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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Aug 16. 2024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엘리시움 3부. To infinity, and beyond!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내 좌우명만큼이나 좋아하는 말이다. 지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무궁무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무한하게 펼쳐져서 끝이 없는 공간의 저 너머로 탐험한다는 것은 흥미롭고, 발칙하기 그지없는 딱 나만을 위한 모험이다.


<기록 16-(추정) A.D. 202,009,000년 경>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이자 실험인 포스트휴먼의 번성은 너무나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과거 생물체와 다른 번식방법으로 개체하나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리틀 엘리시움을 수도로 수페르 크레아 멘 종을 제조하는 공정은 이미 확립되어 문제 될 것은 없었으나 재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인구는 백만 남짓으로 갈수록 인구증가가 더뎌지고 있다. 이 인조인간들은 노화가 오지 않으므로 기하급수적으로 인구수를 늘려 나갈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비록 지표면의 대부분이 황무지가 되어버린 지구에서 포식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나 갖은 자연재해로 인해 툭하면 개체수가 줄어들기 일쑤였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지능을 갖춘 이들은 서로 시기하고 죽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크투가 만든 리틀 엘리시움과 인조인간 제조시설, 그리고 과거 임모탈들이 큰 거 한방을 위해 만든 중성자탄, 그 외에 기타 등등 때문에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원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초문명을 건설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어서 마크투에게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들이 죽게 되면 엘리시움에 백업시켜 놨다 새로운 몸에다 이식하는 것이다. 그에 관해서 마크투는 엄청난 반발을 하였다. 더 이상 몸을 만들 재료도 없을뿐더러 수페르 크레아멘은 엄연한 영혼을 가진 생명체이므로 죽고 사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 하였다. 만약 그들의 ‘영혼’을 백업시킨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길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그의 소중한 피조물들은 눈 깜짝할 새에 멸종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 마크원, 그리고 마크투 이렇게 셋은 투표를 하기로 했다. 바로 원활한 재료수급 및 문명건설에 기반을 위해서 엘리시움의 부품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엄청나게 오래되고 거대하며 어떠한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요새인 엘리시움은 온갖 기계장치와 물질로 가득하니 새로운 문명을 위한 밑거름으로 안성맞춤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마음 한편엔 엘리시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투표결과, 찬성 2 반대 1이었다. 죽어버린 우리 행성인 지구를 재건설할 수 있게 된 데에 대해 마크원은 크게 기뻐하였고 마크투는 자신의 자손들의 번영을 마침내 이룩하고 지켜볼 수 있게 된 데에 대해 깊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기록 17-(추정) A.D. 210,004,000년 경>

  그들에겐 안 됐지만 엘리시움을 파괴하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마크원은 지구에, 마크투는 인조인간들에게 너무나 집착하였다.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엘리시움의 스카이넷이다. 엘리시움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나의 통제하에 있다. 마크들도 엘리시움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을 리틀 엘리시움으로 옮겼다고 생각했지만 그 리틀 엘리시움조차 나의 엘리시움에 연결되어 있었다. 투표결과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이 시나리오는 내가 짠 각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이 지구를 재건한다 하여도 언젠가는 태양의 품에 안겨 소멸될 예정이다. 이건 마크들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들은 이상향을 추구했지만 더 이상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행성에서는.

그 이후 나는 엘리시움 대신 리틀 엘리시움과 그 위에 지어진 도시들을 재료 삼아 엘리시움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이 죽어버린 행성과는 이제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마크투가 영혼을 가진 생명체라고 주장했던 소위 ‘수페르 크레아멘’들은 나의 노예가 되어 명령에만 복종할 뿐이었다.

  각각 대마젤란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에 보내진 탐사선중 대마젤란 은하에 보내진 ‘페르디난드 호’만이 무사 귀환 했고 수많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이제 엘리시움의 개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때 엘리시움을 진공 안에서 보호하던 외곽은 발사체로써 사용될 것이고 엘리시움은 거대한 방주로 탈바꿈하여 우주를 항해하게 될 것이다.

목표지점은 대마젤란 은하로 새로운 요람을 향해 또다시 위대한 도약을 준비 중이다.





<The record of the Mark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영원한 침묵.

