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린이의 수영일기
어릴 적 단짝 친구와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초등학생 단체강습이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은 열 명이 넘는 아이들 중 나를 콕 집어 나머지 수업을 명하셨다. 혼자 진도를 못 따라갔던 것이다. 친구 보기에 창피했고, 나는 역시 운동에 형편없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에 쐐기를 박는 사례가 되었다. 당연히 잘 못할 수도 있고 선생님도 그저 그런 학생에게 좀 더 도움을 주려 했을 뿐이지만 나는 내가 그 반에서 꼴찌로서 눈에 띈다는 사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갔는진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자유형도 제대로 못 익히고 관두었다.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선수반까지 쭉쭉 치고 나가 모든 과정을 다 이수했고 나는 그 격차를 보고 일찌감치 수영은 포기하고 25년 간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살았다. 물에서 노는 게 재미있었는데 남들보다 못할 수 있고 때로는 꼴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 억지스러운 기준 때문에 그때의 수영은 악몽으로 남았다.
그러다 얼마 전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살다 보니 수영을 배워야 될 이유가 자꾸만 생겼다. 아이들이 좀 크니 물놀이도 데려가고 싶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생존용으로라도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유산소운동인 걷기를 무릎 통증 때문에 줄여야 하는데 수영이 딱이지 뭔가. 그 외에 여러 에세이에서 수영예찬론자들의 이야기를 본 것도 영향이 있었다(그들도 하나같이 운동신경이 형편없었다는 말에 자극이 됐다.). 무엇보다 나이 들고 애 낳고 보니 놀라우리만치 창피함이 없는 씩씩한? 아줌마가 되었지만(아줌마 비하 아님), 그럼에도 여전히 일 못하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못하는 일도 개의치 않고 즐겁게 해내는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
수영 강습 첫날,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아서 발차기 연습 좀 더 하고 가라고 했지만 조금의 머쓱함도 없이 머리가 아파 난 간다며 문을 박차고 나온 걸 보면 일단 마지막 목표는 벌써 달성한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