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역사의 가장 큰 뿌리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을 보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학문(學問)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라는 말을 강조하는 말로써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라는데 그 유래를 두고 있다. 학문(學問)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도 있지만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학문에 정진하다 보면 스승을 능가하는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나왔으며, 출람(出藍)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또 이러한 재주 있는 사람을 출람지재(出藍之才)라고 한다.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순자(荀子)의 가르침이었다.
오늘 이야기할 캐슬론은 청출어람을 할 수 있도록 후학들에게 기본이 될 수 있는 좋은 서체의 뿌리를 심은 장본인인 윌리엄 캐슬론(William Caslon : 1693~1766)에 대한 이야기다. 캐슬론 서체는 눈에 띄게 독특한 서체도 아니었고 만들어진 당시 아주 혁신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뒤를 잇는 후임자들과 그들이 만든 폰트는 더 위대했다고 종종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타입 페이스는 올드 스타일(Old style), 트랜지셔널(Transitional), 모던(Modern), 이집션(Egyptian),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순으로 연결하여 크게 다섯 가지 분류를 하는데 그중 처음의 세 가지 스타일인 올드 스타일, 트랜지셔널, 모던은 한 묶음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 뿌리가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캐슬론의 연구생이었던 존 바스커빌(John Baskerville : 1706~1775)의 바스커빌(Baskerville)은 캐슬론보다 얇은 획과 굵은 획의 대비를 줘 가독성을 한층 더 높인 '과도기 서체(Transitional Typeface)'를 만들었고 그 후 피르맹 디도(Firmin Didot : 1764~1836)의 디도(Didot)와 지암바티스타 보도니(Giambattista Bodoni : 1740–1813))의 보도니(Bodoni)가 바스커빌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바스커빌보다 획의 대비를 더 주어 서체를 새련되게디자인한것이 '모던 서체(Modern Typeface)'라고 불리는 타입들이다. 캐슬론은 이렇듯 기나긴 서체의 역사에 있어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다수의 폰트에 가장 기초가 되는 DNA를 만들어 놓은 시금석 같은 서체다.
윌리엄 캐슬론은 사실 기존에 서체를 만들던 장인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본래 윌리엄 캐슬론은 총기류에 문양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하는 금속 세공업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숙련하여 몸에 익은 금속 세공기술은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장식만큼이나 정밀함이 필요했던 활자의 세공에 그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720년 영국의 런던에 활자 주조소를 설립한 그는 5년 후, 네덜란드 로만 서체를 모델로 캐슬론 서체를 완성하게 된다. 영국에 인쇄술이 전해진 시기는 15세기 후반이었지만 오랫동안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서체와 활자를 수입하여 사용하였던 영국의 인쇄업계에서 캐슬론의 탄생은 굉장한 이슈였다. 특히 캐슬론은 게러몬드와 같은 ‘왕의 로만’ 서체에 기반을 두고 만든 네덜란드 로만 스타일과 네덜란드 바로크 형식이 가진 불규칙한 특성에 기반을 두었으나 윌리엄 캐슬론이 금속세공을 하며 오랫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활자에 녹여내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형태와 디테일로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게 된다.
캐슬론이 만들어진 시기는 사실 종교박해와 시민혁명 등으로 인해 정부의 통제가 심해져 그래픽의 혁신이 유발될 수 없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국가의 통제가 캐슬론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적절했던 것이다. 캐슬론의 활자 디자인은 특별히 혁신적이거나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기에 커다란 인기를 누렸던 것은 '읽기 편하고 친근감이 있으며 견고한 짜임새'에 의하여 뛰어난 가독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활자를 토대로 한 캐슬론은 두터운 부분을 좀 더 두텁게 함으로써 두터운 획과 여린 획의 대조를 증강시켰다.