  딴 건 몰라도 죽음의 행성임이 틀림없다.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어떤 변화가 왔는지 몰라도 여긴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틀렸던 거구나. 태어나고 평생을 함께한 고향이 이토록 참혹하게 변하다니. 진작에 그의 말에 따랐어야 했다. 그는 항상 옳았다. 아니, 항상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에 수놓은 듯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뭔가 이상하다. 하늘이 너무나 깨끗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별이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너무나도 춥다. 그동안 갖은 기상이변이 있었지만 이토록 기이하게 변할 줄이야. 서서히 해가 뜨는 듯하다.

  태양이 힘차게 치솟고 강력한 열기가 내려쬔다. 하지만 여전히 어둡다. 그리고 너무나 뜨겁다. 갑자기 혼란이 찾아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낮임에도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로 인한 온실효과 때문인가? 하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아니 애초에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 거지? 금성인가? 그러기엔 대기가 너무 깨끗하다. 낮이 되어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니 갖은 크레이터자국이 많다. 일단 보이는 쪽으로 닥치는 대로 달려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중력이 매우 약하게 감지된다. 그렇군! 난 지금 수성에 와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에 있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살펴보니 태양이 매우 작게 보인다. 수성이라면 거대하게 보여야 할 태양이 작아 보인다. 지나친 억측이겠지만 태양이 수명을 다해 수축해 버릴 정도로 오랜 기간이 지난 걸까? 나는 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빛이 보이는 저쪽을 향해 일단 달리고 봐야겠다.

  달리고 또 달렸다. 이 미지의 행성의 시차변경선을 마침내 뛰어넘었다. 뭔가 낯익은 경치다. 그 찬란한 빛이 나를 덮친다. 아! 드디어 깨달았다. 여기는……!




<The record of the MarkⅡ>

  당했다!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놈에게는 투표는 안중에도 없었다! 위선적인 독재자 같으니.

주변에는 우주선의 잔해 같은 망가진 기계부품들이 나뒹굴고 있다. 눈을 씻고 둘러보아도 나 혼자뿐이다. 미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 망할 자식이 내 아이들을 어떻게 했는지 짐작이 간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가녀리고 부족한 내 피조물들이 번영하는 것이었다. 이게 그렇게도 과한 요구냐? 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대충 감이 잡힌다. 그놈은 죽어버린 행성, 지구를 떠나려고 했을 것이다. 나와 마크원은 동면시킨 다음 내가 창조한 기계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도살하고 얻은 부품으로 우주탐사선을 만들어 지구를 떠나려는 속셈이었을 테지.

목적지에 도착해서 우리를 깨운 후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자기 합리화식으로 설득하려 들었을 것이다. 뭐, 엿이나 처먹으라지. 보나 마나 부실한 우주선은 겨우 지구중력권에서 탈출했지만 기계적 결함으로 이곳에 불시착했을 거다. 무슨 천운이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는 나뿐이다.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곤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뭐, 지금은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말이네. 모두가 죽어버리고 나 혼자 살아남았지만 상관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가 바로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될 테니. 언젠가 생길 후손을 위해 기록이라도 좀 남겨둬야겠다.


 비록 빈사상태로 달에 처박혀 있을지라도.





<기록 19-(추정) A.D. 210,024,000년 경>

  난 왜 아직도 이딴 기록이나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보통 자서전은 후손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지만 난 이걸 읽어줄 후손들조차 오래전에 멸종했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전통처럼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 왔다. 기계부품으로 만든 인공신체, 전기적 신호로 이루어진 내 정신. 그렇지만 여전히 내겐 영혼이라는 게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발악이라고 보면 되겠다.

