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간사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나태하게 지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누군가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던가. 의지의 한국인은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 한국식 스파르타 시스템을 도입했다. 물리적 체벌을 가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것. 요즘 것들이라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인 나조차 얻어맞고서야 목표 성적을 달성하는 데 익숙하니, 이쯤이면 스파르타 시스템은 한국인의 DNA에 박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들 겪어봤겠지만, 스파르타식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채찍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된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상호 감시 시스템이다. 각종 스터디, 기상 인증 카톡방, 독서 모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벌금이 까이거나, 혹은 성실히 활동하지 못해 창피를 당하는 것이 강제성의 원천이자 불이익이다. 이런 상호 감시 시스템을 경험해 본 결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위 '으쌰으쌰' 분위기가 없다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내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복불복 게임 같달까?
내가 크로스핏을 좋아하는 이유는 '으쌰으쌰' 문화다. 크로스핏은 격렬하다. 솔직히 매번 운동 할 때마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하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런 나약한 생각을 날려버리게끔 서로 화이팅 하자고 크게 소리쳐주는 문화가 있다. 격투기 시합을 보면 링 밖에서 코치가 미친 사람처럼 목이 쉬라고 소리 지르는 걸 볼 수 있다. 엄청난 땀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중에 누군가 옆에서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쳐주면 신기하게도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
그렇게 함께 악을 쓰고 땀을 흥건히 흘리면 팀원들 간에 유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죽일 듯이 때리며 싸우던 격투기 선수들도 경기가 끝나면 상대를 꽉 안아주는 게 그 느낌 때문이다. 유대감이 개인적인 친분으로까지 이어지면 그만큼 강력한 족쇄가 없다. 운동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매를 맞거나 창피를 당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괜히 운동 메이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슬럼프에 빠진 동료에게는 크로스피터 답게 파이팅 넘치는 격려를 보낸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강제성, 이것이 연대의 가치 아닐까. 만국의 크로스피터들이여, 서로 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