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루틴. 밥 먹고 tv 틀고 jtbc 뉴스룸을 봐요. 뉴스 중 제일 길게 하거든요. 예전에 할아버지들 보면 늘 뉴스 보고 신문 보고 하시잖아요. 왜 그런지 몰랐거든요. 이상하게 점점 그렇게 되네요.
뉴스 말미에 날씨 소식을 전해주는 기상센터 코너가 있어요. 왠지 친근감이 가는 이재승 기자가 재미있게 진행하죠. 며칠 전부터 화면 하단에 메일 주소를 띄우면서 봄꽃 사진을 보내라는 거예요. 그냥 흘려 보다가 매일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한번 보내볼까, 싶더군요.
지금 한창 베란다를 밝히고 있는 꽃이 있거든요. 원래 3월은 되어야 피는 꽃인데 12월부터 꽃망울을 부풀리더니 1월에 일찌감치 핀 개나리 자스민이었죠. 올해 첫 개화때 찍어 둔 사진이 있었고 그 사진을 보냈어요.
촬영자와 날짜, 지역, 사연을 적어주면 좋겠다는 답메일이 왔고 충실하게 적어 발송했죠.
7년 전 꽃가게에서 산 작은 포트. 꽃이 지고는 몇 해 동안 시들시들 잎만 났었죠. 비실비실해서 버리려다가 자라는 환경을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 싶어 찾아보았어요. 아! 햇빛을 무척 좋아하는 식물이란 사실을 알았어요. 그동안 내내 어둑한 그늘에 두었던 거죠.
미안한 마음에 베란다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겼더니 그제야 향기로운 노란 꽃을 팡팡 피우는 거 있죠. 꽃에겐 자신에게 딱 맞는 환경이 필요한 거였어요. 생명을 가졌다면 무엇이라도 다 그렇겠지요?
식집사의 무지로 없어질 뻔 했던 소중한 개나리 자스민. 그늘에서도 묵묵히 참아주고 생명을 유지해주어 정말 감사해요. 1년 내내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 개나리 자스민을 우리집의 뚝심과 희망 아이콘으로 삼고 싶습니다.
capture by duduni
메일 보낸 지 2~3일쯤 됐을까요? 뉴스 보다가 엄마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이재승 기자가 나오더니 봄꽃 사진들을 막 소개하는 거예요. 모두 야외에서 찍은 사진들이었어요. 실내 꽃은 해당이 없나 보다 하며 통화에 집중했죠. 그때 개나리 자스민이 노랗게 탁 뜨는 거예요!
"엄마, 잠깐만!"
외치고 몇 초 지나자 금세 끝나버렸어요. 제대로 못 들은 거 있죠. 어찌 됐든 날씨 뉴스에 사진 보내서 바로 나올 확률은 100%였네요. 나중에 다시 보기 영상을 찾아보니 나와있어 아래에 첨부합니다.
통화 끝나고 얼마 후 친구한테 톡이 왔어요.
혹시 너 뉴스에 사진 보냈니?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네요. 신기하고 재미있고.
친구들 단톡에 '나 뉴스에 나왔다' 이러면서 링크를 보냈어요. 보고 나면 별 것 아닌, 김새는 소식일 테니 잠깐 웃고 넘어가라는 뜻에서요. 군대에 간 첫째는 엄마가 무슨 큰 상을 받아서 뉴스에 나온 줄 알았다며 실소를 짓는 거 있죠.
그러고서 생각해 보니 민망한 거예요. 이렇게 사소하고 쓸데없는 일에 열심할 일이냐구요. 해야 할 일은 탄력을 잃어 시큰둥하면서 이렇게 단발성이고 잔잔한 일에 굳이 사진을 고르고 메일을 쓰고 할 일이냐구요.
어떨 땐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요. 책을 읽다가도 베란다로 눈길이 가면 시든 잎을 따고 물을 주고, 글을 쓰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도 샛길로 빠져 전혀 다른 걸 검색하기 일쑤거든요. 평생을 이렇게 살아오면서 이 관성을 깨지 못하는 것이 면구스러운 거죠.
나도 참.... 어지간하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로 어제저녁 미사에 참석했어요. 어쩜. 신부님 강론 말씀이 딱 저를 향해 해 주는 말 같았어요.
심심해하라. 심심해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낡은 신발, 버려진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 깃든 이야기가 떠오를 거다. 그런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미다 보면 타인에게 관심이 생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나에 대한 관심이 된다. 나와 친해지고 나를 잘 아는 것은 타인을 잘 이해하는 첫 번째 단추다. 작고 쓸모없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결국 세상을 유연하게 하고 여유롭게 하는 것이다.
강론 내내 함박웃음 지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 쓸데없고 쓸모없는 일 계속해도 된다는 응원이었어요.
단톡에 달린 친구들의 답글 중에 이 응원에 힘을 보태는 글도 있었어요.
- 이런 소식 정말 신선해서 넘 좋다
- 참 긍정적인 제보자다! 생활 속 소소한 에피소드가 모여서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넌 그 능력이 탁월한 듯! 그래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