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우 Mar 15.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33)

[분석 5_1/4]

•강함의 자의적 정의.


‣마지막 명제에서 흔들리지 않음이 곧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석 파트에서는 이를 논증해야겠습니다. 저는 강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인데, 체조부에서 활동하던 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키가 큰 친구였는데 그는 항상 운동장을 울면서 뛰고 있었어요. 어릴 때는 왜 저렇게 울면서 계속 뛸까, 저럴 거면 체조부는 뭐하러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로 제게 강함이라는 말은 늘 그때의 풍경과 겹쳐서 다가옵니다.


언젠가 논어를 읽으면서 공감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명예는 결코 쓰러지는 일이 아니다,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제가 생각하는 강함이라는 건 회복 탄력성과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회복 탄력성만 높으면 자기는 쿨하지만 주변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바보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만 뛰어나면 한 번의 실패로 다 폭발해 버릴 수도 있겠죠.


실제로 아는 후배와 강함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런 정의를 좀 더 굳힐 수 있었습니다. 당시 후배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건 화를 내는 사람이 나약해 보여서라고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후배도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었는데, 성인이 되면서 그런 모습이 미숙하고 자기감정조차 통제 못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겁니다. 즉 후배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분노를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자기감정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행동이라는 거죠.


이 등식이 맞다고 우길 수는 없을 겁니다. 강함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른 정의가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후배의 말에 동의는 합니다. 왜냐하면, 감정을 폭발시키는 건 정말 쉽거든요. 감정 자체를 표출하는 건 나약함이 아니지만, 분노와 슬픔을 정제하지 않고 외부로 토해내는 건 나약함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가령 타인을 비판할 때도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에만 호소한다면 그건 힘없는 비난에 불과하죠. 그러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처럼 마더 테레사를 평가하거나, 나심 탈레브처럼 기존 금융권을 융단폭격한다면 그건 나약함으로 보기 힘듭니다. 차라리 강함에 더 가깝죠. 결론적으로 강함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1)외부적 환경과 영향을 이겨낼 힘.

2)내부적 욕망과 문제를 해결할 힘.


운동장에서 울면서 뛰는 친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둘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는 외부적으로 달리기해야만 하는 환경에 처해있었을 겁니다. 안 그랬으면 맞았을 테니까요. 반면 내부적으로는 달리기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체조부를 그만두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있었을 겁니다. 이 둘을 다 참고 계속 달렸으니 눈물이 났던 걸 겁니다. 내‧외부의 조건 모두가 자신에게 가혹했으나 버텨낸 거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능력에 버거운 일을 맡아 낑낑대는 사람을 폄훼하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저토록 괴로워하면서 뭐하러 저걸 계속하는 걸까. 실제로 자기 역량 이상의 일을 맡아 괴로워하는 이들을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힘듭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는 여기지만, 그를 보며 행복의 가능성을 찾기는 어렵거든요. 늘 우울하고 피로에 절어 있는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안쓰러움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이 들죠. 왜 저렇게 살지, 하는 비아냥도 하고요.


그러나 이런 버거운 일을 견뎌내는 사람이 대체로 강한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인내심과 내구성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릇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습니다. 이 편차가 클 때도 있는데, 사실 보통 사람은 비슷비슷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감내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과 버거운 일을 맡은 사람이 있다면 결국 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버겁다는 건, 자기 능력의 한계선 혹은 그 이상을 도전하는 것이기에 성과 여부를 떠나 과정의 충실성에서는 밀도가 높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믿고 싶을지 모르지만, 이런 사람들이 관계에서도 더 유리합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들은 자기에게 버거운 일을 하면서 인내심을 키우기에 관계에서도 주도성을 지니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외부 환경과 내부적 문제를 모두 극복하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여차하면 인간관계를 닫고서도 잘 지낸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감정을 잘 통제하고 버텨내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줄일 수 있기에 구설에 오를 일이 적습니다. 더욱이 내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사람과의 관계도 극단적으로 풀어나가지 않기에 관계에서 손해도 덜 봅니다.


결국 외부와 내부 양자 모두의 영향을 덜 받는 이가 강한 사람이고, 이런 강함은 관계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언뜻 봤을 때 관계가 넓고 풍성해 보이지만 정작 실속이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내면이 단단하고 자기에게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은 관계 자체에 대한 욕망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기에 좀 더 관계를 현명하게 끌어갈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사람을 적게 만나는 것 같고 비사회적으로 보여도 정작 자기 환경에 맞춰 인간관계를 잘 꾸려나가는 거죠. 한 마디로 아쉬울 게 없기에 타인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으며, 인간관계에도 덜 휘둘리고 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3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