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젤레로 얼추 배를 채운 나는 숙소에 도착했다.
(다시 말하지만 띠젤레는 간식 정도의 요기가 될 뿐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겐 맥모닝 메뉴 중 햄치즈 크로와상 정도? 먹을 땐 포만감이 있는데, 금방 배가 꺼진다는....)
난 항상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이탈리아의 태양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이번 볼로냐에는 빗 구름이 가득했고, 습했다.
실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결 더 강해진 나의 이태리 자아가 외친다.
"그래도 코로나 지나고 여기 다시 올 수 있는 게 어디냐!"
숙소에서 대충 짐을 풀고 나니 알코바 형태로 된 고풍스러운 침대가 "잠깐만 쉬었다 가"라고 나를 유혹했다.
사실 점심을 먹으려면 바로 나갔어야 했다.
이탈리아의 점심시간은 보통 12시부터 3시까지로, 이미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더니,
밤을 새운 나와 침대 사이의 만유인력은 그 순간에 최고점에 달했다.
수면욕이 식욕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드루와, 드루와!" 어미젖을 찾아가는 갓 태어난 새끼처럼 나는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니, 지금 몇 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다.
오늘 나는 격조 높은 식당에서 냅킨을 깔고 칼질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다 놓쳤다.
이태리에서는 저녁을 제대로 먹기가 늘 쉽지 않다.
저녁에는 오페라 관람을 예약해 놓거나
야경을 구경한다던지 하면서 일정을 잡아놓기 때문이다.
또 이태리 식당들은 보통 저녁 7시 반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그 시간에 먹기 시작하면 도대체 언제 소화시키고 자나.. 하는 걱정도 있다.
위산이 역류하면 성대에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나는 저녁 6시 넘어서는 공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제 6시 전에 배를 채워야 한다.
스트릿 푸드 파이터가 되는 수밖에 없다.
시내를 다니면서 인파가 몰리는 몇 군데 가게가 눈에 띄었다.
첫 번째는 앗띠(Atti: 정확한 이름은 '파올로 앗띠와 자식들')
https://goo.gl/maps/UWYRytTcewMiiKLTA
무려 1868년에 생긴 가게다. 특히 파스타와 빵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
여기서 만든 파스타 중에서 또르뗄리니(Tortellini)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또르뗄리니는 고기나 치즈를 안에 넣은 이탈리아판 만두라고나 할까.
볼로냐가 속해있는 에밀리아 지역이 원조라고 한다.
(볼로냐랑 모데나가 서로 원조라고 싸운다나 뭐라나...ㅎㅎ)
이제까지 또르뗄리니는 크림소스와 함께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볼로냐에서는 수제비처럼 삶아서 국물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또르뗄리니와 비슷한 아이로 또르뗄로니(Tortelloni)가 있다.
또르뗄로니가 우리나라 송편 사이즈로 더 크고 보통 시금치, 버섯, 호두 같은 채소나 치즈로 속을 채운다.
반죽에 시금치를 사용해서 초록색이 된 녀석은 '발란초니(Balanzoni)'라고 부른다.
또르뗄리니 만드는 모습 특산품이라고 '토르텔리니(Tortellini)'를 자랑스럽게 진열하고 있다. 정말 다양하구나! 왼쪽 아래에 또르텔로니(Tortelloni)와 발란초니(Balanzoni)도 보인다.
그리고 쌀로 만든 케이크(Torta di riso 또르따 디 리조) 맛이 너무 궁금했다.
저걸 사 가지고 가서 숙소에서 커피랑 먹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래, 일단 위시리스트에 넣어놓자고!
아래 보이는 쌀케이크. 네 맛이 궁금하닷!!
그리고 하나 사서 독일에 들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예쁜 체르또지노(Certosino) 케이크.
꿀, 설탕에 절인 과인, 아몬드, 잣, 코코아 가루, 다크 초콜릿, 그리고 와인 시럽이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들의 체르또지노는 당신이 볼로나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 거예요!"
그런데 바로 옆에 라이벌인가 싶은 가게가 보인다.
땀부리니(Tamburini: 원래 이름은 '전통의 돼지고기 식품 가게 땀부리니')
Antica Salsamenteria Tamburini a Bologna | Tamburini dal 1932 -
https://g.page/TAMBURINIBOLOGNA?share
1932년부터 시작된 역시나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진 가게.
또르뗄리니 같은 파스타는 앗띠와 겹치지만
이곳은 볼로냐 지방의 특산물 햄인 모르따델라(Mortadella) 같은 햄 종류에도 특화되어 있다.
볼로냐는 예전부터 특히 돼지고기 가공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다.
괜히 미식의 도시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모르타델라는 돼지 어깨나 허리살을 잘 갈아서
검은 후추와 피스타치오로 양념한다고 한다.
거기에 계피, 고수 씨, 정향, 아니스 등 다양한 향신료도 들어간다고...
그런 다음에 돼지 방광에 넣어서 만든 햄이다.
독일에서 흔하게 보던 햄이어서 이렇게 정성 어린 제품인지 몰랐다.
모르따델라 샌드위치. 아.... 배고프다. 이 지방 모르타델라 햄은 엑스트라(extra), 수페르(super), 노르말(normal) 이렇게 세 가지 품질로 나뉜다.
'모르타델라 볼로냐'는 무조건 돼지고기 100%로만 만들어지고 볼로냐 이름이 빠지면 쇠고기나 양고기가 섞는다고 한다.
아.... 볼로냐에 왔는데 이 모르타델라를 안 먹어볼 수도 없고...
그런데 옆집은 또 뭐니?
https://salumeriasimoni.it/
https://goo.gl/maps/2exv7bxUvbEWcinU9
햄, 소시지 그리고 치즈 전문점 시모니(Simoni).
진열장에 걸린 고기가 엄청나게 육감적이다.
이 가게는 1960년부터 시작됐으니 가장 젊다.
볼로냐와 모데나 사이에서 요리 잘하기로 유명한 증조할머니의 전통을 이어받은 손자들이 이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현재 4대째 운영 중.
여기 모르따델라도 궁금하지만 단체 관광객이 점령 중이라서 도저히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럼 도대체 뭘 먹었냐고요?
볼로냐(3) 편으로 이어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