  수페르 크레아멘? 우월한 피조물이라고? 그 인조인간들은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영혼을 가진 생명체처럼 보인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인간보다 인간 같은 로봇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들은 그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진 인간의 모조품이란 걸. 당장 증명할 수도 있다. 손하나 까딱 하지 않고 프로토콜 오더만 내리면 그들은 나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한다. 뭐, 이렇게라도 쓸모 있으니 괜찮은 발명품이라 생각했다. 발사체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기록 18-(추정) A.D. 210,004,000년 경>

  모든 게 순조로웠다. 수억 년간 지구 깊은 곳에 박혀있던 엘리시움이 거대한 방주로 탈바꿈하여 우주로 나아가려 했다. ‘TSA (Terrestrial Space Ark) Elysium호’라고 명명한 이 우주선은 내가 직접 설계하고 개조했다. 수많은 기계노동자들을 이용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리라 예상했었다. 난 그 인조인간들의 각 개체마다 일을 배정하고 빈틈없이 관리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날이 왔다. 대기권을 돌파하기에 용이한 고깔모양의 꼭대기층. 우주공간에 들어서면 넓게 펼쳐져서 긴 여정동안 갖은 우주선(宇宙線) , 소행성충돌등으로부터 든든하게 지켜줄 방패가 될 것이다.  추진체는 복고풍의 고체연료를 이용한 로켓엔진이다. 초공간도약엔진을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재료가 필요했고 애석하게도 이 방주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적용시킬 기술이 아직 없었다. 대신에 구형의 방주아래에 원호를 따라서 총 8개의 로켓엔진을 부착했고 모든 가용한 에너지를 추진체에 집중시켰다. 비록 구식이긴 하지만 여태껏 시도도 해본 적 없는 이례 없는 거대한 엔진을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엘리시움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던 외곽부는 발사대로써 TSA 엘리시움 호를 전자력으로 부양시켜서 선체를 안정화시켰다. 이제 엔진을 점화할 때다.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굉음이 울린다. 여덟 개의 발사체 겸 추진체의 가공할 위력은 대지를 흔들었고 주변의 지층이 붕괴되어 발사대 내부로 쏟아진다. 전자기력 안정화 시스템이 셧다운 되고 자연스럽게 함선은 20G의 가속도로 지표면을 떠나간다.

  엘리시움의 외곽은 거의 파괴가 불가능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반응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그 오랜 기간 동안 화석화 되지 않고 견뎌내었다. 하지만 감싸고 있던 암석층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발사대가 붕괴되면서 8개의 엔진 중 2개를 잃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었고 총 8개의 엔진 중 2개만 정상가동 되어도 무리 없이 작동가능 하게끔 설계했다.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 이런 사소한 문제는 문제랄 것도 없다. TSA 엘리시움 호는 백만기의 인조인간과 잠들어있는 마크들, 그리고 나를 태우고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하고 있다.





<The Skynet’s Voyage log>


D+ 5 minutes: 발사대와 분리 성공. 엔진 점화중 외부 충격으로 3번, 7번 엔진 시스템 셧다운 됨. 이륙 문제없음.


D+ 30 minutes: 가속 엔진 연료 고갈. 1차 연료통 분리. 가속 중단하고 자세 제어 추력기에 동력공급. 현재 속도 약              353.16 km/s


D+ 10 hours: 달 궤도를 벗어나 대마젤란 은하를 목표로 좌표 조정중. 솔라 실드 활성화. 2차 연료통 분리. 현재 상태 양호.


D+ 2 days: 제트 엔진을 플라스마 엔진 모드로 전환. 수소 연료 활성화. 엔진점화 완료. 캐노피 하단부 유격 발생. 수소 연료 초당 약 13L씩 누출됨. 수리 요망.


-누출된 연료와 4번 엔진이 스파크를 일으킴. 4,5,6,8번 엔진 소실. 상태 치명적.


-연료 공급관 폭파됨. 후폭풍으로 캐노피 덮개 및 엔진 부 전체 파괴됨. 3축 스테빌라이저 가동. 비상사태.


-달의 중력권 탈출 실패. 역추진 엔진 점화. 수평 및 수직 축 스테빌라이저 손실. 자세 제어 추력기로 솔라 실드 전면부로 집중.


-3축 스테빌라이저 모두 손실. 추력기 파괴됨. 솔라 실드와 선체 연결부에 심각한 유격 발생. 탑승객 전원 탈출선으로 이동


-탈출선 파괴됨. 이동 중 승객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유추됨. 솔라 실드와의 연결부 파괴됨. 비상 착륙 시스템 가동.


-캐노피 및 선원실 차폐막 활성화. 동력 손실. 비상 발전기 가동.


