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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HEY Mar 01. 2023

책가도 2월

수레바퀴 아래서

두 번째 이야기 나눌 책은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청소년 필독서로도 많이 알려진 고전이죠.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온 분들에겐 회고를, 그 시기를 곧 지켜보게 될 저 같은 부모들에게는 깊은 고민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책을 덮고난 후엔 단순한 감정의 소모를 넘어 묵직한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이 책은 1900년대 초반 독일의 교육열 아래 한 아이의 삶이 어떻게 시들어가는지를 담담하지만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과 문화의 차이가 무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어 이질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연 고전의 위대함을 느끼는 한편 씁쓸함도 크게 다가옵니다.


주인공 한스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유독 눈에 띄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낚시와 토끼, 자연을 좋아하던 한스는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고 또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하는 순종적이고 여린 아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기대에 부응하고자 방과 후에도, 방학 중에도 복습과 선행학습으로 온 시간을 보냅니다. 점차 어른들이 주입시킨 공명심을 스스로의 목표라 믿게 되며 그에 방해되는, 자기가 사랑하던 아름다운 것들과 멀어져 입시의 세계에 완전히 고립됩니다. 소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한스가 느끼는 중압감과 주변과의 관계, 그로 인한 내면의 변화를 면밀하게 그려냅니다.


이 소설의 큰 줄기가 강압적인 교육제도이며 한스의 비극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한스가 겪은 비극의 원인을 오로지 교육시스템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일면만을 바라본 감이 있습니다. 신학교의 동급생들도 역시 순응을 요구하는 학교문화와 학업 스트레스에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제각각의 방법으로 버텨내고, 때론 반항을 할지라도 한스처럼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피폐해지지는 않습니다. 한스에게 크고 작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가장 가까운 친구 하일러도 훗날 사회에 잘 적응하여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구절도 나오니 말이죠.


이 비극의 원인을 한스 개인의 유약함이라 탓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단단해져 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제각각의 강함과 취약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 취약함은 주변의 지지와 사랑으로 충족됩니다. 그 힘이 있어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죠. 그러나 한스에게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한스는 마을의 유망주라는 특별 대우를 받으며 학교 친구들과 분리되었고 어린 시절 어울리던 동네친구와는 아버지가 토끼우리를 부술 때쯤 이미 멀어져 버렸습니다. 한스 곁에 있는 어른들은 한스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것은 오로지 사회적 성공을 얻기 위한 관리였을 뿐입니다. 어른들은 한스에게 ‘넘어져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넘어지면 ’수레바퀴에 깔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줍니다.


결국 채워지지 않은 빈 감정의 누각 위에 세운 무거운 중압감이 그를 뼈대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린 것입니다. 애초에 뼈대도 만들어지지 않은 내면이었죠. 이렇듯 한스를 비극으로 몰아간 건 교육제도만이 아닙니다. 아이를 거대한 시스템 아래 무자비하게 밀어 넣은 어른들의 몰이해야말로 가장 가까이에서 행해진 폭력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아름다운 주변 자연에 대한 묘사가 길고도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한스의 몰락은 이와 대조되어 더욱더 비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읽는 내내 모든 순간이 안타까웠으나 그간 쌓아 온 모든 걸 뒤로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들뜬 마음도 잠시, 실망하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던 한스의 모습, 어릴 적 뛰놀던 자연 외엔 마음 기댈 곳 없어 낡은 추억에 매달리던 외로운 아이의 모습이 특히나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덮은 후, 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줄 힘은 없더라도 적어도 내 아이에게 한스와 같은 마음은 갖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더군요. 고작 6살 난 아이의 엄마임에도 벌써부터 입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들리곤 합니다. 조바심까진 아니더라도 그 이야기들을 쉽게 무시하지는 못했으나 이 책을 읽고 나선 중심을 확고히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는 훨씬 더 진지하고 깊게 고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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