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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급 타짜를 찾아서.
<타짜: 원 아이드 잭>

초급 타짜들의 경연장에서 진짜초고급 타짜를 찾아 떠나는 길

진짜 타짜는 누구인가.


타짜는 도박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다. 아주 잘하다 못해 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타짜에도 급이 있다. 가장 하급의 타짜는 손재주 몇 개를 가진 사람이다. 손재주를 가진 사람은 손재주 없는 사람들 틈에서 몇 푼의 돈을 딸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속인 것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그런데 눈은 손보다만 느린 것은 아니다. 눈은 발길질보다도 느리고 주먹보다도 느리다. 불쌍한 눈. 

전형적인 하급 타짜의 모습을 보여 주며 런닝맨을 연기한 이광수

그래서 중급 타짜가 나왔다. 중급 타짜는 눈은 가만 두고 사람들의 머리를 속인다. 머리를 어떻게 속일까. 머리는 속기 쉽다. 중급 타짜는 내가 네 편일 것이라는 생각을 조롱한다. 도박판에서 옆에 앉은 사람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다 믿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생각은 쉽게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속이는 것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들은 이 속고 속이는 전쟁터 같은 판 속에서 플레이를 즐긴다. 

전형적인 중급 타짜의 모습을 보여 주며 양아치를 연기한 류승범. 이제 충무로에서 그보다 더 멋진 양아치는 없다.

고급 타짜는 자잘한 손기술이나 호구를 벗겨 먹는 팀플레이 등 중, 하급 타짜로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그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다. 고급 타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날릴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대신 자잘한 중, 하급 타짜들 틈에 끼어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급 타짜는 돈 대신에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더 이상 돈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다니. 그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애꾸와 도일출, 그들은 끊임없이 고급 타짜가 되고자 노력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엔 속임수도, 팀플레이도, 말솜씨도 그 아무것도 통하지 않고, 또 필요하지 않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타짜. 그는 사람들 속에 숨어서 쉬 나서지 않는다. 다만 눈빛 하나로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멈추게 하고 뜨겁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한다. 고급 타짜는 말 아닌 말로 통하는 사람이다. 고급 타짜는 도박을 하지 않고 도박을 한다. 그는 술을 먹지 않고 취하고 돈 없이 부자가 되며 돈더미 속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된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평경장이 전라도를 찾아 마침 짝귀와 고스톱을 몇 수 둔 적이 있었다. 두 선비가 앉아 치라는 난은 치지 않고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말없이 차만 마시며 난의 향을 느끼는 격이었다. 두 선비 앞에 다기(茶器)를 차려 주니 마시라는 차는 마시지 않고 창밖의 봉선화 꽃잎만 바라보는 격이었다. 평경장이 멍하니 앉아 오동잎 세 장을 두고 설사를 하자 짝귀는 빙긋이 웃으며  솔 쌍피를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도박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고수의 세계는 이렇게 멀다. 

아수라발발타, 아귀에 의하면 평경장 그 양반 가실 때도 아주 예술로 가셨다. 

이튿날 벌교 읍내 흙다방에서 쌍화차를 마시며 짝귀에게 향후 계획을 물어보았다. 짝귀는 아내와 함께 조촐한 고스톱 카페를 운영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평경장은 그의 진솔한 말과 소박한 마음씨에 반해 자네 같은 사람은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평경장이 떠나간 후 커피값을 계산하러 온 짝귀의 아내는 다시는 저런 사람과 벗하지 말라며 사내의 커다란 꿈이 한낱 선문답 속에 혹 그 힘을 잃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짝귀는 그날 이후로도 아내의 말을 좇아 용맹정진을 멈추지 않았으며 전라도의 순천, 여수, 벌교, 무안 등 이름난 도박판은 다 찾아다니며 자신의 이름이 짝귀임을 알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짝귀는 아내를 믿었고, 아내는 짝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비정한 도박판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참된 길을 고민했던 평경장

허나


생은 순탄한 길로 수레를 끄는 법이 없다. 타지에서 고급 타짜 노릇을 해보려던 짝귀가 새롭게 부상한 마귀라는 근본 없는 중급 타짜에게 제대로 코가 걸려 죽어버렸다. 짝귀는 죽어서까지 자기가 번 돈을 지켰다. 마귀는 이름답게 짝귀를 살려 주는 대신 순간의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짝귀가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목숨이었다. 


이후 강호는 무법천지 아사리 판이 되었다. 손과 눈을 속이는 하급 타짜들이 중급 타짜 노릇을 하고, 하급 타짜 노릇을 좀 했다 싶으면 너도나도 중급 타짜쯤은 되는 줄 알고 경거망동했다. 강원랜드에서 발행하는 도박 잡지 <도박춘추>에 ‘평경장과 짝귀의 죽음과 향후 도박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한 경상도의 아귀는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도박판에 끼지 않겠으며 협잡과 폭력으로 물든 도박판을 개탄했다.   

그는 불의에는 단호히, 비록 그의 손일지라도, 손목아지로 대답한 고급 타짜였다. 

말이 길었다. 


