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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09. 2022
붉은 달이 뜬 밤
어제 개기월식이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저녁 7시 10분경부터 월식이 시작된다길래 잊어버리지 말고 꼭 챙겨봐야지, 생각했지요.
저녁 6시 20분 집으로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달이 둥실 떠 있고 살짝 갉아먹은 모양을 하고 있길래 그냥 지금 달이 저런 모양인가 보다 하며 대충 한 장 찍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때가 벌써 달의 왼쪽 부분부터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진 부분식이 시작된 거였어요.
2022. 11. 8. 오후 6.20 부분월식 photo by duduni월식의 절정인 최대식은 8시 경이라기에 30분 정도 뉴스를 보며 기다리기로 했죠. 요즘 뉴스를 보는 방식이 좀 바뀌었어요. 귀로는 뉴스를 듣고 손으로는 휴대폰 게임을 해요. 돌아가는 꼴이 어이없어 정면으로 뉴스를 보기가 싫더라구요. 그렇게 단순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데 톡이 왔고 게임 중 톡을 확인하기 어렵기에 있다 봐야지, 하고 미루었지요.
아! 톡을 빨리 봤어야 했어요. 별별씨(동화 모임)에서 개기 월식을 알리는 글이 올라온 거였어요. 그제야 맞다!! 월식!!!!! 으아!!! 그때 시각이 8시 10분이었어요.
파자마 바람으로 밖으로 튀어 나갔어요. 달을 향해서! 달이 보이는 곳으로!
아파트에 가려져 보이는 곳까지 뛰고 또 뛰고... 드디어 달을 만났어요.
희미한 붉은 달!
개기월식.
2022. 11. 8. 오후 8.10 개기 월식(내 폰 카메라 능력 최대치) photo by duduni아아, 신기하고 신비로웠어요.
잊고 있었던, 체감하지 못하고 살았던 우주가 한꺼번에 내 안으로 확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이었어요.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관통하면 태양이 받치고 있고, 저 앞에 보이는 붉은 달에는 이 땅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거지요. 게다가 지금 저 달의 머나먼 공간 뒤에는 천왕성이 지나고 있다는 거잖아요. 천왕성 엄폐!
네 개의 행성이 일직선 상에 있는 이 현상은 앞으로 200년 동안은 볼 수 없다고 하니, 그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하는 것이 감격스러웠어요.
멋진 걸 나 혼자 볼 수 없어 제일 먼저 관심사가 같은 우리 집 둘째에게 알렸어요. 독서실에 있다가 튀어나와 봤다네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알렸어요. 별 관심 없는 이들도 있었고 적극 호응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여러 반응이 톡 방을 달구었어요. 무쓸모 한 것에 사로잡히기 일쑤인 L작가님도 생각나 얼른 톡을 넣었죠. 만사 제쳐두고 튀어나와 찍은 달 사진과 호들갑을 주고받았어요.
우린 모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주에서 보면 아주 작은 점 안에 한데 뭉쳐있는 것이겠죠. 그 점 안에서 드넓은 우주의 한 장면을 동시에 보며 마음을 나누는 그 순간. 아득하고도 아찔한, 신비롭고도 짜릿한 마음의 파장을 느꼈어요.
지구 그림자는 달의 오른쪽으로 비켜나기 시작했어요. 왼쪽부터 새하얀 달빛이 나타났어요. 붉은 달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졌어요.
2022. 11. 8. 오후 8. 53 왼쪽부터 밝아지는 달 photo by duduni오늘 밤부터는 원래대로 하얀 달이 뜨겠지요?
늘 보던 달이지만 아니, 평소 잘 보지도 않던 달이지만 오늘의 달빛은 아주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똑같은 매일매일이 다르게 느껴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오늘이 밝았습니다.
짜잔!
아래 사진은 어제 같은 시각, 제 남동생 친구가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결과물입니다. 역시 다르죠.
달 위쪽에 하얀 점은 천왕성 엄폐 직전, 혹은 엄폐를 막 벗어난 천왕성입니다.
2022. 11. 8 개기 월식 photo by 남동생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