또한 다소 굵은 획과 개별 글자들의 조금 덜 세련된 서체의 조합들은 또 다른 장점을 갖게 된다. 단지 하나의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모여 글자가 쓰였을 때 만들어내는 강한 질감으로 인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각적 인상에 생동감을 더해준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기존의 본문용 서체보다 눈에 더 잘 보이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가독성이 높아졌고 당시 유럽 대륙에 유행하던 가늘고 세밀하며 섬세한 서체에 비해 대량 인쇄 및 생산에 적합하였다.
결국 급성장하는 영국의 인쇄 수요를 충족시키며 캐슬론은 19세기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서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시의 역사적인 기록문서와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서식에 캐슬론이 사용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캐슬론은 당시 대영제국이라 불린 영국의 제국주의와 함께 세계 곳곳에 전파되어 북미 대륙에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오랜 기간 사랑받게 된다. 한동안 미국 인쇄물 대부분에 사용되었으며 1776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쇄한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사용되기도 했다.
윌리엄 캐슬론이 사망한 이후에도 캐슬론은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나 잠시 주춤한 시기를 가졌다. 하지만 1840년부터 80년 사이에 영국의 '예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으로 인해 다시 부활하였으며, 그 후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그 명맥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다양한 버전의 캐슬론
캐슬론은 미국으로 넘어간 후 오랜 기간 다양한 버전의 서체가 발표되었는데 1865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엘 제이 존슨 파운드리(the LJJohnson foundry)에서 표본 책에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된 'Caslon471', 1905년 캐슬론의 획을 더욱 굵게 강조하여 만들어진 'Caslon3', 1915년 반허트 형제와 스핀 들러(Barnhart Brothers and Spindler)가 설계한 'Caslon Openface', 1966년 'Caslon540'을 더욱 두껍게 하여 만들어진 'Caslon641',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3년 에드 뱅귓(Ed Benguiat)의 설계로 만들어져 고전적인 광고와 디스플레이 전용서체로 사용된 'Caslon244'까지 굉장히 많은 버전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캐슬론 서체는 포토샵으로 유명한 Adobe사의 캐럴 트윔블리(Carol Twombly)에 의해 1990년 정리된 서체로 앞서 있었던 버전들을 더욱 새롭고 새련되게 정리함은 물론 다국어 서체와 다양한 특수문자, 합자가 포함된 완전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초의 캐슬론과 가장 가까운 서체는 1902년 ATF(American Type Founders)에서 되살린 'Caslon540'으로 윌리암 캐슬론의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하며 이는 현재 디지털 폰트로도 새롭게 재현되었다.
음식을 만들다 보면 항상 베이스가 되는 소스의 완성도에 따라 맛의 완성도가 함께 결정된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같이 넣어야 하는 소스가 좋지 않으면 쓸데없이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가야 한다. 항상 중요한 것은 원래 재료가 가지고 있는 신선함과 그 안에서 담겨 우러나는 맛의 진정성이다. 캐슬론은 그런 의미에서 장인이 오랫동안 장독에 묻어두어다가 꺼낸 비법소스와 같다. 이 소스를 물게 우려내던 진하게 조려서 우려내던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들던 다른 재료를 섞고 발효시켜 또 다른 소스를 만들어내던 그 맛의 기반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훌륭한 베이스 소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순자(荀子)가 말한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순자가 굳이 강조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푸른빛이 쪽빛보다 푸르려면 그 푸른빛을 나게 하는 쪽나무의 잎이 푸르게 여물어야 하며, 얼음은 그 물이 혼탁하고 더러우면 아무리 차가워도 좋게 쓰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하려면 결국 그 근본이 되는 스승과 학문의 기반이 올바르고 깨끗하며 성글게 여물어 있어야 한다. 나쁜 스승 밑에서 좋은 제자가 나오긴 힘들고 나쁜 스승 밑에서 배운 제자는 그 뛰어남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결국 올바른 마음가짐을 전하는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운 우수한 제자여야만 청출어람해도 그 바른 뜻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당대에 혁신적이거나 미학적으로 완벽한 서체를 만들지 못했으나 훌륭한 제자와 후학을 배출한 윌리엄 캐슬론의 마음가짐과 결과물은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타이포그래피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훌륭한 뿌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 2015년 8월에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