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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25.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부코>, 마인츠 |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오페라 리뷰

2022년 3월 20일

마인츠, '나부코'


1. 원래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고 길게 적다가 포기했다. 그래서 서랍 속에 넣어놓은 후, 새롭게 다시 쓰는 글이다.


2. 첫 번째 시도에서는 오페라 '나부코'의 역사적 의의, 작곡가 베르디 이야기들을 풀다가 너무 방대해져서 도저히 매듭을 지을 수가 없었다.


3. 그만큼 오페라 '나부코'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공연을 본 소회도 깊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걸 효율적으로 풀어놓을 능력이 없었다.


4. 이번에는 기승전결 없이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거리기만 할 것이다.


5. 서곡이 시작되면 기괴한 알람이 울리고 회전무대가 돌아간다. 회전하는 무대의 끝에는 아궁이같이 생긴 구멍이 있다. 무대 위에서 기운 없이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목숨을 걸고 싸운다.


6. 결국 한 명이 패배한다. 그리고 그는 아궁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장 약한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차례차례로...

마인츠 오페라 '나부코' 중 한 장면

7. 가끔 우리를 경쟁하게 만드는, 정해진 테두리 안의 삶은 참 잔인하다. 약한 이부터 도태된다.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그게 실력이든, 또 다른 속임수이든... 그렇지만 속임수로는 아궁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순서만 뒤로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지... 결국 그것은 답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믿고 싶다.


8.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제거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지옥이다. 애초에 그 판에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9. 서곡이 끝나고 오페라가 시작되면 아주 중요한 배역이 나온다. 베이스가 노래하는 역할인 '자카리아'이다. 히브리 민족의 대제사장인데, 직책은 높지만 어차피 그도 바빌론에 의해 멸망된 히브리족의 지도자일 뿐이다.


10. 베르디는 이 역을 당대 최고의 베이스였던 프로스페르 데리비스(Nicolas-Prosper Dérivis 1808-1880)을 위해 작곡했다. 그래서 베이스 역할치고는 드물게 멋진 어려운 아리아도 주고, 음악적으로 난이도가 상당하다. 사실 당대 최고의 가수를 염두하고 작곡된 역할 중 쉬운 것은 없다.

1835년 경의 프로스페르 데리비스

11. 나는 보통 자카리아 역할에 기대를 하지 않고 '나부코'를 관람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미 타이틀 롤인 '나부코'와 실질적으로 극을 이끄는 여자 주인공 '아비가일레'에게 개런티를 가장 많이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자카리아 역까지 그 '급'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12, 실제로 2017년인가...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관람했던 '나부코'에서도 자카리아 역은 조금 벅차 보였다. 그리고 2018년인가.... 베를린에서 봤던 '나부코'의 경우에는 원래 캐스팅이 아픈 바람에 코벤트 가든에서 자카리아를 노래한 가수가 대타로 왔다. 그 가수는 참 훌륭했다. 이런 경우는 행운이 함께 한 셈이다.


13. 애초에 자카리아 역에 기대는 안 했기에.... 흠.... 별다른 감흥 없이 오페라를 감상하고 있었다. 최근에 마인츠 극장의 신임 오페라 감독이 이탈리아 출신이라 좋은 이탈리아 가수들을 많이 데리고 온다는 이야기는 건너 들었지만 내가 본 공연의 가수는 '그 이탈리아 가수들' 중에 한 명은 아니구나 싶었다.


14. 인터미션 때 캐스팅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평범한 가창력을 가진 자카리아 역의 가수가 2015년 경에 내가 "저 가수는 어떻게 저런 소리로 노래할 수 있지?"하고 감탄했던 그 가수였다.


15. 7년 만에 저 가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당시에 그가 부르는 스카르피아(토스카), 한스 작스(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들으며 "저 압도적인 소리는 무엇?"이라며 입이 떡 벌어지던 나였다.


16. 그동안 마인츠 너머 독일 전역으로 확대되는 그의 활약에 대한 소식도 들었고, 한켠으로는 그가 엄청난 '골초'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그때 이미 불길한 예감을 느끼긴 했다. 그래도 담배를 하루에 몇 갑씩 피워도 폐가 쌩쌩하게 장수한 할아버지 같은 특별한 예외를 그에게 기대했다.)


17. 7년 전 건장했던 그의 체격은 이제 매력 없이 비대해져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장 전체를 관통했던 그의 기름진 목소리는 내가 그를 못 알아볼 정도로로 윤기를 잃었다. 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을 어찌어찌해내느라 급급한 그의 모습에 씁쓸했다. 나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히어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관객은 없을 것이다.


18. 나는 영웅의 귀환을 보고 싶다. 가장 약한 자가 되어서 아궁이에 빨려 들어간다 해도, 다시 부활하는 영웅이 보고 싶다.


19. 하지만 이건 관객의 일방적인 바람일 뿐이고, 영웅이 부활하려면 뼈를 보통 깎아가지고는 되지 않는, 멘털도 부서지다 못해 재가돼버리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20. 의식의 흐름대로 계속 쓴다. 예전에 재일교포 작가 중에 화제가 된 분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던 내가 봐도 한 여자로서 정말 고단한 삶이었다 싶었다. 그분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대로 작품 안에 녹아들어서 권위 있는 문학상도 수상했고, 영화화도 됐다. 그때 읽었던 그녀에 대한 기사 중에 너무나 충격적인 대목이 있어서 지금도 생각이 난다.

대략 아래와 같은 문맥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작품을 썼듯이) 앞으로도 그녀가 상처를 많이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녀가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기를 바란다."


이런.... X 같은....

아무리 예술가가 자신을 태워서 작품을 만들어낸다지만, 누구도 그에게 '잔 다르크'가 되어서 프랑스를 구하고 화형대에 올라가라...라고 할 권리는 없다.

누군가 질식할 것 같은 고통과 고뇌 속에서 겨우 글을 통해 숨 쉴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거기다가 더 숨이 막혀봐라... 그러면 더 명작이 나올 것이다.... 라고 한다니....

얼마나 잔인한가.


21. 같은 맥락에서 나의 일그러진 마인츠의 영웅이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그가 즐겁게, 행복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더 이상 자카리아 같은 큰 역을 노래하지 않게 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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