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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Jun 11. 2020

그날의 온도와 습도가  좋은 것만으로도.

며칠 전 일요일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남편이랑 거실에서 잠깐 졸았다. 식사하고 2시간 후에 자는 것이 우리의 룰이었지만 먼저 잠든 남편을 따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 남편은 혼자 일어나서 전 날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남편이 깨웠지만 그 날은 특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서 본격적으로 안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1:30 남편이 나를 깨워 뭘 좀 먹으라고 하길래, 일주일 전에 엄마가 가져오신 집에서 기른 부추를 반쯤 썰어 부침가루를 넣고 부추전 2장을 부쳤다. 하나는 내가 부치고 하나는 남편이 부쳐서 식탁에 둘이 앉았다.


남편은 내가 요리를 할 때면 앉아 있다가도 곧잘 옆에 와서 농담을 하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잘 나눈다.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전을 붙이고 있는 내 주걱을 빼앗아 전을 붙이며 편하게 먹으라고 말해준다. 큰 접시에 부추전이 하나 붙여져 있고 서서 전을 붙이는 남편을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고 있는 데 문득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나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성에 대해서 생각하며 글을 써보고 싶었다.


끼니가 아닌 간식이었기에.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건강에 좋은 부추전이었기에. 과한 양념이 아닌 부침가루만 들어간 하얀 전이었기에...  왜 좋았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멀멀한 이유들만 떠오른다. 딱히 자극적이거나 특별할 것이 없는 무미건조하고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그저 그날의 온도와 습도가 좋았었다. 


일상성. 매일같이 평범한 일상을 지루해하지 않고 살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우리 모두는 안다. 그래서 새로운 자극을 찾거나 특별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인다. 주말에 여행을 가고 프로 취미생활러를 자처하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찾으려 애를 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스트레스만 받는 게 아닌 그 속에서 보람과 살아있다는 활기 또한 느낄 것이다. 이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들의 일상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특별하고 새로울 것 없는 그저 자신만의 일상에 대해서. 뭐랄까 원색이 아닌 파스텔톤에 가까운 일상. 너무 평범해서 이런 삶을 계속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일상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속에 널뛰는 감정들이 그 일상에 묻혀서 무던해질 수 있도록. 그래서 그 무던해진 감정들 사이로 행복(지금은 이 단어밖에 쓸 수 있는 단어가 없기에)과 비슷한 여러 가지 좋은 감정들이 올라올 때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우리는 좀 더 평화로운 상태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나는 노력하고 싶다. 마음이 시끄러운 나에게 평화를 주는 게 나의 인생 최대 목표이고, 그 목표는 바로 매일 같은 일상을 말 그대로 일상답게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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