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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Jan 19. 2023

불확실한 취향

김치 잎, 줄기? 어떤 부분 좋아하세요?

칼국수집에서였던가? 식탁에 놓인 작은 김치 항아리에서 김치를 집어 들고 그녀가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  

김치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느냐니? 무슨 말이지?

할 말을 찾지 못해 벙찐 표정이 되었다.  

좋아하는 부분 드리려고요. 저는 잎 부분 좋아해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그는 접시 하나에 줄기 부분 잎 부분을 덜어놓으며 말을 흘렸다. 다른 이야기가 밀고 들어와 김치 이야기는 금세 묻혔다.


몇 번 만나본 그녀의 인상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생각이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없는 인상, 그래서 부럽기도 한 인상. 그런데 김치까지 명확한 취향이라니.

이젠 그녀의 얼굴도 목소리도 가물가물하다. 취향이 확실하다는 것만 남아 있다.  


불확실한 취향.

이게 좋은지 저게 좋은지 모르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과 저것을 다르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낯설다.


탕수육 부먹인지 찍먹인지,

콘프레이크에 우유를 붓는지 우유에 콘프레이크를 넣는지,

꼬들 라면인지 익은 라면인지,

김치인지 새 김치인지,

거기다 김치 잎인지 줄기인지까지.


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지만 한없이 진지하기도 하더라는 것. 불확실한 취향인으로서 이런 걸 나누는 의미를 모르겠다. 굳이 답을 하자면 '되는 대로, 그때 기분 따라, 맛있을 것 같은 쪽으로.'


탕수육이 바싹 튀겨져서 나오면 반 정도 부어서 먹다가 튀김의 숨이 죽고선 찍어먹으면 될 것.

우유든 콘프레이크든 손 가는 대로 그릇에 먼저 넣고 나서 뒤이어 다른 하나를 넣으면 될 것.

면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간 조절하면 되고 누가 끓여주는 라면이면 주는 대로 먹을 것.

새 김치든 신김치든 김치가 생기면 감사해하고 음식에 맞게 꺼내 먹을 것.

거기다 김치는 잎이든 줄기든 집히는 대로 먹을 것.

결론은 취향 없이 잘 먹는 것.


이렇게 가리는 것이 없기에 고백한다.

가리는 것이 하나쯤 있는 취향을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어릴 때 호박이란 소리를 들었다고 호박은 절대 안 먹는 그,

부추로는 무얼 만들어도 먹지 않는다는 그,

쓴 걸 왜 먹냐며 커피를 안 마시는 그,

소맥은 먹어도 소주는 안 마시는 그,

회를 안 먹는 그,

계피를 싫어한다는 그...


뭐 하나 가리는 게 있는 그들이 은근히 있어 보인다. 까탈스럽게 자기만의 맛을 추구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미식가들 같다. 가리는 재료를 골라내는 걸 보고 같이 먹는 사람들이 별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눈초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배짱도 있어 보인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한 입도 삼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있어 보이는 것이 부럽지는 않다. 그들은 달큰한 호박죽과 고추 송송 부추전, 시나몬롤을 맛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소주를 곁들인 회 한 점과 향으로 마무리하는 커피 한 잔의 융합과 어울림을 경험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무거나 잘 먹어서 좀 없어 보일지라도 특별한 취향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자신이 규정한 취향대로 하나를 콕 찍어 배제하면 경험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다.

난 원래 그래. 그런 거 안 좋아해.

이러다 보면 자기가 만든 범위 안에 갇히는 수가 있다.

이제껏 경험한 그것이 평균 이하였을 수도 있다. 탐스럽고 예쁜 호박을 본 적이 없다던지...

시간에 따라 취향이 바뀔 수도 있고. 물컹하고 질겼던 부추가 아삭하고 향긋하게 느껴진다던지...


취향이 없다는 건 열려있다는 것이다. 일단 받아들이고 경험해 본다. 장벽이 없다. 배제하지 않으니 뜻밖의 맛을 만날 확률도 높다. 그때그때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니 나의 현재 상태에 충실하다. 중요한 건 원래 그런 무엇이 아닌, 지금 원하는 무엇이니까.


눈앞에 보이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carpe diem.

seize the day.

불확실한 취향을 지닌 이는 현재를 즐길 줄 아느뇨니.

이 순간이 전생애인 것처럼. 하루살이와 같이.

불확실한 취향에 대한 소심한 항변이다.


by duduni


*알러지 등 건강 문제로 인한 조절은 논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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