세상에 진짜 타짜는 어디에 있을까. 중원을 호령하던 옛 타짜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나이 든 어른들도 컴퓨터 게임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대에 강호의 멋과 낭만을 알고 행하는 고급 타짜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간혹 영화감독들이 끈질긴 취재와 천재적 영감 끝에 세상에 없어진 것들을 찾아내 재현하기도 한다. 권오광 감독은 <타짜-원 아이드 잭>에서 세상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초고급 타짜를 발견해 스크린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초고급 타찌는 믈론 포스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초고급 타짜는 고급 타짜와도 비교를 거부하는 그야말로 고급 중의 고급 타짜를 말한다. 초고급 타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을 넘어 역사에 관여하고 세상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고수들이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언뜻 보기에 세상은 그들 초고급 타짜와 전혀 관련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범인들의 작은 눈으로 바라본 것일 뿐. 세상은 어차피 초고급 타짜가 방구석에 앉아서 수염을 쓰다듬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초고급 타짜는 그 존재 자체가 귀하고 나타났다 하더라도 알아보기 쉬운 존재가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초고급 타짜를 눈앞에 두고도 그저 지나치기도 한다. 아니 대다수 사람들이 그러하다. 자기 삶의 방향을 누가 정해주었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회로애락의 굴레 속에서 제 삶의 초라함을 구원해 줄 초고급 타짜만 그리워하는 꼴이다. 이 사람아, 바로 지나친 저기 저 사람이 초고급 타짜였어.


아뿔싸!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소용없다. 초고급 타짜는 그를 알아볼 수 있는 心眼의 소유자에게만 그 모습을 보이는 법이다. 애꾸는 마귀에게 눈을 잃고 심안을 기르려 했다. 허나 천성이 깊지 못하고 화급한 성격 탓에 결국 그것을 가지지 못하고 중급 타짜의 수준에 머물렀다. 마귀는 근본이 없는 자다. 마귀는 제 이름과 그에 걸맞은 폭력으로 싸움을 하는 자다. 爆(폭)으로 흥한 자 力(력)으로 망하게 되어 있는 법. 마귀의 결말은 애초에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한쪽 귀와 한쪽 손을 잃고 고급 타짜의 길을 걸으려 했던 짝귀? 짝귀는 고급 타짜의 길을 걷기엔 그릇이 작았다. 그는 제 재산을 관리할 재목이 아니었다. 그럼 누구인가. 누가 초고급 타짜인가. 

뭐랄까. 한총련 출범식 발언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은 없는 권해효. 물론 그도 고급 타짜는 아니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다만 호칭만 있을 뿐이다


러시아 속담에 “신은 모든 곳에 타짜를 내릴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도박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패를 바라보는 당신.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여기 짝귀의 아들 도일출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시장에서 식당을 하며 어렵게 자식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서글프다. 남편 짝귀는 불귀의 객이 되고, 아들놈은 어머니 마음도 모르고 허구한 날 도박판에만 빠져 망령되이 제 아비의 이름을 부르며 고급 타짜가 되고 싶어 하는 헛된 욕망만 지니고 있는 자다. 도일출의 어머니, 어찌 그가 아들의 욕망을 모를까. 짝귀의 아들인데 그 피가 어디로 갔을까. 반찬을 챙겨 찾은 고시원의 책상 위에는 책 대신 트럼프 카드만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짝귀의 아내이자 도일출의 어머니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도일출이 도박판에 빠져 지방에 팀을 짜서 원정을 다닐 때에도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 그는 ... 판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초고급 타짜에게는 진짜 커다란 판을 읽는 마음의 눈이 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한판 한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판세를 관망할 뿐이었다. 그의 관망 앞에 물영감도, 이상무도, 애꾸도 다 나가떨어졌다. 심지어는 도일출도 나가떨어졌다. 이것이 초고급 타짜의 싸움법이다. 그는 아귀니 짝귀니 평경장이니 도일출이니 헛된 싸움에 서로 피튀길 때 조용히 물러나 오직 식당에서 자신과의 약속에만 충실 할 뿐이다. 그가 식당 밥을 하고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고 있으면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세상은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오오 진정 초고급 타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싸우지 않고도 천하를 얻는다.  


“그놈의 손꾸락 내가 다 짤라 버릴꾸마!” 처절히 외치는 것은 언제나 우리와 같은 하수들의 몫이다. 초고급 타짜는 이 모든 것을 오직 관망한다. 그리고 결국엔 다 차지한다. 진짜냐고? 

온갖 초급 타짜들의 경연장. <타짜-원 아이드 잭>

<타짜-원 아이드 잭>을 보라. 거기에 진짜 타짜, 초고급 타짜. 도일출의 어머니가 홀로 공중부양하고 있다. 그는 부와 명예와 성품과 인덕과 하여튼 좋은 것은 다 가지고 홀로 공중부양하고 있나니. 이 긴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물론, 적지 않은 비중으로 영화에 출연했지만, 초고급 타짜이기에, 영화 소개 란에도 사진 한 장 없다. 오호 슬프도다. 허나. 그것이 참된 초고급 타짜의 길임은 두 말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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