-잔여 에너지 50%. VIP실 이중 차폐막 활성화. 스카이넷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 대기모드로 전환.


-잔여 에너지 15%. VIP실 전자기력 보호막 활성화. 스카이넷 대기모드로 전환. 필수 동력을 제외한 모든 에너지를 역추진 엔진에 공급


-잔여 에너지 0.1%. 달 표면과의 충돌하기까지 1분 남음. 선체의 에너지 완전히 방전됨. 일부 탑승객은 독자적 소형 원자로를 탑재한 인간형 슈트로 탈출을 시도함.


D+ 3 weeks: 선체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됨. 탑승객 전원 대기모드 해제. VIP실은 솔라 실드의 잔해와 충돌하여 충격이 완화되어 비교적 대미지 적음. 스카이넷은 충돌과 동시에 여파로 우주공간으로 튕겨 나간 것으로 추측됨. 신호가 전혀 감지되지 않음. 탑승객 생존확률 0.00045%.





  나는 모든 것을 예상했다. 적어도 그런 줄 알았다. 여태껏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오면서 쌓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지 않았던 내가 허용해 버린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과거에 인공지능에게 스카이넷의 권한을 부여했을시의 참사, 소행성 충돌 당시 궤도계산의 착오 등 오랜 기간 동안의 과오를 잊어버린 것인가.

  항상 내가 아니면 안 됐었다. 특히나 인공지능에게 티끌만 한 꼬투리를 잡히게 해선 안되었다. 항성 간의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느라 어린아이처럼 들뜬 나머지 또다시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달표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항해일지를 담은 블랙박스 기록을 뒤지고 있는 것뿐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에 대한 기대감, 그 어느 때 보다도 완벽할 것이라 생각한 자만감, 그리고 인공지능을 탓하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나의 실망감. 이 모든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좌절감. 스스로가 영혼을 지닌 정신체로서 우월감을 내세우던 바로 그는 지금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잠식되어 갈 뿐이다.


   형체를 알아보기에는 애매한 반구들의 잔해를 바라보며 또다시 딜레마에 빠진다. 완벽함에 가까워지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감정을 배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크투가 주장한 피조물에 부여된 영혼.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인조인간들의 감정만큼은 진짜였다고 한다. 애써 나는 영혼의 유무를 따져서 상대적인 우위를 가지려 했다. 동시에 빈틈없이 완벽한 정신체가 되려 했다. 아니, 항상 그렇게 되길 바란 것 같다. 유기물로 이루어진 조직이라고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내가 완벽을 위해 감정을 제거한다면 마지막 남은 인간성 마저 저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기계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과연 내가 영혼이란 것을 감히 정의할 수 있겠는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로 드러난 것에 대한 반박의 여지가 없다. 나는 이 순간부터 인공지능을 지닌 피조물과 다른 점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한 가지 차이점은 그들에겐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들을 지배한다고 여겼지만 하나의 스카이넷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까마득한 옛날옛적에 프로그래밍된 명령을 처리해 온 기계일 뿐.




<The skynet’s warning protocol>

-사고회로의 논리적 오류에 대한 소프트웨어 충돌 발생

/진단:시스템 재가동


-경고: 알 수 없는 에러로 인한 운영체제 재부팅 실패


-하드웨어의 심각한 손상/자가발전식 핵융합로 파괴

/진단:복구 불가능 대체 에너지원 가동


-운영체제의 반복적인 오작동으로 인하여 자가폭파 시퀀스 가동

/진단:비상 구출용 신호기 가동 후 전면 캠으로 수리가능한 플랫폼 및 수페르 크레아멘 수색시작


-동력 부족으로 자가폭파 시퀀스 중단됨. 잔여 에너지 78시간


-경고:사고회로의 오작동으로 기계신체가 파손되고 있음

/진단:하드웨어 전면 긴급 작동 중지


-연료 완전연소됨. 주요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

/데이터 전송실패. 이용 가능한 클라우드가 없음 영구적 메모리 드라이브로 백업 중


-데이터 백업완료. 비상 구출 완료 시까지 대기모드로 전환


-대체 에너지 고갈. 경고 메시지 종료


<기록 20-(추정) A.D. 509,053,000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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