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와 햇빛에 관한 영화, <로마(Roma)>, 알폰소 쿠아론, 2018
“여긴 어렸을 때 고향 같아요. 공기, 햇빛, 냄새까지.”
카메라는 일곱 살 소년이다. 카메라는 서술자를 통해 아버지의 집을 구석구석 훑는다. 무거운 책들과 서재로 가득한 아버지의 집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떠난 후 집에는 텅 빈 공간이 남는다. 카메라는 서술자와 머리를 맞대고 영화를 시작한 뒤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간 서술자를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회고와 서술이 오후의 햇빛 속에서 만났다가 오후의 햇빛 속에서 각자 제 몫을 살아간다.
카메라는 집안 가득 넘치는 햇빛을 담는다. 삶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도 어쨌거나 오후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옥상 위에서 마르는 빨래. 시끄럽고 지루한 음악을 연주하는 군악대, 낡은 자동차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뉴스와 음악들. 영화광들은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자라 영화감독이 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카메라는 전생에 비행기를 조종했다. 카메라는 일곱 살 소년이다. 카메라는 말이 없고,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듣고, 사람들 옆에 멈추어 선다. 카메라는 전생에 선원이었다. 그는 조난을 당해 바다에 빠졌다. 그는 바다가 싫어서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카메라는 대신 서술자를 바다로 들여보낸다. 아직 생생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 원하지 않은 아기를 사산한 사람. 슬픔 없이 살아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자신의 삶 속으로 자꾸 밀고 들어오는 사람. 그 사람을 바다로 들어가게 한다.
카메라는 거친 파도 속으로 사람을 마구 집어넣는다. 카메라는 삶이라는 무시무시한 파도의 질감과 소리를 그대로 담으며 그 속에 갇힌 사람을 본다. 카메라는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을 껴안는다. 카메라가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껴안고 다독여준다. 영화광들은 본능적으로 이때 운다. 카메라가 자신을 껴안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카메라를 회고하면서, 카메라가 카메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카메라로 시작해, 카메라로 끝난다. 카메라와 카메라 사이에 인물과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바로 살아있는 카메라 그 자체이다. 이 영화는 마치 영화광들이 어렸을 때 보았던 고향으로서의 영화와 같다. 공기, 햇빛, 냄새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광들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