.

ㅡ 저도 그래요. 오늘 들어도 내일 되면 하나도 생각 안 나요. 새로운 걸 배우시는 게 대단하신 거죠.

ㅡ 친구들은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나 그러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난 화가라 손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디지털로 그림 작업하는 게 궁금해서 배우는 거예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냥 배우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배움에 대한 갈망과 열의,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연배만 보고 섣부르게 재단하고, 수업 내내 마스크 속으로 입을 삐죽거리고 투덜댔던 게 부끄러웠다. 참 멀었다, 멀었어. 그렇게 첫날 수업이 끝났다.


둘째 날 수업을 가니 수강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닫아걸었던 내 사회성의 빗장은 쥐도 새도 모르게 헐거워져 있었다.

이날은 각자 드로잉을 하는 시간이었다. 얼마 만에 그려보는 그림인지. 굳은 손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림 그리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쉬는 시간, 갑갑한 마음에 로비로 나갔다. 커피 자판기는 없고 정수기만 있었다. 사무실에 노크를 해서 믹스 커피 한 봉지를 얻었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찬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가 들이켰다.   


뒤에서 누가 불렀다. 할아버지 한 분이었다.

"여기 와서 커피 한 잔 해요."

"예? 아....... 저는..... 지금..... 마시고 있는..."

이럴 수가!

로비에선 수강생들이 여섯 명 분의 커피를 막 젓고 있었다. 혼자 커피를 들고 있는 손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수강생들이 앞다투어 손짓을 했다.

"얼른 와요. 한 잔 해요."

하아! 정말 내 인간성이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순간이었다.

"제가 너무... 잠이 와가지고... 그래서.... 커피가 없길래...."

별 소용도 없는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중얼댔다.

내가 이렇게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나는 사회성과 인간성이 쌍으로 훅 떨어진 인간이 되어 있었다.


또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는데,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은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거였다. 다들 향후 수업 진행에 대해 훤하게 알고 있었다. 나보고 '계속 들을 거죠?' 묻는데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혼란스러웠다.

대면 수업은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어 편한 반면, 다 아는 설명도 참고 들어야 한다. 수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나의 사회성과 인간성에 대해 숙고해볼 시간을 가질지, 아니면 수업을 들으며 다시 회복을 도모하는 게 나을지 정말 잘 모르겠다. 이게 다 코시국 부작용일 거라고 탓을 돌리고만 있다.


죄다 잘 모르겠는 지금, 이거 하나는 알겠다.


비대면 시대,

사람과 사람은 대면해야 한다.

만나고 부대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떨어질 거다. 나의 -어쩌면 우리의- 사회성부터 인간성까지.


우리 어우러져 살아요. 햇살 그림자 어룽진 제라늄 이파리들처럼.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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